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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향수의 조화, 군산 철길마을 간이역과 ‘허니 치즈호떡’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5.04.01 13:56:2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노후대책, 호떡으로 승부를 걸겠습니다!” 

맛과 향수의 조화, 군산 철길마을 간이역과 ‘허니 치즈호떡’  

 

 

 

지난 주말, 전국의 사진 애호가들에게 출사지로 주목받는 군산시 경암동 철길마을을 찾았다. 2008년 7월 이후 폐선이 됐지만, 기차가 다닐 때는 게딱지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기적이 울리면 평상을 치우고, 강아지를 불러들이는 등 진풍경이 벌어졌다. 지금도 주민들은 주변에 텃밭을 일구고 햇볕이 화창한 날에는 빨래도 널고, 고추나 잡곡을 말린다.

 

철길마을에 들어섰다. 달동네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서정적인 분위기의 벽화들이 눈길을 끈다. 고은 시인의 시(제목: <그 꽃>) 앞에서 발을 멈춘다.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갑오년 가을). 짧으면서도 깊이가 느껴진다. 젊어서는 발견하지 못한 꽃을 늙어서야 발견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소중한 것들을 아름다운 꽃으로 표현한 것 같다. 

 

철길마을에 ‘간이역’이 생겨난 유래

 

 

마을을 관통하는 철길(1,1km)은 1944년 4월 4일 개설된 경암선(페이퍼코리아선)의 직선 구간으로 증기기관차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추억이 머무는 이곳은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의 무대이자 영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촬영지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간이역(편의점)도 들어섰다. 간이역과 조화를 이루는 명물도 등장했다. 간이역 역장(편의점 주인)이 구워내는 ‘허니 치즈호떡’이다.

 

기자는 보름 전 우연히 철길마을을 지나다가 편의점 주인 최근술(51) 씨에게 ‘간이역’이 생겨난 유래를 들었다. 이야기 내용은 한마디로 ‘맛과 향수의 조화’였다. 착상이 기발하여 최씨에게 ‘간이역 역장’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아래는 최씨가 들려준 간이역에 얽힌 이야기다.

 

“간판은 제가 달았지만 이름(간이역)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지어준 겁니다. 철길마을을 찾는 분들 편의를 위해 군산시에서 휴게소를 설치했는데 사람들이 마루에 앉아 쉬면서 ‘야, 간이역처럼 멋스럽고 좋다!’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편의점 간판을 간이역으로 지어 내걸었죠. 역명도 처음엔 왼쪽 역은 달나라, 오른쪽은 화성으로 하려다가 이웃 동네 이름(구암동, 중동)을 넣었더니 진짜 시골 간이역처럼 그럴듯하더군요.
 
밤에는 깜깜해서 전깃불을 밝혔죠. 분위기가 살아나고 멋도 있더라고요. 방문객들도 낭만적이라며 좋아했습니다. 어렸을 때 봤던 시골역을 떠오르게 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장님은 자꾸 떼라고 하는 거예요. 시에서 만들어놨는데 왜 허가도 없이 간판을 붙였느냐면서···. 어쩔 수 없이 떼어냈다가 작년 11월 다시 내걸었습니다. 편의점(간이역) 허가도 그때 냈죠.”

 

허니 치즈호떡, 처음엔 호떡, 먹을수록 피자 맛



“천연재료만 들어가는 ‘허니 치자호떡’입니다. 맛이 아주 담백합니다. 한 개 3000원입니다. 비싸지 않아요. 저희가 여섯 조각으로 잘라드리니까, 한 개를 두 명, 세 명이 나눠 먹어도 좋습니다. 드실 때 내용물이 흐르지 않아요. 기름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시럽이 아니에요. 진짜 지리산 벌꿀을 사용합니다. 맛 한 번 보고 가세요···.”

 

최씨는 손으로는 호떡을 굽고 입으로는 홍보방송을 열심히 한다. 사람들 반응이 다양하다. 이름이 생소해서 그런지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까이 다가와 굽는 과정을 지켜보며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한다. 출출하니 사 먹고 가자는 사람도 있다. 카드결제가 되느냐고 묻기도 한다. 친구와 함께 온 20대 여성은 비싸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두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얼굴이 환해진다.

 

 

좁은 철길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테이블 하나 없는 간이역도 마찬가지. 호떡 구우랴, 홍보하랴 최씨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처음 왔을 때는 할머니(최씨 장모)가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깔끔하고 솜씨가 좋아 최씨가 삼고초려 끝에 스카우트했다는 할머니는 제사 지내러 서울에 갔단다. 대신 최씨 아내(노영란)와 대학생 아들이 바쁜 일손을 돕고 있다.

간이역 마루에서 먹자판이 벌어진다. 여럿이 먹으면 풍미도 배로 느는 법. 하나 맛보기로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꿀 특유의 달콤 쌉싸래한 향이 입안에 감돈다. 처음에는 달달하고 쫄깃해서 호떡 같은데 먹을수록 피자 맛이 난다. 생각보다 바삭바삭하다. 식감도 좋다. 고명으로 얹은 견과류는 여섯(아몬드, 호박씨, 땅콩, 건포도, 해바라기 씨, 옥수수 등) 가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깨무는 재미도 쏠쏠하다. 처음엔 세 개도 먹을 것 같더니 한 개 먹으니까 배부르다. 
 
노후대책 고민하다 호떡집 개업

 

최근술, 노영란씨는 삶을 열심히 개척하는 맞벌이 부부다. 호떡을 함께 만들어서가 아니다. 최씨는 철길마을 건너 대형 할인점이 직장이고, 노씨는 간호사다. 노씨는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다가 올해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정식 간호사 면허도 취득한 노력파. 평일에는 병원, 주말에는 간이역으로 출근한단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며 호떡집을 운영하게 된 전후 사정을 들려준다.  
 


“남편이 직장에서 철길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봤나 봐요. 그래서 작년 가을에 노후대책으로 이 집을 사게 됐죠. 8평짜리 집에 방 두 개, 부엌, 화장실, 목욕탕, 자그만 옥탑 장독대도 있더라구요. 그래도 여섯 식구가 살면서 애들 대학도 보내고 그랬대요.(놀라는 표정) 집수리를 모두 우리 손으로 끝내고 뭘 할까 고민하다가 ‘겨울의 꽃은 호떡’이라는 생각에 씨앗호떡을 시작했죠.

 

처음에는 무허가 구멍가게로 시작해서 어려웠어요. 지금은 편의점과 식품 허가. 주류 허가도 떨어져 마음이 편합니다. 비주얼이 손님들 마음에 들도록 빨간색 나는 예쁜 호떡···. 그러니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보기에도 좋고, 들고 가면서도 꿀을 흘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호떡을 개발 중이에요. 허니 치즈호떡 굽기를 연습하면서 남편과 싸움 많이 했어요. 지금도 많이 합니다. (웃음)”

 

아내와 무릎을 맞대고 노후대책을 고민하다가 두 종류의 명품 호떡을 만들어낸 최근술씨 얘기를 들어본다.

“마가린 기름으로 굽는 씨앗호떡은 한 개 1000원씩 했는데 냉장고, 온장고 등 살림도 장만하고, 겨우내 장사 잘했어요. 하루에 500개 파는 날도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니까 기름을 싫어하는 분들이 나타나더군요. 마가린 기름은 유럽 쪽에서 금지된 식품이라고 해서 과감하게 접어버리고 새로 개발한 것이 ‘허니 치즈호떡’입니다.

 

진짜 명품을 개발해보자고 다짐하고 도전했는데,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호떡을 굽는 게 굽는 도구 제작하기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하루에 10~20개씩 먹으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죠. 그래도 맛이 좋다며 특허를 내라는 손님도 있고, 반응이 좋아 보람을 느낍니다. 선택을 잘한 것 같아요. 이왕 시작했으니 노후 대책은 호떡으로 승부를 걸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발길을 돌렸다. 간이역에 적힌 역명(구암동-경암동-중동)이 눈에 들어온다. 그 역명 하나하나가 입안에 남아 있는 꿀 특유의 달콤 쌉싸래한 향과 조화를 이루며 철길마을에서 놀던 옛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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