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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비열한 동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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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1 16:06:42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몇 개비 남지도 않은 담배를 영감이 다 피워버렸다. 할 수 없이 또 사정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감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감에게 밀려 방에서 쫓겨난 마누라가 하릴없이 일찍 지은 밥상에 영감의 밥그릇까지 얹어 들고 왔다.

  “어? 벌써 아침인가?”

  밥상을 보자 영감이 먼저 수저를 들고 달려들었다. 생각지 못한 불청객 덕분에 마누라는 조반조차 굶었다. 그 날 하루로 끝났으면 누가 뭐랄까? 이튿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나타나서 담배 갑을 비우고 마누라 밥그릇까지 털어먹고 다시 오겠다는 소리와 함께 돌아갔다. 이자를 받을 때까지 계속 오겠다는 것이다.

  참다못한 마누라가 달러돈을 빚 얻어다가 영감 앞에 패대기를 치고서야 새벽시위가 끝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한 달이었다. 또 월말이 되면 영감은 어김없이 찾아와서 조반까지 얻어먹어야 돌아가는 것이다.

  달러 빚도 한계가 있었다. 빚은 늘어나고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마누라는 죽는다고 악을 썼지만 영감 몰래 사서 감춘 임야는 팔리지 않았다. 이제 부동산을 판다고 해도 마누라 빚도 청산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해도 너무 합니다.”

  “빚만 갚으면 자네 다시 볼일이 없네.”

  “그 동안 내가 벌어준 것이 얼마요?”

  “그래서? 공짜로 해주었나?”

  “동업자 아니요?”

  “헛소리 말더라고. 내 돈 가져다가 자네 혼자 해 먹으려한 시커먼 자네 속을 모를 줄 알고?”

  “이렇게 하지 맙시다.”

  “자네가 자초한 일이야.”

  “아니, 제가 아니라 영감님이 먼저죠.”

  이제 또 어쩔 수가 없어서 영감님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새벽에 찾아와서 이자만 내지 않으라고 해 준다면 또 무릎이라도 꿇고 싶어지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영감님이 날 언제 동업자로 인정했습니까?”

  “내가 시험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시험을 그렇게 길게 합니까?”

  “그거야 내 맘이지.”

  “그러지 말고 임야 팔면 이익을 분배합시다.”

  “삶은 호박에 이빨 안 들어가는 소리 하들 말아.” 

  영감의 인간성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나올 것이다. 대통령이 부동산을 갖고 있는 만큼 고통을 주겠다고 공갈성 발언을 한 후로는 매매는커녕 갖고 있는 사람조차 전전긍긍을 하고 있는 판이다.

  부동산실명제까지 실시한다고 하는 실정이고 보면 영감은 얼씨구 하는 것이다. 세금도 없는 5부 이자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인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춘삼이만 더 미치고 환장하게 되고 말았다.

  영감을 이용해서 한탕 해먹으려한 것이 오히려 사람을 잡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돈복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오히려 영감만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슬슬 남모르는 웃음을 웃어대고 있는 영감이었다.

  

  또 말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오늘쯤은 가게로 먼저 와서 설레발을 칠 것이다. 영감얼굴을 볼 일을 생각하니 짜증부터 난다. 냉장고를 열고 물병을 꺼내서 다 마셔도 벌렁거리는 가슴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해가 중천으로 떠오르면서 사무실이 더 덥다.

  정오쯤이 되자 영감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봐, 허 사장.”

  “말씀하십시오.”

  영감의 얼굴을 쳐다보기조차 싫다.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릴지 뻔하다.

  “냉 막걸리나 한 사발 사 주게.”

  “비싼 이자 돈 받아서 무얼 하시오?”

  “월말이나 되어야 돈이 몇 푼 생기겠네.”

  “그 때까지 기다리시지요.”

  “인심이 야박하면 되돌려 받는 것이네.”

  “누가 할 소리요? 그나저나 술시나 되어야 할 것 아니요.”

  “술시가 따로 있나? 마시면 술시지.”

  “그만 두겠소.”

  “왜? 싫은가?”

  “돈이 없소.”

  영감이 먼저 가자고 했다고 해서 짝 따라가면 낭패다. 술값을 낼 리가 없는 영감이다.

  “그래? 할 수 없지. 그럼 나 혼자 감세.”

  웬일인지 영감이 순순히 일어나 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꿍꿍이 수작인지 모르겠다. 덥기도 했지만 영감의 얼굴을 보면 비위가 상한다. 신경질적으로 부채를 흔들었다.

  “이봐, 허 사장.”

  그러면 그렇지. 그냥 물러날 영감이 아니었다.

  “또 무슨 일이요?”

  “말일이 언제더라.”

  “그야 영감이 더 잘 알게 아니요?”

  “그렇지. 말일에는 어두워지기 전에 계산을 해주었으면 하네.”

  “씨팔, 이가 갈린다.”

  자신도 모르게 되바라진 욕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허, 이런 낭패가 있나?”

  “알았으니 갑시다.”

  하루도 밀리지 말라는 엄포다. 더 이상 줄다리기를 했다가는 음흉한 영감의 비열한 술수에 말려들게 뻔한 일이다. 부채를 내팽개치고 앞장서서 우래옥으로 향했다.

  “진즉 그럴 것이지.”

  영감은 아주 느긋한 얼굴이 되어 히죽히죽 웃으면서 코털까지 뽑아들고 따라나섰다.

  “여보, 김 마담."

  “내가 어째서 영감님 여보요?”

  “체격이 작은 우래옥 주인여자가 영감을 쳐다보더니 자증을 내면서 흘겨보았다. 이곳에서조차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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