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인지조차 모를 영감을 생각하면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어진다. 코털 하나를 뽑아서 영감 쪽으로 훅 불었다.
“밤새 안녕이라고 하더니 돈 좀 벌었나?”
제법 거드름을 피우면서 걸어 들어오는 폼이 기분이 몹시 얹잖다는 표정이었다.
“이자는 준비되었는가?”
일부러 못들은 척 했다.
“내 말 안 들려?”
당장 언성이 높아졌다.
“이 방에 귀먹은 사람 없소.”
“그래? 한데 왜 대답이 없어?”
“하기 싫어서요.”
영감도 달라진 분위기를 눈치 챈 모양이다.
“오늘이 월말이 아니던가?”
“말일 날 호떡집에 불납니까?”
“이것 보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이보쇼? 송만섭씨? 당신이야 말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
“뭐야? 영감님 소리도 잊어먹은 걸 보니 이놈이 완전 미쳤군.”
“영감 좋아하네, 이제 땡감이라고 하라고 해도 싫다. 당신에게 뜯기다 못해 돌아버렸다.”
“이놈이 갑자기 쥐약을 먹었나? 이놈아 달력을 봐라. 오늘이 말일이다 그 말씀이다.”
“말일이 겁나던 때는 지나갔다.”
하룻밤 사이에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춘삼의 태도에 조금은 당황하는 듯 싶더니 뭔가 눈치를 챈 듯 고개를 홱 돌려 노려보았다.
“너 이놈 땅 팔렸구나.”
“팔렸으면?”
“돈을 내 놓아야지.”
“이자 받아먹은 건 어쩌고?”
“이놈아 그건 네 사정이고.”
“원금 주면 되겠소?”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계약서를 보자.”
“판 금액이 얼만데 당신을 다 주어?”
“이놈 봐라? 남의 돈으로 사기를 쳐?”
“동업 파기한 것이 누구요?”
“이놈아 일단 원금은 내놓고 계산을 하자.”
늙은이 통수가 훤하다. 원금을 주고 나면 일단 받고 나서 또 다른 소리를 할 것이다. 이렇게 영감과 붙으면 손해 볼 것은 당연하다. 한 목소리 낮추어 다시 사정하는 척 했다.
“영감님, 사실은 내가 너무 답답해서 한 소리요. 요즈음 누가 땅을 사 가겠소? 이자 돈이 준비되지 않아서 내가 미친 척 한 것이요. 이해하고 조금만 봐 주시오.”
“이놈 봐라, 나를 갖고 놀고 있네? 너 이놈 사정을 보아주었더니 아니 되겠다. 내친 김에 원금 내 놓거라.”
송만섭은 다시 기가 살아났다. 이번에 아주 춘삼의 목줄을 확실하게 조이고 말겠다는 투였다.
“땅 팔리면 오죽 잘 넘기겠소?”
“헛소리 집어치워 원금 당장 내놔야 쓰겄다.”
“내 사정 뻔히 알잖소?”
“소용없는 소리 하들 말고, 당장 내놔.”
“원금이 얼만지 차용증이나 한번 봅시다.”
“흐흐흐. 이놈아, 내가 집에 두고 온 줄 알고 수작을 부리지만 어림도 없다.”
영감은 안주머니에서 지감을 꺼내 차용증을 꺼내 탁자 위에 탕 소리가 나게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즉시 돈을 내 놓으라고 하는 말이요?”
“이놈아, 자업자득이다.”
“못 내놓으면?”
“콩밥 좀 먹어야지.”
“차용증 봅시다.”
“눈 뒤집고 보아라.”
춘삼은 천천히 차용증 앞으로 다가갔다.
“이놈아, 돈 놓고 쳐다보아라.”
“당신이 변조를 했는지 확인을 해야 할 게 아니오?”
“어림없는 수작.”
영감이 재빨리 차용증을 뒤로 감추었다.
“이거 보이시오?”
춘삼도 안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흔들었다.
“어? 이놈 정말이네.”
돈을 본 영감이 눈이 뒤집혀 차용증을 손에 들고 수표의 금액을 확인하려는 듯이 다가왔다.
“쳐 먹어라.”
춘삼은 차용증을 나꿔
채면서 영감 앞으로 삼천만원짜리 자기앞 수표를 던졌다.
영감의 눈이 커졌다.
“너 이놈 이 돈 어디서 났어?”
“땅 팔았다니까.”
“그럼 이익금도 나누어야 할 게 아냐?”
“웃기고 자빠졌네. 이자 받아 쳐 먹은 건 누군데.”
“이놈 뒷조사 좀 해봐야겠다.”
“뒷조사 해보면 너는 기절할 거다.”
“이놈!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기르지 말라고 했는데.”
영감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춘삼이 판 땅값이 얼마나 될지 몹시 궁금할 것이다.
“당신 덕에 그 동안 키가 많이 컸소.”
“배은망덕한 놈.”
“영감 잘 보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