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던 것부터 화근이었다. 유치장에서였다. 그 날 밤 나는 만취되어 통금에 걸려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그 곳에는 선객이 많았다. 완전 개판이 따로 없었다. 술 취한 인간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저희 아버지가 무슨 의원이라고 공갈치는 놈부터 담배 한가치만 빌려달라고 애원하는 비렁뱅이까지 난장판이었다. 한데 한쪽 구석에 술도 먹지 않은 멀쩡한 얼굴 하나가 멀뚱히 앉아있었다. 웅크리고 앉아있던 녀석이 조용히 일어나더니 웃지도 않고 철장 밖에 있는 당직형사를 손짓으로 불렀다. 책상에 엎디어 타자기를 두들기던 형사가 짜증도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담배 한가치를 뽑아 불까지 붙여주었다. 언뜻 보기에는 대단한 빽을 가진 것 같았다.
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소리 같아서 비위가 상했지만 따라 온 주제에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멀뚱히 쳐다보았다.
“어디 가서 해장이라도 한 잔 할까요?”
“좋지요.”
“무얼 좋아하십니까?”
“설렁탕을 좋아하시오?”
녀석은 내 물음에 대답도 없이 사람 좋은 얼굴로 되물었다.
“해장인데?”
“유치장에서 밤을 새웠으니 몸보신이나 합시다.”
나는 그 때까지 먹어보지 못한 설렁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막연히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에 부풀어 따라 나섰다. 앞서 휘적거리고 걸어가던 녀석이 말지도 않은 곳에서 발을 멈추었다.
대동옥이라는 간판은 눈에 익었지만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집이었다. 유리문을 밀치자 몇 개의 탁자가 보이는 깔끔한 홀이 나왔다. 그가 서슴없이 걸어 들어가 안쪽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맞은편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입구 쪽에 카운터가 있고 젊은 여인이 앉아있었다. 문소리가 날 때 잠깐 일어나는가 싶었는데 흘끔 한 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제법 예쁘다는 생각을 했었다.
“소주 한 잔 하시겠습니까?”
나야 술 소리가 나오면 목구멍에 침부터 넘어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청한 자리라 부지불식 주머니를 만져보았다. 손에 집히는 지폐의 감각이 한 병쯤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럽시다.”
나는 쾌히 대답하고 내가 먼저 술을 청했다. 카운터에 앉아있던 여인이 조용히 일어나 소주병과 함께 삶은 고기 몇 점을 얹어서 들고 왔다. 소주 한 병에 안주까지 주는 것을 보면 녀석의 단골집인 모양이었다. ‘까짓 것이 지금 무슨 문제인가?’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잔을 들었다.
“한 잔 하시오.”
“고맙습니다.”
“에이, 하룻밤도 인연인데 우리 말 트자.”
녀석이 느닷없이 제안을 했다.
“좋지요.”
“요, 자 빼자니까.”
“그러지 뭐.”
나는 녀석이 건네주는 소주잔을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빈속에 싸하게 가슴을 타고 내려가는 소주 맛이 그만이었다. 마침 내온 설렁탕 국물을 한 수저 떠먹었다. 구수한 맛이 입맛을 당겨주었다.
“한 잔 받아라.”
녀석이 빈 잔을 내밀었다.
“아니다. 나는 술 못 한다.”
“무슨 소리? 술은 왜 시켰어?”
“너 먹으라고.”
술을 아예 못 먹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성병이라고 걸렸나보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딴 것에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우아한 폼으로 카운터를 흘끔거리면서 술잔을 거푸 입으로 가져갔다. 그윽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이 아니더라도 나는 녀석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녀석이 대동옥 주인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돈을 꺼내는 내 손목을 비틀어 내쫓아서 의아했는데 자기 집이라는 것이었다. 더욱 기분이 좋았다. 주인과 친구가 되었으니 언제든지 이곳에 올 수 있다는 순간적인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내 발걸음은 또 대동옥으로 향했다. 당연히 아침의 답례라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날 밤 술이 많이 취한 나는 카운터에 앉아있는 정자를 만났던 것이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그녀가 영락없는 정자였다. 이래저래 녀석과 친구가 되는 것이 정말 좋았다. 나는 틈만 생기면 대동옥으로 달려갔다.
따지고 보면 성진이에게 고맙다고 해야 했다. 카운터에 앉은 정자도 공술도 모두 녀석의 덕이 아니던가? 어쩌다가 내가 술값이라도 내려고 하면 녀석이 내 팔을 비틀어버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혼자서 마셔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게 공술을 먹인 것이 비록 여자 사냥에 미끼로 쓰려고 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도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우리는 마치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방살이를 하고 나온 동지처럼 의기투합해가고 있었다.
“야, 심 과장 술 한 잔 하자.”
과장 호칭이야 녀석이 제 멋대로 만들어서 불러주는 것이고 어느 날인가 퇴근시간에 맞추어 녀석이 날 찾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술 생각이 나던 참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한데 녀석이 나를 끌고 간 곳은 저희 집이 아니라 엉뚱하게 영화동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였다. 적잖게 실망스러웠지만 녀석이 드디어 성병이 나아서 술을 개시하려는 모양이라고 반가운 마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어머, 사장님!”
카페까지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한데도 문을 열고 뛰어나와 반기는 마담이 제법이다.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분홍빛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는 눈에 색 기가 흐르는 요염한 얼굴이었다.
“오늘 내가 귀한 손님 모시고 왔다.”
“귀한 손님은 이사장님뿐입니다.”
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소리 같아서 비위가 상했지만 따라 온 주제에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멀뚱히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