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춤 쟁이다. 다시 말해서 제비다. 변두리 골방에 비밀 댄스홀을 만들어 놓고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는 중인데 성업이다. 낮에는 할 일 없이 다방에서 노닥거리지만 오후가 되면 발에 땀이 나게 바쁜 친구다. 덕분에 가끔씩 생각지 않은 술도 얻어먹는다.
“야, 오늘은 네가 날 좀 도와다오.”
“내가 무슨 재비냐?”
“제비가 따로 있냐? 돈 많은 늙은 닭이니 비위만 잘 맞춰주면 흥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술만 사 주어도 좋다.”
“오케이, 기다려.”
녀석이 분주하게 전화를 걸어대면서 낄낄대더니 삼십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일어났다.
“가자.”
“어디로?”
“카바레다.”
“술이나 한 잔 하자니까 웬 카바레냐?”
“술은 카바레에도 지천이다.”
“나는 춤도 잘 못 추는데.”
“그 딴 것은 걱정 하지도 마라. 붙잡고 돌아가면 그만이다. 늙은 닭이라 춤보다 다른 곳에 관심이 있다.”
“괜찮을까?”
“너 정도면 물건 값 나간다.”
“춘삼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영감의 돈만 갚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싶었다. 녀석 덕분에 블루스는 몇 번 손을 잡아 보았지만 술이라면 모를까 사실 춤에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제비 노릇으로 제법 거들먹거리며 살고 있는 녀석을 보면 그냥 발만 뺄 일이 아니다. 밑져야 본전이다. 더구나 오늘은 기분이 찝찝해서 술이라도 얻어먹으면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따라나섰다.
한데 참 묘한 인연이다. 카바레 앞에서 태섭이와 약속한 여인을 보면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나왔는데 그녀들 중 하나가 조금 전 병원복도에서 부딪친 덩치 큰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호호호, 좋은 인연인가 봐요 하루에 두 번씩이나 만나고.”
용케도 그녀가 먼저 기억을 해주었다. 한번 보고도 기억을 하는 것을 보면 눈썰미가 좋은 여인 같았다.
“병원 복도에서는 죄송했습니다.”
“아니, 남자 냄새가 좋던데요.”
시작부터 노골적이었다.
“병원에는 왜 갔어요?”
“문병이요. 사모님은요?”
굳이 영감과의 관계를 까발리고 싶지 않아서 시치미를 뗐다. 그녀가 영감과의 관계를 알 리가 없었지만 혹시라도 눈치 채면 술커녕 귀싸대기나 얻어맞기 십상이다.
“우리 영감탱이가 사고로 입원을 했어요.”
“많이 다치셨어요?”
시치미를 딱 떼고 모르는 체 물었다.
“가끔씩 그래요. 영감 주특기로 억지를 쓰거든요.”
그녀가 영감과의 관계를 알면 표정이 어떨까? 웃음이 나온다. 허둥대는 춘삼과 달리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 입술이 유난히 번들거린다고 생각을 했다. 병실로 사들고 갔을 보신탕을 맛있게 먹은 모양이다. 그 서방에 그 마누라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여자를 홀려야 한다. 영감에게 복수를 하는 길은 이 여자를 사정없이 짓밟아버리는 것이다. 좋다 어디 해보자. 절대 절명의 사명감을 안고 덤벼들었다.
“사모님 한 곡 추실까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태섭이는 같이 온 그녀의 친구를 꿰차고 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벌써 무르익었는지 그녀가 녀석의 품에 달싹 안겨있다.
“잘 못 추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비 친구에게 얻어들은 풍월로 블루스 스텝을 밟으면서 몸을 밀착시키고 그녀의 귓불에 대고 속삭였다.
“사모님, 피부가 너무 고우십니다.”
“고마워요. 젊어서는 날씬했는데......”
그녀는 아무래도 튀어나온 아랫배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자꾸 숨을 들어 마시며 감추려 하고 있었지만 튀어나온 배 때문에 아랫도리가 더 가까이 밀착되고 있었다.
“사모님은 지금이 어울리십니다.”
“피, 흉보지마.”
“사실입니다. 점잖고 품위가 있으신 사모님에게는 다소 중량감이 있어야 합니다.”
“흐흐흐 말솜씨도 좋아.”
그녀는 숨까지 헐떡이며 블루스 곡에 따라 큰 아랫배를 밀착시켜오고 있었다. 녀석에게 배운 대로 무릎을 들어 그녀의 사타구니 근처를 살살 문질러 주었다.
화끈거리는 입김이 귓가를 간지럽게 했다. 이때다 싶어 그녀의 큰 둔부를 두 손으로 살짝 감싸 안았다.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카바레에 오는 여자들은 아예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나와야 얻어먹을 게 있다고 했다.
“사랑합니다.”
“처음보고?”
“사모님은 제가 만나본 여자 중에 가장 멋진 분입니다.”
“거짓말이라도 듣기 좋아.”
벌써 세 곡이나 추었다. 숨소리가 가빠지던 그녀가 몸으로 q=밀쳐 어두운 홀 귀퉁이로 끌고 갔다. 갑자기 그녀가 입술을 덮치면서 몸을 밀착시켜왔다. 진한 분 냄새와 함께 여자 살 냄새가 왈칵 입안으로 들어오면서 비위가 상했지만 이상하게 하체에는 힘이 벌컥 올라왔다.
“나갈까?”
기다리던 소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빠르게 팔을 놓더니 앞장섰다. 이쪽을 살피고 있었던지 태섭이가 춤을 추면서 야릇한 눈빛과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꼼 장어에 소주 한 잔 할까?”
그녀가 엄지를 들어 뒤로 세우며 음탕한 미소를 띠였다. 아마 정력에 최고라는 소리일 것이다. 좋다 이렇게 된 바에야 먹고나보자는 심사로 덤벼들었다.
“몇 마리나 먹어야 될까요? 사모님.”
할 수만 있다면 맹한 체 해주어야 한다.
“사모님 소리 좀 치워.”
“뭐라 부르리까?”
“누나.”
“그게 좋겠군요. 누님.”
“호호호 센스까지 있네.”
그녀는 만족하게 웃었다. 소주에 꼼 장어를 포식했다. 아직 이른 초저녁이다. 그녀가 서슴없이 골목에 있는 여관으로 앞장서서 들어갔다. 퀴퀴한 방안 냄새가 말초신경을 더욱 자극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