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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비열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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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1 16:48:07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미원동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떡 방앗간이다. 그 위쪽으로 미장원과 이발소가 나란히 서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흰 벽돌로 지어진 단층 건물이 보인다. 한쪽은 세탁소 간판이 붙어있고 그 옆 작은 칸이 희망 부동산이다.

  세 평이나 될까? 한 눈에 보아도 돈이 없어 보이는 초라한 복덕방이다. 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입구에 작은 철제 책상이 하나 있고 창가로 어울리지 않는 나무 책상과 큰 소파가 놓여있다.

  이런 정도의 복덕방이라면 당연히 허리 굽은 노인이 주인이어야 맞을 것이다. 한데도 이곳의 주인은 중개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이제 겨우 삼십을 갓 넘긴 젊은 사람이다. 

  희망부동산 사장 허춘삼은 마음이 답답하다. 날씨는 왜 이리 지랄인지 푹푹 삶아대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다. 이 더위 속에 할 일도 없이 아침부터  일찍 나와 앉아있는 것은 마누라 등살에 집에 붙어있을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다. 

  큰 바위 덩어리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이 숨통을 조여 온다. 더위 때문만은 아니다. 원수 같은 돈이 목을 조여 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염병할 이게 무슨 짓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화닥닥 열었다. 시원한 바람은커녕 오히려 더운 열기가 얼굴로 몰려온다. 보건체조를 하듯 두 손을 벌리고 숨을 크게 쉬어 보아도 답답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뜀박질하듯 방안을 서성거려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허둥대는 발걸음이 헛 다리 집듯 뒤뚱거린다. 쿨쿨거리는 선풍기 가까이 얼굴을 대보았다. 후끈거리는 열기가 오히려 더 가슴을 답답하게 해 줄 뿐이다.

  “니기미, 씨팔. 그 때 하필 대통령이 부동산 억제정책을 발표할게 뭐냐?”

  별것이 다 원망스럽다. 아무리 오뉴월 염천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오는 것은 순전히 부동산의 매매길이 막혀서다. 거기다가 송 영감까지 거들고 나섰으니 죽을 맛이다. 느물거리는 영감의 얼굴이 떠오르면 비위까지 확 상해버리는 것이다.

  머리를 흔들어 떨쳐버리려 해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건 영감의 얼굴뿐이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끼어있는 땀구멍에서 금방이라도 벌레가 기어 나올 것만 같이 징그럽다.

  “어떻게 한다?”

  답답한 마음에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춘삼의 억울한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차라리 소나기라도 한줄기 쏟아주면 답답한 가슴이 뚫릴까? 하지만 더위 때문이 아닌 답답한 가슴이 비가 온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더러운 시키.”

  입안으로 신물이 가득 고여 왔다. 욕을 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막다른 골목이다. 무슨 방법이든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삼천만 원은 큰돈이다. 몽유병자처럼 중얼거려보지만 아무 방법도 생각나지 않는다. 식은땀이 자꾸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구를 원망하랴?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어리석은 욕심에서 나온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설명을 하자면 이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영감, 그러니까 송만섭을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벼슬의 호칭이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오십대 초반의 나이로도 영감이라는 호칭은 언감생심이었다. 

  흰 머리카락이 사치처럼 듬성듬성 나있기는 했지만 얼굴에 개기름까지 번들거리는 것이 영감이라는 호칭을 쓰기에는 어려운 한창나이의 장년이었던 것이다. 한데도 그에게 굳이 영감이라는 호칭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이 주장하는 벼슬칭호 때문이었다.

  일테면 시장이나 군수처럼 벼슬하는 사람들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연속극에서 대감을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요즈음에도 새파란 판검사들에게 두 무릎을 꿇고 술잔을 들어 올리면서 영감님이라고 극진하게 부르는 판이니 어쩜 당연한 주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송영감은 거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언제부터 지방의원도 영감 대우를 받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챙겨서라도 아부를 해야 하는 춘삼에게는 당연히 받아들여야할 호칭이었다.

  정말 치사한 아부였다. 사실은 경력을 따지고 보면 오히려 춘삼이 영감 대우를 받아야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춘삼은 삼십대 초반에 사법고시나 다름없이 경쟁률이 높다는 중개사 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 때 꿈은 고등고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법무사 시험정도는 따 논 밥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우선 먹고살아야 한다는 겸손한 생각으로 변두리에 희망부동산 간판을 걸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간판의 이름처럼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원죄였다. 그곳에서 송 영감을 만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성급했었다. 자신은 이 도시에 아무 연고가 없다.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가게 문을 열어놓고 찾아오는 손님이 없고 보니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불안했던 것이 마음을 더 급하게 했을 것이다.

  그 때 송 영감이 나타났다. 의복부터가 촌사람이 아니었다. 왼손에 바바리코트를 척 걸쳐들고 번쩍거리는 금테안경 속에서 움푹 팬 눈으로 그윽이 쳐다보는 그의 첫인상은 가히 시장 군수쯤은 당연히 거쳤을 것 같은 풍채였다. 거기다가 내놓는 명함에는 대학 평생교육원 수료 간판이 세 개나 붙어있었다. 춘삼은 첫눈에 압도되고 말았다.

  “어서 오십시오.”

  이거 보통사람이 아니다. 한가롭게 탁자에 올려놓았던 두 발을 번개같이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그리고 앞자락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영접을 했다.

  “젊은 사람이 예의가 바르군.”

  아주 당당하게 처음부터 말을 턱 놓았다. 목소리마저 굵고 저음인 것이 무게가 실려 있었다. 

  “고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무릎이라도 꿇어앉고 싶었다.

  “사장은 어디 가셨나.”

  “이런 작은 가게에 사장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외람되게도 제가 주인입니다.”

  “호, 그래? 젊은 사람이 사장이라. 내가 아주 큰 실례를 했군.”

  “아, 아닙니다. 당연한 안목이십니다.”

  “그렇게 생각하나?”

  “그럼요?”

  “여기 앉아도 될까?”

  “예, 예 그럼요.”

  젊은 사람이 사장 어쩌고 할 때 그냥 되돌아 나갈까 봐 마음 조리던 춘삼이 번개같이 달려가서 소파 밑바닥을 소매 끝으로 걸레질하듯 쓸어내리고 모서리를 잡고서 있었다.

  “고맙네.”

  신사는 아주 거만하고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소매로 닦아놓은 소파에 앉아 한 발을 다른 발 무릎 위로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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