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호 종아니의 발길 닿는대로>
김대중, 그가 살아 있다면 뭐라고 경고했을까?
달라도 너무 달랐던 DJ와 박근혜의 부산대학교 방문
"박근혜 대통령님 대학에 오셨으면 대학생들의 귀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박근혜의 부산대 방문 환영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기습적인 방문에 유감을 표명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5·16쿠데타. 유신독재가 불가피한 선택입니까"
윗글은 지난 3월 16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부산대학교를 찾았을 때, 학생들이 들고 있던 피켓에 적힌 글귀들이다. 학생들은 피켓시위에 이어 학교 정문에서 박 대통령 방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온갖 상념에 잠겼다. (관련기사 : <오마이뉴스> 대통령 돌아가게 만든...박근혜 반대 대학생 시위)
대구와 부산은 박근혜 대통령의 텃밭이다. 그러니 박 대통령의 깜짝 방문을 반기고 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피켓시위와 기자회견이 열렸다니 놀랍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아래 김대중 대통령)이 부산대와 10·16 민주항쟁기념사업회 초청으로 2006년 9월 15일 부산대 10·16기념관에서 특별강연을 했는데, 학생들 반응이 그때와 180도 달라서다.
영남지역 환영 열기 예상외로 뜨거워
부산역 앞에서 김대중 대통령 내외를 기다리는 ‘후광김대중 마을’카페 회원들
나는 2006년 당시, 부산에 살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지지모임인 인터넷카페 '후광김대중 마을'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해 9월 14일 오후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KTX 편으로 부산역에 도착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부산·경남 지역 회원들과 부산역에서 환영식을 했다. 그때 부산 시민의 환영 열기는 예상외로 뜨거웠다.
김 대통령은 그해 3월 대구 영남대 초청강연 때도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영남대와 거리에는 환영 현수막이 내걸렸다. 동대구역에서 열린 환영식 때는 대통령 내외가 언제쯤 도착하는지 묻는가 하면 차표를 물리는 사람도 있었고, 피켓이라도 들고 있자는 사람, 기다렸다가 대통령이 나오면 박수나 치고 가자는 사람 등 많은 시민이 관심을 나타냈다.
김 대통령의 부산대 강연 예정시간은 15일 오전 10시 30분이었다. 강연이 열리는 부산대 10·16기념관 앞마당은 10시 조금 넘으면서 학생과 시민, 취재진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대구와 부산은 김 대통령이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지역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는데, 무르익은 환영 분위기에서 작은 희망과 위로를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대합실은 긴장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카메라와 휴대폰을 가진 사람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대통령이 어느 방향으로 입장하는지 서로 묻고 예견하면서 촬영하기 좋은 위치를 찾아다녔다. 높은 곳에서 찍자며 2층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조금 후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얼굴을 보이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팔순의 전직 대통령과 대학생들... 어색함 찾아볼 수 없어
휴대폰과 카메라 렌즈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맞추는 학생과 부산 시민들
10·16기념관은 강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통로까지 꽉 들어찼다. 나는 어렵사리 비집고 들어가 연단 앞바닥 좁은 공간이나마 차지할 수 있었다. 대통령 입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기립박수는 길게 이어졌다.
바닥조차 확보하지 못한 남녀학생들은 아예 연단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학생들은 거리낌 없이 자유분방했고 누가 나서서 막지도 않았다. 팔순을 넘긴 전직 대통령과 20대 남녀 대학생들. 딱딱함이나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강연해도 학생들이 가까이 앉아 강연을 듣고 질문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강연 주제는 <21세기와 민족의 미래>였다. 김 대통령은 학생들이 가까이 다가앉자 "강연 재미없게 했다가는 바로 맞을 것 같다"고 해서 긴장이 감돌던 강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학생 여러분도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잘 조화시켜나가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고 남북 및 북미 관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평화통일 등을 화두로 강연을 펼쳤다.
연단의 학생들과 김대중 대통령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한 여학생이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특강에 참석하게 되어 무척 행복하다"며 "2000년 정상회담 때 북한에서의 에피소드와 615선언의 결과, 전시작통권 환수에 대해 대통령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묻자 "질문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 요점만 골라 해보라"고 해서 강연장은 또 다시 웃음바다가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학생들에게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성공하는 젊은이가 되라, 성공하는 민족의 일원이 되라, 그리고 성공하는 세계인이 되라"는 당부로 강연을 마쳤다. 그가 10·16 기념관을 빠져나올 때도 사진을 찍으려는 학생과 시민들이 몰려들어 혼잡을 빚었다. 김 대통령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면서도 일일이 손을 들어 화답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뭐라고 경고했을까?
부산대 연구센터를 방문했다가 학생들의 피켓시위를 피해 연구 시설만 돌아보고 발길을 돌린 박근혜 대통령. 대학생들이 피켓도 들지 못하게 막는 청와대 경호원들과 경찰의 과잉 경호 등, 모두 황당한 내용이어서 9년 전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과 메모를 보며 희미해진 기억들을 되살려 보았다.
부산대 학생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해 피켓시위를 벌이자 청와대 경호처와 경찰은 경호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총학생회장을 길에서 끌어내리고 학생들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이에 최혜미 부총학생회장은 '텔레비전에서 시민들과 포옹하고 악수하던 (박근혜) 대통령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9년 6·15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이대로 가면 MB도 국민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012 대선에 개입한 협의로 법정구속 되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는 등 그의 경고는 거의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나쁜 정당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김대중 대통령.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국민을 외면하며 독선으로 치닫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뭐라고 경고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