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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농장주들 입맛에 맞게 그어진 호남선과 군산선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4.12.01 10:23:2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구 군산역은 1912년 3월 6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다. 당시에는 초가집도, 인적도 뜸한 군산의 외곽지역으로 옥구군 미면에 속해 있었다. 경포천 지류를 끼고 서래산과 팔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역사(驛舍)는 일본 전통양식 2층 높이의 1층 목조건물로 구조와 외관이 북한의 평양역과 같아 그 자체만으로 볼거리였다 한다. 

 

1916년 제작된 군산부 지도를 보면 군산역 부근(지금의 대명동, 신영동 금암동, 장재동, 미원동, 중동, 경장동, 조촌동)은 논과 갈밭이었다. 내항선도 째보선창 부근에서 멈추었다. 지금의 중동 로터리에서 구암동까지 길은 제방(뚝 길)으로 표기해놓았다. 따라서 승객들은 합죽선처럼 펼쳐지는 갯벌과 은빛 반짝이는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하며 기차여행을 즐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1923년 제작된 지도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철로가 내항 깊숙이 연장되고 기존 도심지와 군산역 사이(대명동, 신영동)에 시가지가 조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원도심권이 지금의 월명동, 명산동, 신흥동까지 확장되고 승객이 4배로 증가한 시기로 경제성, 편리성 등을 들어 군산역을 세관 부근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본인 중심으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흑백사진을 통해 보는 일제강점기 군산역 광장은 인력거 5~6대가 출구 쪽에 대기하고 있고, 손님을 태우고 출발하는 인력거꾼과 지게꾼도 보인다. 기차가 도착한 후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오간다. 갓을 쓴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 중절모에 양복 차림의 승객들은 시대극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군산역에는 목조로 된 공중전화부스에 전동식 전화기도 설치하고 통화료를 받았으며, 기차 도착 시각이 가까워지면 인력거와 택시, 지게꾼이 모여들었고, 호객꾼들이 자신의 여관 이름이 적힌 대나무로 만든 일본식 등(燈)을 들고 손님을 잡아끄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다. 2000년 화재사건 이후 사라진 대명동 윤락가(히파리마찌)도 이때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당시 군산역 광장에는 우(牛)시장과 재래식 오일장(1일, 5일)이 섰으며, 고치를 말리는 건견장도 있었다. 마츠리 축제(10월 1일) 때는 일본인들이 군산 신사의 신을 모신 금상여를 메고 명치통(중앙로 1가), 소화통(중앙로 2가)을 지나 군산역 광장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갔는데, 이때 스모 경기도 하는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만남과 이별의 장소였던 군산역 광장. 해방 후에는 학도병 출정식, 군인들 열병식, 우승컵을 가슴에 품고 금의환향하는 선수들 환영식, 익산·전주행 합승 총알택시 정류장, 선거철에는 후보들의 유세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동 로터리와 연결되는 4차선 도로가 개설되어 그 시절 모습들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영욕의 세월을 시민과 함께해온 군산선

 

호남선 지선인 군산선(군산~이리)은 단선(23.1㎞)이었다. 그럼에도 쌀의 반출량이 수십, 수백 배 늘어난 것을 비롯해 인구 증가와 역세권 확장, 철도를 통한 일본 자본과 물자의 조선 내륙시장 잠식, 여객과 화물 수송 확대로 인한 강경 시장과 조선 객주들의 몰락, 쌀 수탈과 만주 침략의 전진기지 병행 등 일제는 기대 이상으로 목적을 달성한다. 

 

일제는 호남의 관문 군산을 곡식 수탈의 전진 기지로 삼기 위해 호남선 강경~이리 구간과 군산선을 동시에 개통한다. 1921년 철도가 내항까지 연장되고, 1924년 6월 1일 임피역과 개정역이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한다. 1929년 12월 1일부터는 64인승 기동차가 군산~전주 운행을 시작한다. 

 

1931년에는 철도가 군산 세관 뒤편까지 연장되고, 그곳에 들어선 군산항역이 시발역이 된다. 따라서 군산선은 총연장 24.7㎞로 늘어난다. 1944년 4월 북선제지 군산 공장 전용선(페이퍼 코리아선)이 개통된다. 1953년 2월 미군부대 보급품을 수송하는 군산 비행장선(옥구선)이 완공되고, 1953년 6월 1일에는 지경역이 대야역으로 역명이 변경된다. 

 

일제의 수탈이 절정에 달하고, 군산이 호남의 대도시로 주목받기 시작하는 1930년대 들어서는 중앙 언론사 군산 지국이 주최하고 군산역이 후원하는 금강산 관광(침대칸 이용)이 붐을 이룬다. 1932년 8월 20일 자『동아 일보』는 7박 8일 일정으로 내금강‧외금강, 해금강, 원산, 경성 만몽(満蒙) 박람회 등을 돌아보는데 참가비는 1인당 26원으로 기차, 자동차, 선박, 숙박료, 식대 등 경비는 일절 주최 측이 부담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1939년 11월 1일 군산역 열차 시간표를 보자. 출발은 오전 5회(첫차 04시 40분) 오후 9회(막차 22시 55분)이고, 도착은 오전 6회(첫 도착 00시 56분), 오후 8회(마지막 도착 22시 00분), 하루 28회 운행하고 있음을 확인된다. 단선임에도 열차마다 2등 칸을 배치해서 눈길을 끈다. 특히 20년이 지난 1959년 운행 횟수보다 8회나 많아 식민지 시절 군산의 경제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군산선을 통해 오간 화물은 곡물과 일본 상품, 군사 물자 등이 주종을 이뤘다. 해방 후에는 주한 미군 화물 운송과 군산항 주변 공장(한국 주정, 화력 발전소 등)과 째보 선창 인입 철도 역할도 수행한다. 한국 전쟁 때는 역사(駅舎)가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전쟁 후에는 회사원, 통학생, 상인 등 서민층이 주 고객이었으며 객차가 부족해 승객들이 화물칸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기차가 대중화되는 1960년대에는 군산~대전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가 처음으로 등장해서 관심을 모았다. 매일 새벽 군산역을 출발하는 군용 열차로 사람들은 철도 운송 사령부를 뜻하는 영어 약자 ‘알티오(RTO)’라 불렀다. 이리에서 호남선이나 전라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불편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주로 대전과 서울을 자주 오가는 사업가와 통학생들이 이용하였다. 

 

시골 총각처녀들 가슴을 설레게 했던 기적소리. 군산선을 오간 증기기관차는 미카, 터우, 소리, 프러 등이었다. 그중 '미카'와 '터우' 는 몸집이 우람하였고 ‘소리’는 중간형이며 '프러'는 몸집이 왜소했다. 연료인 석탄을 싣는 칸도 훨씬 작고 짧았다. 그 ‘프러’ 기차가 ‘뙈뙈’거리고 지나는 소리는 마치 변성기 소년 목소리를 닮아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러나  1967년 8월 31일 이후 디젤기관차 시대가 열리면서 증기기관차는 볼 수 없게 된다. 

 

운송의 핵심 역할을 담당해 온 철도는 도로 교통의 발달과 자가용 증가로 승객이 감소한다. 군산선 열차는 1988년 비둘기호 하루 왕복 26회, 1990년 20회, 1993년 14회 운행했다. 1996년 5월 15일에는 비둘기호 운행을 중단하고 도시형 통근 열차 통일호를 군산~익산~전주 간 하루 왕복 14회 운행한다. 여객 수송 업무를 마감하는 2007년(군산~익산)에는 하루 왕복 16회 운행한다.

 

1970년~1980년대에는 군산역 광장에서 익산이나 전주행 합승택시(총알택시)가 호황을 누리다가 자가용이 증가하면서 사라졌다. 그렇게 군산 시민과 애환을 함께해온 군산선 열차는 증기 기관차, 비둘기호, 통일호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1세기 가까이 운행해오다가 2007년 12월 31일 밤 10시 25분 익산행 열차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여객 운송 기능을 군산시 내흥동의 신 군산역에 넘겨준 군산역은 2008년 1월 1일 대야~군산 구간이 군산 화물선으로 지정되면서 군산 화물역으로 바뀐다. 홀로된 보초병처럼 외롭게 자리를 지키던 화물역 건물도 2011년 경암동 2호 광장~군산역 로터리 4차선 도로 공사 때 사라진다. 지금은 붉게 녹슨 철길과 덩그러니 서 있는 급수탑만이 영욕의 100년을 말해주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군산 화물선은 운행이 중지된 상태로 매월 3~4회 옥구선을 이용하는 부정기 화물만 거친다. 앞으로 한국 철도 시설 공단이 추진하는 익산~대야(14.11㎞) 구간 복선전철화 사업과 군장 국가 산업 단지 인입 철도가 완공되면 옥산 신호장에서 옥구선과 연결되어 군장 산업 단지 철도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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