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말입니까?”
“치료비 말일세.”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번 사고는 자네 책임이란 말이야.”
“허허허.”
어이가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멀쩡한 사람을 어째서 택시에 태웠냐?”
억지도 유분수지 해도 해도 너무한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자네가 부른 택시가 사고를 낸 거야. 다른 택시를 탔으면 사고가 날 리 없었던 것 아니냐고.”
“뭐요?”
“이제야 알아듣는 모양일세.”
“무슨 이딴 인간이 다 있냐?”
춘삼은 이가 갈렸다. 돈 몇 푼 때문에 지금가지 영감님 어쩌고 하면서 따라다닌 것이 기가 막힌다. 하나님도 이상하다. 이 세상에 저런 인간을 존재시키는 것이 원망스럽다.
웩-.
갑자기 구역질이 나왔다. 병원냄새가 역겨워서가 아니다. 영감의 얼굴만 보아도 비위가 상하는 것이다.
“자넨 병원냄새를 싫어하는가 보지?”
“그런가 봅니다.”
“잘 생각해 봐.”
“뭘 말이요?”
“자네가 택시를 불러오지만 않았다면 부러지지 않은 멀쩡한 목으로 지금쯤 우래옥에 앉아 냉 막걸리를 즐기고 있을 것이 아니던가?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 것은 나란 말일세.”
“그래서 어쩌란 말이요?”
“각서부터 써.”
“무슨 각서요?”
“치료비 전액을 책임지겠다는 내용이면 되네.”
“나 미치겠군. 내 모를 줄 아시오? 택시 기사들에게 받아먹고 또 나한테 받아먹으려는 수작 아니요?”
“이건 이중이 아니라 만약을 위해서야. 기사 말대로 무보험에 무면허라면 내 치료비는 누가 책임질 거야?”
“형사처벌이 더 무섭지요?”
“징역을 가든지 말든지 그건 내가 알바 아니고, 내 치료비 말이야.”
“너무 합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하는 것뿐이야.”
“잘 해 보시오.”
“각서 못 쓴다 그 말이지?”
“각서는 그만 두고 X서도 못쓰겠으니 마음대로 하쇼.”
춘삼은 와락 탁자를 밀치고 병실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밖으로 나왔다. 등 뒤에서 가래 섞인 목소리가 음침하게 들렸다.“
“이봐 허 사장 말일이 며칠 남았는지 아는가?”
“그 X같은 소리 좀 집어치워.”
어지간히 화가 났다. 이제 될 대로 되라 싶었다. 병실 밖 숲속에서 매미 한 마리가 목이 쉬어 넘어갈 듯 지쳐서 울고 있었다. 어느새 소나기는 지나가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애라, 이 순 개 같은 인간아.”
욕을 해주어도 속이 시원치 않다. 아무리 미워도 빚진 죄인이다. 다시 한 번 병실에 들러 영감의 진심을 보고 싶어 복도로 들어가다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어?”
복도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여자와 몸을 부딪쳤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덩치가 제법 큰 여자다. 허둥거린 죄로 먼저 사과를 했다. 여자가 그 큰 등치를 흔들면서 웃었다. 향수냄새까지 물씬 풍기는 중년여인이 밉지 않았다. 돌아서서 걷던 춘삼은 또 한 번 놀랐다. 그녀가 영감의 병실로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 여인이 지금 병실로 오고 있다는 영감의 마누라? 그러고 보니 제법 어울리는 모습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 놈에 그 년 아니겠는가? 보신탕 좋아하게 생겼다. 마누라까지 얼굴을 익힐 필요가 없어서 다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나오고 말았다.
퉤.
춘삼의 눈에는 영감의 마누라까지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병원 뜰에 짙은 어둠이 깔려오고 있었다. 소나기가 훑고 지나갔는데도 가로수 잎은 늘어진 채 칠월의 열기는 더욱 후끈거렸다. 더구나 영감 때문에 열을 받은 처지여서
가슴가지 답답해지고 있었다.
입 안이 텁텁하다 집으로 들어갈 마음이 아니다. 오늘도 마누라는 눈에 시퍼렇게 불을 켜고 영감이 걷어갈 이자 돈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천 원짜리 몇 장이 잡힌다.
소주나 한 잔 하고 싶다. 그렇다고 혼자 청승을 떨기도 그렇고 만만한 것이 태섭이다. 녀석은 지금쯤 다방에서 죽치고 있을 것이다. 땀이 등에 배지 않게 느리게 걸어서 초원으로 갔다. 녀석이 언제나처럼 레지와 노닥거리고 앉아 있었다. 군대생활부터 함께 했던 이 바닥에 하나 있는 친구다.
“야! 왜 그렇게 우거지상이냐?”
“장사가 잘 안 되냐?”
“더위에 열 받아서다.”
“오뉴월인데 더운 건 당연하지.”
“그 미친놈의 영감 때문에 죽을 맛이다.”
“털어버렸다며?”
“아직 돈을 못 갚았거든.”
“임마, 그 돈 몇 푼에 질질 메고 있을 게 뭐냐? 내가 돈 많은 암탉 한 마리 소개해 주랴?”
녀석이 새기 손가락을 펴보였다.
“네 말대로 기둥서방 노릇이라도 해야 할 모양이다.”
“임마, 진즉 그럴 일이지. 얼마 전에 늙은 암탉 두 마리 꼬드겼는데 한 마리를 맡을 놈이 없어서 미루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