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업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지?”
신사가 주변을 휘 돌아보면서 물었다.
“현안이십니다. 제가 금년에 중개사에 합격을 해서요.”
춘삼은 필요 없는 말까지 했다.
“호, 수재로구먼. 경쟁이 치열했을 텐데 용케도 합격을 했네 그려.”
“겨우 턱걸이 했습니다.”
“겸손할 줄도 알고 아주 되먹은 사람이구먼.”
“감사합니다.”
“그럼 이곳이 처음이겠네.”
“그렇습니다. 경력이 일천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어르신이 많이 도와주십시오.”
“믿어도 좋을 젊은이 일세.”
“감사합니다.”
“그래 특별한 푸랜이라도 있나?”
“푸랜이라면?”
“영어로 말해서 프로그램이라는 말이지 무슨 특별한 영업계획이라도 있냐는 말일세.”
평생대학 간판이 말해주듯 영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었다. 당연히 존경심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까짓 중개업에 무슨 경영철학이 있습니까? 성실하게 이것저것 고객이 원하는 대로 심부름이나 할 생각입니다.”
“요즈음 보기 드문 순박한 사람일세. 하지만 말이야 자네 올 보이스 엠비숀이라는 말을 아는가?”
“무슨 뜻입니까?”
사실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말이었지만 신사에게 건방지다고 들을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일부러 모르는 척 되물었다. 그러니까 신사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희망을 가지라는 말일세.”
춘삼은 자신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희망이라면 벌써 간판에 붙여놓지 않았는가 말이다. 하비만 신사가 눈치를 체지 못하게 고개를 돌리고 입을 가렸다.
춘삼의 묘한 웃음을 보지 못한 신사가 주머니에서 아주 천천히 양담배를 한가치 뽑아들었다. 필터 쪽을 들고 손톱에 몇 번 톡톡 때리더니 이번에는 다른 손으로 노란 금장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아주 우아한 폼으로 불을 붙이더니 열려진 창 문 쪽으로 아주 길게 연기를 내 뿜었다. 그 때 마침 괘종시계가 세 번 울렸다.
“벌써 세 시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만 가 보아야겠군.”
무엇 때문에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냥 이대로 보내는 것은 아주 큰 고객을 놓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아야 한다.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다방에 차를 시켜 놓았습니다.”
“그래? 나는 아직 용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차까지 얻어먹어서야 되는 일인가?”
“황송한 말씀입니다. 어르신 같은 분이 우리 가게를 찾아주신 것만 해도 영광입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런 느낌이 오고 있었다.
“어르신은 어울리지 않는 호칭일세.”
“아 네, 조심하겠습니다.”
“젊은 사장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를 한 잔 얻어먹어 볼까.”
“감사합니다.”
그 동안 다방에 시킨 커피가 배달되어 왔다. 신사와 커피 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내가 찻값으로 한 마디 충고를 해줄까?”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중개업이라는 것이 아파트 전세 따위나 소개하고 있어서는 밥벌이가 어렵단 말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말이 통하는 친구군.”
“사장님이 생각하는 무슨 비결이라도?”
“있다마다. 나도 시작은 부동산부터라네.”
순간 춘삼의 귀가 번쩍 띄었다. 역시 커피를 시키면서까지 신사를 붙잡은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명을 해주십시오.”
“허허허 내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젊은 사장이 하도 친절해서 그냥 일어설 수가 없구먼.”
“감사합니다.”
“중개업의 경영방식은 무궁무진한 거지.”
“지도편달 바랍니다.”
“지도랄 게 뭐 있겠어. 첫째는 자본이지.”
“자본?”
춘삼은 할 말이 없었다. 아픈 곳을 찔렸기 때문이다. 자본이 있다면 문을 열어놓고 이렇게 파리만 날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즉에 아파트 경매물건이라도 손을 댔을 것이다. 상속을 받은 부모도 없고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 있어서 변통할 길도 없으니 자본이 준비될 리가 없었다.
“그것이 그러니까......”
춘삼이 괜히 면구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돈이 없는 것은 흉이 아니지. 더구나 젊은 사람이 아니던가? 이제부터 벌면 되는 거야.”
“그것이.”
“능력이 있으면 투자할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 아냐?”
춘삼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앞에 모으고 몸을 비틀었다. 그것은 마치 교주 앞에 서있는 신도 모습이었다.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는 뜻이야.”
춘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젯밤 무슨 꿈을 꾸었던가? 자본만 확보된다면 돈을 버는 것은 시간문제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은 사장을 시험해보기 위함이었어.”
이제야 본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춘삼은 더욱 공손하게 읍을 하고 서있었다.
“다행히 사장이 마음에 들었네. 하지만 말이야 세상은 상부상조 아닌가? 내 이익을 보장해 주어야 하네.”
“여부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