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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울음소리를 못들어서...많이, 울었어요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1.11.01 16:52:2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한 주일을 시작하는 어제(10월 17일). 수화통역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30분 일찍 도착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호떡을 사 먹으며 호떡집 주인과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다. 1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호떡가게 '중화 호떡'은 구 경찰서로터리 동령고개 방향 모퉁이에 있다.  

 

호떡은 1000원에 한 개, 2000원에 세 개씩 판다. 트럭으로 다가가 2000원을 내민다. 말이 필요 없다. 호떡장수 부부가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 호떡처럼 둥근 얼굴의 아주머니가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얀 봉지 하나를 집어준다. 아주머니가 급히 트럭 뒤로 가더니 보온병을 가져와 봉지커피 한 잔을 주며 손짓한다. 마시라고 권하는 눈치다. 나도 고맙다며 고개를 숙인다. 호떡 2000원어치 사 먹는데 커피까지 나오다니 서비스가 그만이다. 

 

금방 구워낸 거라서 따뜻하다. 얼마나 맛있는지 맛보려고 하나를 꺼낸다. 입에 넣자 단맛이 은근히 감돌면서 바삭바삭하다. 과자인지 호떡인지 헷갈린다. 그럼에도 자꾸 입에서 당긴다. 점심으로 짜장면 한 그릇을 먹었는데도 호떡 세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아주머니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한다. 눈이 마주칠 때는 눈웃음까지 친다. 나도 따라서 싱글벙글하지 않을 수 없다. 웃음은 보약이라는데, 2000원 주고 꿀떡보다 맛난 호떡 세 개에 보약까지 먹었으니 이득은 호떡장수보다 내가 더 많이 취한 것 같다. 

 

오후 2시가 넘어간다.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수화통역사다. 급한 일이 생겨 약속 시각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전화다. 10분 내로 오겠단다. 죄송하기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으니 30분 늦게 도착해도 고마울 따름이다.  호떡 가게에 40분 있는 동안 손님이 다섯 명 다녀갔다. 그중에는 1000원 주고 한 개만 사 먹는 학생도 있고, 세 봉지를 사가는 아주머니도 있고, 자가용을 타고 와 사가는 사모님도 있다. 시간이 짧아 장사가 잘 되는지 안 되는지는 감을 잡을 수 없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거리도 밝다. 청잣빛 하늘과 호떡 파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홍두깨를 열심히 굴리는 남편은 호떡공장 공장장, 주변을 정리하며 호떡을 파는 아내는 영업상무 겸 여사장처럼 보인다. 남편은 축농증이 심한지 연신 코를 '킁킁'거린다.  주변을 맴돌며 호떡가게 장사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옛날 생각들이 시나브로 떠오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국화빵 기계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코흘리개 시절, 그때는 밀가루 타는 냄새가 어찌 그리도 구수했던지.

 

수화통역사 최은주(40) 씨가 도착했다. 지인의 소개로 전화통화만 한 번 했을 뿐인데 금방 알아봤다. 그의 통역으로 호떡장수 부부 나이와 이름, 고향 등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양형철(51), 아내는 송영숙(53)이라고 한다. 1남(25) 1녀(28)를 둔 연상부부.  남편은 옷 수리공, 아내는 세탁 일을 하다가 호떡장수를 시작한 지 18년 되었단다. 서울에서 호떡 노점상을 하는 친구에게 밀가루 반죽하는 방법과 굽는 요령 등을 배웠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기름을 바르지 않은 호떡을 만들 수 있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갖게 된 것도 알았다. 

 

양형철, 송영숙 부부는 군산 명화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만나 사귀다가 29년 전 결혼했단다. 부부가 외국여행(중국)도 다녀왔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시종 보름달처럼 환한 얼굴이다. 두 부부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있었던 일들을 꼼꼼하고 성실하게 답변해 준다.  

 

맥군_ 하루 수입은 얼마나 되나요?

하루에 12만~13만 원 정도 벌어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이곳에서 하고, 주말에는 시민회관 앞에서 하는데, 20만 원 가까이 올리는 날도 있어요. 

 

맥군_ 두 분이 고생하며 버는데 그 금액으로 만족하시나요?

그럼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음) 비 오는 날은 영업을 못하니까, 한 달로 계산하면 200만~250만 원 정도 됩니다. 그 돈이면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어요. 딸은 충주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고, 군대 부사관 시험 준비하는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나가거든요. 

 

맥군_ 집은 장만하셨는지?

아직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주공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지요. 그래도 불편한 것은 없습니다.

 

맥군_ 쉬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고 지내나요?

호떡 장사는 쉬는 날이 없습니다. 다만,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오면 쉬죠. 그때는 집에서 TV를 보거나 거실에서 책을 읽으며 보냅니다. 

 

맥군_ 두 분이 무척 다정하게 보여요. 혹시 부부싸움 같은 거 해보셨나요?

그럼요. 싸울 때가 있죠. 평소에는 싸우지 않는데 TV 드라마 시청하다가 채널 선택을 놓고 싸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항상 제가(남편) 이겼어요. (웃음) 

 

맥군_ 1남 1녀 두었다고 했죠. 키우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아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힘들었어요. 밤새도록 교대로 자면서 아이를 지켜봐야 했으니까요. (아내를 가리키며) 칭얼대는 아이를 재운 후 저 사람이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크니까 수화를 잘합니다. 딸하고는 가끔 화상 전화로 하지요. 우리(장애인)가 사용하는 화상 전화 요금은 좀 내려주면 좋겠어요.   

 

맥군_ 지금 만들고 계신 호떡 자랑 좀 해주세요.

특별히 자랑할 것은 없고, 전통 호떡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리고 친구는 기름을 발라서 구웠지만, 저는 담백한 맛을 내느라 기름을 바르지 않고 굽습니다. 느끼하지 않고, 다이어트 걱정 끝이죠.

 

맥군_ 영화 <도가니>를 보셨는지요?

한글 자막을 보여주는 채널이 없어서 못 봤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자막은 봐서 조금 알지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맥군_ 살아오면서 가장 고달팠을 때는 언제였나요?

언제라기보다는 어려서부터 질시와 차별, 냉대를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속상해서 죽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지금은 웃으며 살지만, 마음고생하며 살아온 얘기들은 말(수화)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두 부부는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뜻밖이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당시 가장 먼저 희생된 시민군이 청각장애인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은 총소리에 놀라 피했는데, 듣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전진하다가 총에 맞고 쓰러졌다는 것.  인터뷰를 마치자 두 사람은 다시 호떡 굽는 일을 시작한다. 그들은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러나 눈물샘이 말라버려 나올 눈물이 없어서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질시와 차별, 냉대로 죽고 싶을 때도 여러 번 있었다는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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