시장 안 보고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는 비결은?
[맛집 소개] 나포면 옥곤리에 있는 ‘우리식당’ 된장찌개... 맛이 끝내줘요
나는 으뜸 전통음식이자 슬로푸드의 대표주자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즐겨 먹는 음식 몇 가지만 선택하라면 된장찌개를 우선으로 꼽는다. 여름엔 삼시세끼 된장찌개만 먹는 날이 허다할 정도다. 흔하면서도 정작 전문식당을 찾기 어려운 음식 된장찌개. 군산시 나포면에 있는 ‘우리식당’ 주인 박금자(58) 아주머니가 끓이는 된장찌개를 소개한다. -기자 말
박금자 아주머니는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식당을 개업했다. 개업을 앞두고 이런저런 고민에 빠졌을 때 대학교 1년생 아들이 ‘엄마는 뭘 해도 잘 하신다’며 ‘제가 졸업할 때까지만 고생하시라’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그 아들은 군 복부 중에는 휴가 때마다 식당일을 돕고, 제대하고 취업하는 것으로 절반의 약속을 지켰다.
박 아주머니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눈을 뜨기 무섭게 텃밭으로 논둑으로 그날 사용할 반찬 재료를 찾아 나선다. 망해산(마을 뒷산)으로 고사리를 뜯으러 가는 날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서둘러야 한다. 각종 반찬거리를 구해오면 다듬는 일이 기다린다. 쌀을 씻어 밥을 얹혀놓고 손님상에 오를 반찬을 준비한다. 늦은 아침을 서둘러 챙겨 먹고 공사현장 인부들 점심 배달을 나간다.
입맛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공사장 인부들에게 손맛을 인정받아 함바집(공사현장 식당) 일도 겸하고 있는 박 아주머니. 전남 순천이 고향인 그는 “면단위 시골에 있는 식당이어서 그런지 손님 모두가 부모 같고, 오빠 같고 동생 같다”며 “음식을 준비하고, 조리하고, 상을 차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저는 하루 중 음식 만들 때가 최고로 즐겁고 행복해요. 식당을 해서가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그랬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밥상을 차리고 반찬도 만들었는데, 콧노래를 부르면서 했죠.(웃음) 논으로 모심으러 나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을 끝내고 맛있게 드실 것을 생각하면 기쁘고 흐뭇했습니다. 반찬이 없으면 텃밭에서 상추라도 뜯어다가 겉절이를 버무려드렸으니까요.
점심때도 절대 찬밥을 드리지 않았어요. 석유곤로나 아궁이에 불을 지펴 따뜻하게 해드렸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은 보기에도 구미가 당기고 맛도 더 구수하잖아요. 그렇게 점심을 차려드리면 방에 온기가 돌고 아랫목이 따뜻해지니까 피로가 풀린다며 무척 좋아하셨지요. 어느 날 몸이 으슬으슬하니 춥다며 달궈진 방구들에 몸을 비벼대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된장찌개는 재료가 간단할수록 전통된장 맛 살아나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자갈자갈 재미나게 끓는다. 찌그러진 양은냄비가 앙증맞다. 어렸을 때 부엌을 드나들며 보던 그 냄비다. 고향집 정취가 물씬 묻어나면서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느껴진다. 찌개 끓는 소리가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시냇물 소리처럼 정겹고 경쾌하다. ‘추억의 명곡’이 따로 없다. 된장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침을 꼴깍 넘어가게 한다.
팔팔 끓는 국물 사이로 호박, 두부, 팽이버섯, 양파, 멸치가 보인다. 재료가 무척 소박하다. 국물이 검은빛을 띠는 이유는 울금(강황)과 노란 호박이 들어간 집된장을 사용하고, 재래 간장으로 간을 맞췄기 때문이란다. 화학조미료는 물론 다시다도 들어가지 않았다. 시원하고 개운한 맛은 2년 묵은 집된장과 멸치가 잡는단다.
밑반찬이 정갈하게 차려진다. 배추김치(묵은지)를 비롯해 상큼한 파김치, 쌉싸래한 머우나물, 개운한 시래기나물, 시원한 오이소박이, 고소한 콩나물 무침, 어묵 무침, 마늘장아찌 등이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정성이 엿보인다.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건강에 좋지만, 집된장으로 끓이는 된장찌개는 재료가 간단할수록 전통 된장 맛이 살아난다는 게 박 아주머니의 음식철학이다.
된장찌개와 최고 음식궁합은 잘 숙성된 묵은지
다양한 밑반찬 중 된장찌개와 음식궁합이 가장 좋은 반찬은 아무래도 잘 숙성된 묵은지다. 배추는 작년 가을 직접 재배해서 김치를 담갔다고 한다. 박 아주머니 얘기를 들어본다.
“우리 집 반찬 재료는 중국산도 아니고, 국산도 아니고 ‘나포산’이에요. 육류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이곳에서 구하기 때문이죠. 배추랑 시금치는 텃밭에, 된장 담글 서리태(콩)는 논둑에 심어먹습니다. 봄이면 산에 고사리가 지천이죠. 쑥을 뜯어오면 쑥국을 끓이고, 머우대와 민들레는 겉절이를 버무려 내놓죠. 뽕잎이 나오면 연한 이파리를 속아다가 나물을 무치면 다들 좋아합니다. 뽕잎이 혈압에 좋다고 하잖아요.
나포로 이사한 지 4년이 지났는데, 마을 주민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재배한 버섯과 산에서 뜯은 고사리 등 제철에 난 유기농 푸성귀를 가져와 반찬을 맛있게 만들어보라고 부탁하는 손님이 종종 있거든요. 인심이 이렇다 보니 ‘이놈의 집구석은 시장에 한 번도 안 가고 공짜로 장사한다’고 놀리는 손님도 있어요.(웃음)”
음식에서도 남도의 ‘투박한 맛과 멋’을 풍기는 박 아주머니. 그의 설명은 전통 된장찌개만큼이나 구수하고 정겹다.
자박하게 끓인 찌개국물 한 수저를 후후 불어 맛본다.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뒷맛이 깊고 개운하다. 옛날에 어머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 그 맛이다. 된장 특유의 구수한 향이 입안 구석구석 감돈다. 텁텁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은은한 맛의 조화가 식욕을 돋운다. 찌개 육수는 청정수를 사용하고 방부제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을 뿐, 조리방법은 일반 된장과 같다고 한다.
자글자글 끓는 찌개를 보는 것만으로 포만감이 느껴진다. 국물과 두부, 호박, 팽이버섯을 적당히 섞어 앞대접에 두세 국자 퍼 담는다. 그리고 밥을 말아 한 수저에 묵은지 한 쪽 얹어 첫술을 뜬다. 사각사각 씹히면서 개운한 맛을 내는 게 가히 환상적이다. 박 아주머니에게 고마움이 느껴진다. 청국장찌개만 먹으러 다녔는데 오늘은 된장찌개를 드셔 보라고 권해서 주문했기 때문이다.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웠다.
후식으로 나온 구수한 누룽지 또한 별미다. 포도당이 녹아 있는 숭늉은 소화를 돕는 소화제와 입안을 깔끔하게 씻어주는 청소부 역할을 착실히 수행한다. 된장찌개와 누룽지는 공통점 몇 개가 발견된다. 추억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소화가 잘되면서 속이 편하고,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것이다. 먹을 때는 배부른데, 2~3시간 지나면 꺼지는 것도 닮았다.
콩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지만, 으뜸은 된장이다. 된장의 가장 큰 효능은 항암효과라고 한다. 그 외에도 피를 맑게 해주고, 혈액순환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노화 방지, 고혈압 예방, 치매 방지, 골다공증 예방 등 다양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된장찌개는 나른해지기 쉬운 봄철에 입맛을 살려주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는 보약 노릇을 한다.
옛 어른들은 ‘여름에는 무엇이든 잘 먹는 게 보약’이라고 했다. 필자는 <여름철 반찬 중에 '대장'은 '된장'>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쓴 적도 있다. 곡우도 지나고 여름의 문턱이라는 입하(立夏)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올여름도 무더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디에서나 쉽게 섭취할 수 있는 된장찌개로 건강을 관리하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