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라대곤 소설집 '퍼즐' 잊혀진 여인 (3)
글 : /
2015.04.01 15:42:1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안주는 상하지 않았지?”
   “미친 자식.”
   이게 또 무슨 개똥같은 수작인가? 술집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안주 타령이라니? 해가 지고 속이 출출해지면 당연히 설렁탕 국물에 소주 한 병쯤은 생각이 나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대동옥을 제쳐두고 이게 무슨 개수작인가? 이래저래 기분이 떨떠름했다.
   그렇다고 술을 마다할 수 없어서 마담이 건네주는 술잔을 받았다. 자주 마셔보지 못해서 맛이 썩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달콤한 맛이 찜찜한 기분을 다소 털어주고 있었다. 빈 잔을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호호호, 두 분이 별로 친하지 않은 모양이다.”
   마담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시늉으로 깔깔거렸다.
   “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초면에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이 촐랑대는 마담에게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 사장님은 술을 한 방울도 못하잖아요.”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그럼 술집에는 왜 왔어?”
   그러고 보면 녀석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주 먹으러 왔다.”
   녀석이 히죽거리면서 느물거렸다. 모처럼 일어났던 술맛이 싹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나는 술을 먹지 않으니 너 혼자서라도 매상을 올려주어라.”
   녀석이 술병을 들어 내 빈 잔에 다시 술을 따랐다. 혼자서 먹으란 말인가? 산지기술도 아니고 기분이 많이 언짢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고 나갈 처지도 아니었다.
   “저랑 마시면 되지요.”
   마담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마주앉아 있는 마담에게 잔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술이란 참 묘한 음식이다. 몇 잔 마시면 세상이 다 좋게 보이는 것이 무슨 조화속일까? 거푸 마신 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녀석과 마담이 주고받는 야한 농담 속에 나도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해야 옳았다. 안주라고 지칭한 것이 설렁탕 국물 따위가 아니고 술은 남자고 안주는 여자를 칭하는 은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나야 처음부터 안주라고 칭하는 마담에게는 관심이 없었으니 질투가 날 이유도 없었다. 마담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녀석도 따라 일어났다. ‘둘이 함께 배뇨 감을 느껴서 화장실에 가는가?’ 했다. 한데 용변이 끝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두 사람 모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 혼자서 양주 한 병을 바닥냈다.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술도 떨어지고 카페에 더 앉아있을 이유가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마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가 시원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처음으로 녀석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한데 어디에서 나왔는지 녀석이 쫓아와 어깨동무를 했다. 순간 섭섭했던 마음이 싹 가시면서 또 한 잔 생각이 났다.
   녀석이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포장마차로 끌었다. 병아리 새끼를 참새라고 속여 파는 집이었다. 비싼 양주를 마시고 소주로 입가심을 하는 나를 녀석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제 할 일을 잊어먹고 있지도 않았다. 사냥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끼를 발동하고 있었다.
   “눈 오는 날은 걸어서 넘어가지 않는 여자 없다는데.”
   “배부른 사람들 이야기 하시네.”
   “내가 당신 배부르게 해줄까?”
   “길가에서 장사한다고 사람 우습게 보는 게요?”
   “에이, 화내지 말고 우리 병아리 새끼 몇 마리 더 굽더라고.”
   창피한지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맞아죽지 않고 살아온 것조차 다행이다 싶었다. 사냥꾼도 짐승을 가려잡는다는데 녀석은 얼굴도 몸매도 상관없이 치마만 두르면 무조건이었다. 꼬시는 방법도 장소고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모두 다 없었다. 몇 분 후에 들통 날 거짓말도 서슴없이 쏟아냈다.
   “내가 말이야,  5.16때 혁명군이었거든.”
   “계급이 뭐였어요?”
   “혁명군이라니까.”
   뻔하게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이 여자다. 넘겨주기를 바라는 것이 여자일까? 녀석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내뱉었다. 설령 들통이 난다고 해도 걱정이 없는 것이다. 그 때쯤은 볼 일 다 보고 달아날 궁리를 할 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정복하는 것이다. 한 번 만져본 여자는 다시 쳐다볼 가치가 없다. 머저리 같은 연놈들이나 하는 것이 사랑이다.’가 녀석이 갖고 있는 논리였다. 그야말로 여자에 대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이기주의였다. 처음 환심을 사려고 할 때는 발이라도 씻겨줄 듯 저자세로 덤벼들었다. 때리면 맞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은 기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게 끝이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안면을 바꿔버린다. 몸까지 섞고 지낸 여자를 굴러다니는 빈 술병보다 더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 하룻밤 풋사랑이라는 소리조차 아까운 녀석이었다. 하는 짓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마시는 술을 넘보는 것도 아니고 내 여자를 훔쳐가는 것도 아니어서 그럭저럭 함께 다니고 있었는데 엉뚱하게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비오는 날이었다. 녀석이 뜬금없이 다방에 가자고 했다. 그 때도 생각 없이 따라갔는데 어김없이 녀석의 사냥터였다. 실내장식이며 음악까지 분위기가 있는 곳에 제법 요염한 여자가 있었다. 이번에는 다방인가? 성이 박가였는데 얼굴보다 몸매가 끝내주는 글래머였다. 물론 술이 취했을 때 음탕한 눈으로 쳐다본 모습이지만 버들가지 같이 낭창거리는 허리에 착 감기는 한복을 입고 홀 안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의자들이 흔들거리는 것 같은 착시 현상까지 잃어날 정도였다.
   녀석의 눈은 이미 돌아가 있었다. 카페의 여자도 벌써 실증이 날 때가 되었다. 나를 다방으로 끌고 가는 시간이 늘어났다. 대동옥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마담이 엉덩이를 흔들면서 도라지 위스키를 들고 왔기에 참고 있었다.
   위스키를 몇 잔 얻어먹는 동안 나는 녀석을 비웃고 있었다. 아무리 여자 홀리는 데 이골이 났다고 해도 이번만은 헛물을 켜는 꼴을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박 마담은 비록 끼는 있어도 제법 도도해 보였다. 손님들 자리에 앉지도 않았고 말 같지 않은 농담쯤은 귓가로 흘려버렸다. 웃을 듯 말듯 한 그녀의 속셈은 분명 장사속일 뿐 헤픈 여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주고 있었다. 아니 정자를 떠나보낸 후 여자를 우습게 보는 내 사고가 조금씩 고쳐지고 있는 현상이었는지 모른다. 박 마담을 믿고 싶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내기 할까?”
   “임마 정신 차려.”
   “네 놈 속셈이 뭐?”
   “무슨 소리야?”
   “질투하고 있잖아?”
   “미친 자식.”​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