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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비열한 동행(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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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1 11:14:16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허 사장이 계산할 거야. 막걸리 반 되만 주소.”

  “싫습니다.”

  “술집에서 술을 안 판다니 무슨 말씀이신가?”

  “반 되짜리 손님은 안 받습니다.”

  “하던 짓 안 하면 죽네 그려.”

  “영감님이 죽든 살든 나는 모르는 일이요.”

  “당신 생각해서 하는 말일세.”

  “눈물 나게 고맙구려.”

  “허허허, 내 대신 허 사장이 부탁 한 번 해보소.”

  “어차피 한 되먹을게 아닙니까?”

  “두 번에 나눠 먹으면 훨씬 이득이란 말일세.”

  “아주머니 여기 한 되만 주시고 안주나 두 번 주시오.”

  “사람 체면도 하루 이틀이요. 나도 남는 것이 있어야 장사를 할 게 아니오? 요즈음은 푸성귀 값이 장난이 아니오. 술 보다 안주 값이 더 비싸다 그 말이요. 그러니 난들 어쩌겠소?”

  영감이 막걸리를 반 되씩 주문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똑 같은 한 되를 두 번으로 나누어 주문하는 것은 안주 때문이다. 반 되나 한 되나 안주는 똑같이 차려야 한다. 때문에 반 되씩 주문을 하면 똑같은 안주가 두 번 나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영감은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자기 방식대로 계산을 할 뿐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 같은 건 아예 처음부터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창피도 모르는 인간이다. 작은 이익이라도 있으면 옆 사람 눈치 따위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를 않았다. 하물며 대폿집 여주인 정도의 눈치에 기가 죽을 인간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무시해버렸다. 막걸리 한 되에 안주를 두 번 주기로 하고 주문을 했다. 누가 눈치를 하든 말든 영감은 쭉 소리를 내면서 기분 좋게 막걸리 잔을 비우고 이었다.

  작열하던 태양이 꼬리를 감추면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이었다. 소나기라도 한 두름 쏟아지려나 보다. 영감이 또 한 주전자를 시키고 있었다. 오늘은 막걸리로 점심을 때우려는 모양이다. 갑자기 천둥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시다. 영감님.”

  “비가 오시는데.”

  소나기를 핑계로 서둘러 콜택시를 불렀다. 이대로 막걸리를 더 마시면 동태 찌게까지 하나 더 시킬게 뻔하다. 차라리 택시비를 주어서 보내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더 많이 쏟아지기 전에 귀가를 하셔야합니다.”

  영감은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달려온 택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쑤시개를 물고 일어났다.

  “타시지요.”

  “집에 들어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인데 자네 정성으로 택시까지 불러 왔으니 돌아갈 수밖에. 어쨌든 고마우이.”

  말일 날이 가깝고 보면 괜히 기가 죽는 춘삼이다. 영감은 보라는 듯이 거드름을 피우면서 문을 열어놓은 택시로 올라갔다.

  “이봐, 기사양반. 이 어른 영감님이시니까 잘 모시쇼.”

  “아, 네.”

  기사는 선불을 받으면서 엉거주춤 일어나는 자세로 굽실거렸다. 아마 군수쯤 되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다. 춘삼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랑곳없이 기분 좋게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어디로 모실갑쇼?”

  “삼원동.”

  퉤.

  더러운 인간. 출발하는 택시를 보면서 꽁무니에 대고 가래침을 뱉었다. 돌아서는 춘삼은 헛구역질까지 나오고 있었다. 뱃속이 허전하다. 영감의 눈치를 보느라고 안주 한 점 제대로 잡어먹지 못한 것이다. 

  방안에 아직도 영감의 몸 냄새가 배어있는 듯 역겹다. 소나기 때문에 닫았던 창문을 화다닥 열어젖혔다. 빗방울이 우르르 문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얼굴에 빗방울을 맞으면서 서 있었다. 며칠 있으면 또 이자를 받으러 올 것이다. 걱정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무의식적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허 사장, 날세.”

  방금 택시를 태워서 보낸 영감이다. 목소리까지 천연덕스럽다.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언제부터 우리가 소 닭 보듯 이렇게 짜증스러운 사이가 되었나?”

  “그거야 영감님이 더 잘 알고 있는 일 아닙니까?”

  “이제 말대꾸까지 하고? 많이 컸네.”

  “다 영감님 덕분입니다.”

  “알아줘서 고맙다고 해야겠군.”

  목소리 어딘가에 가시가 돋쳐있다. 지금쯤은 집에 도착했을 텐데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러는 것일까?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엉뚱한 소리가 들렸다.

  “여기 병원일세.”

  “멀쩡한데 병원은 왜 갑니까?”

  “자네가 병원으로 좀 와야겠네.”

  “왜? 내가 병원을 갑니까?”

  “내가 오라고 하면 오는 거야.”

  “무슨 일인데요?”

  “사고야.”

  방금 택시를 타고 간 사람이 사고라니? 이 사람이 해도 너무 한다.

  “기가 막혀.”

  “와 보면 다 알게 되어 있어.”

  엉뚱한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고로 위장을 해서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나서 다리라도 부러져 버렸다면 가슴속이 후련해질 것 같은 기대를 하고 일어섰다.

  “어느 병원이오?”

  “오 외과로 와.”

  “알았시다.”

  부아가 목가지 치밀어 올라 왔지만 빚진 죄인이다. 약국에 가서 박카스 한 박스를 샀다. 맨 손으로 갔다가 또 무슨 트집을 잡힐지 모르는 일이다. 접수처에서 물어보니 3층 입원실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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