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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잊혀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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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1 16:06:3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월요일 아침 ‘김성진 사망’이라는 부고를 받고 내 기억 속에서 망자의 이름을 찾아내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떤 경로로 내게까지 부고가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헤어진 지 사십 년도 더 되는 세월이라 이름은커녕 얼굴이나 모습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더구나 상주와는 일면식도 없는 처지다. 한데도 그 먼 길을 찾아 장례식장까지 문상을 가야하는 것일까? 망설여지는 내 머릿속으로 섬광처럼 떠오르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혹여?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녀? 그녀가 지금껏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희미한 기억 속으로 빛바랜 사진처럼 떠오르는 얼굴이다.

 

그녀와의 이야기를 찾아내자면  군에서 제대를 하고 K시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하던 때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말이 직장이지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실업자나 다름없는  건달 비슷하게 살던 때다. 

 

시간 맞춰 출근을 할 일도 없어 서두를 일도 없고 혼자 몸이라 잔소리 할 사람도 없고 보면 늦잠은 필수였다. 오전 열 시쯤에 어기적거리고 일어나 세수랍시고 얼굴에 물 몇 방울을 찍어 바르고 셋방을 기어 나오면 주체할 수 없는 공복감이 밀려와서 출근하듯 달려가는 곳이 대동옥이었다. 내가 굳이 그 집을 단골로 고집했던 이유는 설렁탕 국물이 진한 탓도 있지만 집 주인인 성진이와 친구였던 인연 때문이었다. 

 

오전 열한 시, 내게는 그 시간이 딱 알맞았다. 점심시간 전이라 손님이 없어 한가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길 수도 있고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사는 별 볼일 없는 건달 같은 식생활에 어울리는 합당한 조건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내가 앉는 탁자 위에는 지방 신문이 한 부 놓여있었다. 지겨워도 단골손님이라는 배려였을 것이다. 신문을 펼쳐들었다. 하지만 기사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접힌 신문 사이로 카운터에 앉아있는 여인을 훔쳐보는 일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녀는 모른 채 애써 내 시선을 외면하곤 했다. 제법 예쁜 얼굴에 자그마한 체격이지만 볼륨 있는 몸매가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내가 그녀를 좋아했던 것은 쌕시한 몸매와 함께 변함없이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몇 마디의 말을 하는 것인지 다문 입에 모나리자 같은 엷은 웃음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굳이 이성을 논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와는 퍽 허물이 없어야 하는 처지였다. 한데도 그녀는 항상 나에게 서먹하게 대했다. 나도 애써 신문에 눈을 붙이고 그녀에게 무관심한 척 하지만 사실은 귀에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그녀의 작은 몸놀림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전날 밤에도 그녀 생각이 떠올라 잠까지 설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에 동화되듯 나까지 말문이 막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실 그녀와 내게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사실적으로 이혼녀라고 하지만 법적으로 엄연한 유부녀였다. 남편이 바람이 나서 딴 여자와 달아나기는 했지만 호적은 엄연히 김성진의 부인으로 올라있는 것이다. 또한 언젠가는 남편이 돌아오리라고 믿고 있는 눈치였다.

 

그녀가 내가 앉은 탁자 옆으로 스쳐지나가면서 언제나처럼 내게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얼마동안 내용도 모르고 내가 빨려 들어갔던 눈빛이다. 그 애절한 눈빛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고 성준이 녀석의 행방을 묻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실망감으로 마시던 술잔을 던져버리고 싶었었다.

 

적어도 친구였던 나에게만은 전후 사정을 말하고 도망쳤으리라고 믿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열 번을 물어도 나는 녀석의 행방을 몰랐다.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쳐다보는 애절한 그녀의 눈빛이 오히려 등이 서늘할 정도로 내게 부담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 내가 이 집을 열심히 들락거릴 때는 단순히 ‘친구가 사라진 마당에 친구 마누라를 지켜주는 것이 우정이다. 또 내 허기진 공복을 해결해 주는 데는 설렁탕이 최고다. 일석이조가 아닌가?’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한데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슬픈 눈 속으로 빠져들어 간 것은 순전히 정자 때문이었다. 정자는 내 초등학교 짝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첫사랑인 셈이다.

 

크고 검은 눈, 물기를 머금은 애절한 시선, 어느 날 문득 그녀의 눈빛이 나를 떠날 때의 정자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전신에 오한 같은 떨림이 와버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색을 할 수도 없어서 겉으로는 당연히 우정 때문이며 설렁탕 국물이 좋아서 이 집에 출근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선진이가 행방불명되었을 때 나도 발걸음을 끊었어야 옳은 처사였다. 한데도 발길을 끊지 못 했다. 내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자책감이 있기도 했지만 더 솔직히 말해서 그녀의 모습에서 정자를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아니 사랑하고 싶었다. 애꿎은 설렁탕 국물에 대낮부터 소주나 마시는 내 꼴이 그녀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신문을 뒤적이는 척 하면서 그녀를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오늘따라 작고 예쁜 그녀의 엉덩이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저렇게 얌전하고 예쁜 아내를 두고 녀석은 어디로 도망을 친 것일까? 세상일은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수육이 담긴 접시를 들고 왔다. 신문을 던져버리고 어제 먹다 남은 소주 반병의 마개를 열었다. 빈속에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면 짜르르하게 식도로 타고 내려가는 자극이 아주 그만이었다.

수십억짜리 아방궁에 살면서 몇 십만 원짜리 점심 한 끼를 먹어치우는 사람들이 들으면 쥐새끼 콩알 까먹는 소리라고 웃어넘기겠지만 진한 설렁탕국물에 소주 한 병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앞에 두고 마시는 맛은 정말 꿀맛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소리를 하는 나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렁탕과 함께 목을 간질이면서 넘어가는 소주 맛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말 할 자격이 없다. 그 때 나는 진정 설렁탕국물에 소주를 마시면서 순녀라는 그 여자를 품에 안고 대동옥 주인이 되어 살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만족하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사실 성진이와 친구가 된 것은 순전히 술 때문이었다. 고향이나 학교도 아무런 연이 없었다.  우리는 취미부터 엇박자였다. 내가 주(酒)라면 녀석은 색(色)이라고 할까? 주색잡기를 합친다면 모를까? 도시 서로가 어울릴 수 없는 상극이었다.

사람들은 주와 색을 묶어서 한통속으로 친다. 하지만 처음부터 녀석과 나는 동질의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주와 색을 함께 묶지 마라. 무슨 개소리냐?’가 언제부터인지 내 머릿속을 휘젓는 화두였다. 그 무렵 나는 술에 빠져있었다. 물론 술과 여자 둘 다 가지라면 얼씨구나 하겠지만 둘 중에 하나만 택해야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술병을 집어 들고 있을 때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군에 입대하기 잔에 정자가 나를 뿌리치고 가버린 후부터였다. 하지만 녀석은 달랐다. 사건이 어떻게 되든 무조건 여자만 탐했다. 술이라면 밀밭 근처에도 못가는 녀석이었다. 대신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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