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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대곤 소설집 ‘퍼즐’ 불 경 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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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1 15:47:59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봄이 지나서 여름도 한참이었다. 어색하던 내 반장놀음도 제법 이골이 나가고 있었다. 선생을 대신하고 있던 나는 이번에는 가을운동회 때문에 바빠지고 있었다.    

   가을 운동회에서 내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반 대항 달리기였다.  선생님과 반장이 한 조가 되어 뛰는 경기다. 반 대항이라는 자존심도 있었지만 그딴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반장이라는 것을 전교에 알릴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그 날은 동네 사람들까지 다 온다. 절대적으로 일등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손을 끌어 잡고 달리기를 시도 해 보았다. 한데 답답한 것이 선생님이 나를 따라 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니 운동 자체를 싫어했다. 내가 손목을 잡고 억지로 끌어대면 겨우 몇 걸음 깡충거리다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아예 걷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았다. 

  “선생님 달려요.”

  아이들까지 목이 터지게 응원을 해 주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작은 키에 비해 기형으로 큰 머리통을 반쯤 옆으로 제치고 뒤뚱거리는 모습은 아무리 잘 보아주려고 해도 희극이었다. 사실 그때 내가 원했던 것은 공부를 잘 가르치는 것 보다 그냥 바람처럼 달려주는 선생님이었다. 

  “왜 그러지?”

  꼴지를 하게 되면 내가 반장이 된 것조차 사람들이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지 선생님을 달리게 해야 한다. 나는 창가에 서있는 선생님에게다가 갔다.  

  “선생님, 연습을 해야 합니다.”      

  “싫어.”

  “왜죠?”

  “다리 힘은 보신탕이 최고인디.”

  선생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튀어 나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으로 번개같이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교실로 달려가 태문이의 손목을 잡아끌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의 어머니가 시장에서 개고기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잔머리라면 누가 나를 따를 것인가? 공짜로 개고기를 얻을 궁리를 한 것이다.     

  “어머니, 국물만 좀 주세요.”

  “국물만?”

  “돈이 없거든 요.”

  “무슨 소리냐?”

  “선생님이 먹고 싶데요.”

  “정말이냐?”

  영문을 모르고 끌려온 태문이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기다려라.”

  “그럼 그렇지!”

  어머니는 양철 냄비에 보신탕 국물과 함께 고기까지 듬뿍 넣어 주었다. 개고기장사를 하고 있는 태문이 어머니에게는 선생님이 하늘이었다. 내일 또 오라는 어머니 소리를 등 뒤에 남겨 두고 김이 나는 보신탕 냄비를 들고 달려가고 있었지만 이만 저만 고역이 아니었다. 콧속으로 파고드는 보신탕 냄새가 내 뱃속의 회를 요동치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보신탕을 먹어보지 못했었다. 불교를 숭상하던 우리 집에서는 개고기를 먹으면 큰일이 난다고 믿고 있었다. 못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니 더 먹고 싶었을까, 구수한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서 마셔버리고 싶은 충동이 몇 번이나 일어났지만 선생님을 달리게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참고 참았다. 하지만 그 모든 정성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리 힘이 생길 만도 한데 결국 나를 배신하고 꼴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아는 것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무거운 거여. 그려서 뛸 수가 읍당게.”

  공짜로 보신탕까지 먹고 미안해서 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태문이 어머니를 속여 국 냄비를 날라댄 것이 억울해지면서 점점 선생님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눈치를 챘는지 눈치가 시들해 지다가 겨울방학이 되기 전에 선생님은 몸이 아파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선생님은 폐병을 앓고 있었다. 몸보신으로 보신탕을 먹었어야 하는 것이라고 나중에 소문으로 들었지만 그딴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이 선생님과 나와의 인연 전부였다. 살아오면서 나는 가끔씩 그때가 생각나기도 했었다. 지독히도 못생긴 머리통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불경죄를 적용해서 나를 반장 시켜준 고마움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리워 한 것도 아닌데 엉뚱하게 이곳에서 만나다니 정말 기가 막힌다. 

  “하이구 선생님슈?”

  나도 모르게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입에서 튀어 나왔지만 마음과 달리  달려들어 껴안으면서 입을 막았다.  

    하도 오랜만이라 반가운 것도 사실이지만 아는 체를 했다가는 그 험한 입에서 또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르는 판이다. 

  “숨 막힌다. 이놈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네놈, 덕분에 다름 질 연습 쬐끔 해봤어.”

  “다리 힘은 좀 생겼습니까?”

  “보신탕 먹어본지 오래여.”

  “어쩌다 그리 되셨습니까?”

  “이 땅에 똥개 사라진지가 오래여?”

  “똥개 없다고 보신탕 못 먹습니까?   

  “하, 먼 보신탕이야 똥개지.”

  그사이 벌써 봉사식당이 끝났기 때문에 여자들이 빈 그릇을 챙겨들고 있었다.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들에게 다가가는 척 하면서 영감을 피해 일어나려고 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데 엉뚱하게 그녀들이 내 쪽에 대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를 알아 본 것일까?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참 좋은 일 하십니다.”

  돈 들지 않는 칭찬이다. 얼마든지 해주마. 인사도 마찬가지다. 될 수 있는 데로 공손하게 두 손을 마주 잡고 머리를 숙였다. 한데 뭔가 이상하다. 뒤돌아보니 시커멓고 못생긴 영감이 거기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부녀 회원들이 인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새치기를 하던 영감 최재만 선생님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이 봉사식당의 실제 운영자가 선생님이었다는 이야기다. 

  “선생님이 봉사 식당을?”

  “우리 지역 당에서 하는 사업이여.”

  그렇다면 선생님이 지역당의 실력자? 순간 머릿속으로 번개처럼 반장을 시켜주던 초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잘만 이용하면 여론조사에서 받는 점수를 합해 임시 반장이나 다름없는 공천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앞뒤 볼 것 없이 달려가 선생님을 껴안았다.     

  “이번에는 네놈이 불경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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