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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비열한 동행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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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1 13:08:00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택시가 소나기 때문에 충돌사고라도 났나? 정말 다리라도 부러졌다면 기분이 좋겠다. 하지만 방금 들은 전화목소리는 멀쩡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몇 번이나 그냥 되돌아갈까? 망설였다. 하지만 한 편 생각하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입원실이라는 303호 문을 열었다.

  “허 사장 왔는가?”

  “무슨 사고요?”

  눈을 크게 뜨고 빈말로라도 놀라는 척 해주어야 했다. 한데 아무리 살펴봐도 팔이며 다리가 멀쩡하다. 좁은 방안에 좁은 철침대가 놓여있고 영감은 눈알을 뒤룩거리면서 누워있다. 표정을 감추었지만 멀쩡한 것이 오히려 서운했다. 침대 밑에 조금 전에 그를 태우고 출발했던 젊은 택시 기사와 함께 젊은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차를 바꿔 탔습니까?”

  “아냐, 이 사람 차가 뒤에서 받았어.”

  “아 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저로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 잘 했다는 거야?”

  “쌍방과실이라는 거지요.”

  “이 사람아 이 어른이 누군 줄 알아?”

  다리라도 부러졌다면 모를까 멀쩡한 영감을 보고는 춘삼이 오히려 실망했다. 월말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넘기려면 일단은 영감의 편에 서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처음 보는데 누군지 어떻게 압니까?”

  젊은 가시가 볼 맨 소리다.

  “의원님이시네.”

  “네?”

  기사가 놀라는 표정으로 새삼스럽게 눈을 크게 뜨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 허 사장, 의원이라고 부를 때는 전 자를 먼저 넣으라고.”

  “알았습니다.”

  춘삼은 허리를 굽히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자네 콩밥 좀 먹어 볼 텐가?”

  자칭 영감이 목소리에 힘을 주면서 기사를 노려보았다. 시장이나 군수 그리고 판검사 말고 의원보고도 영감이라고 부르는지 알아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지 오래다.

  “의원님, 한번만 봐 주십시오.”

  지금까지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던 택시기사가 갑자기 겁먹은 얼굴로 변해버렸다.

  “전 이라니까.”

  “네, 전 의원님.”

  “무보험에다가 무면허로 택시를 운전하는 건 범죄야.”

  “잘못했습니다.”

  “다행히 목뼈가 부러졌다는 영감은 아무리 보아도 멀쩡하기만 하다. 목뼈는커녕 줄기도 다치지 않은 모습이다.

  “한번만 봐 주십시오.”

  “사회기강을 위해서도 이대로는 안 되는 거야. 근본적으로 택시회사를 고발해야겠어.”

  “아이고, 의원님 회사는 모르는 일입니다.”

  “왜 몰라?”

  “사실은 제 아버지 차거든요. 점심시간에 잠시 교대를 해준다고 나온 것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회사 책임자를 불러서 철저히 조사를 해야겠어.”

  갑자기 영감의 눈이 가늘어지면서 보일 듯 말 듯 한 웃음이 입가에 번지고 있었다. 새벽에 이자를 받으러 왔을 때의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내용을 대충 짐작할 것도 같다. 영감이 약점을 잡았을 때 공갈을 치는 표정인 것이다.

  “무슨 분부라도 받잡겠으니 제발 회사에만은 연락하지 말아주십시오. 제 아버지 면허가 취소되면 저는 최하 사망입니다.”

  “그래서 더 연락하겠다는 것 아냐? 자네들 같이 무법천지로 운전을 하고 있으니 시민들이 안심하고 택시를 탈 수가 없다는 것이지. 나는 전 의원으로서 이딴 불법을 보고 있을 수가 없다는 거야. 알겠어?”

  “살려주십시오.”

  “도주의 염려가 있으니 주민등록증부터 이리 내놔.”

  “여기 있습니다.”

  “거기다 놓고 우선 나가서 보신탕 두 그릇을 사와.”

  “보신탕도 배달합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재주껏 해 봐.”

  “알겠습니다.”

  어깨가 축 쳐진 기사가 주민등록증을 맡겨놓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버지 일을 도와주려다가 동티가 난 것이다.

  “아닙니다. 멀쩡한 저까지 신경을 쓰십니까?”

  자신에게까지 보신탕을 사주려는 영감의 마음을 고맙게 받아야 하겠지만 남의 약점을 이용해서 공짜로 선심을 쓰려고 하는 영감이 얄미워 손을 저었다.

  “자네는 뭐가? 아냐.”

  영감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치로 쳐다보았다.

  “사고도 나지 않은 저까지 보신탕 먹기가 미안해서요.”

  “별 미친 소리 다 듣겠네. 자네가 무슨 이유로 보신탕을 먹는다는 거야?”

  “그래서 하는 말이지요. 방금 w번에 두 그릇 시키지 않았습니까?”

  “후후후 꿈도 크구먼. 자네 것이 아니고 우리 집사람 몫이야. 간병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

  “사모님이 어디 있습니까?”

  “오고 있는 중이야.”

  병실을 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있던 기사들도 어이없다는 표전이었다. 그럼 그렇지 다른 사람의 점심까지 걱정할 영감이 아니었다. 방안에는 이제 그와 춘산이만 남았다. 보신탕 어쩌고 한 것이 멋쩍어 적당한 이유를 대고 돌아 나오려는 참이었다.

  “자네가 책임져.”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영감이 갑자기 이유도 없이 화를 벌컥 내면서 삿대질을 하고 덤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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