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은 2014 갑오년 설날이다. 한 해의 첫날을 뜻한다고 해서 연두(年頭), 세수(歲首), 원단(元旦) 등으로 불리었다. 옛날에는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차례를 지냈다.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자식들은 부모의 장수와 다복을 기원하며 세배를 올렸다. 부모는 건강을 빌어주거나 덕담(德談)을 건넸고,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세뱃돈을 주었다. 요즘에는 현금 대신 문화상품권이나 도서상품권을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민족의 얼 깃든 다채로운 놀이 즐겨
우리 조상들은 설을 전후해 민족의 얼이 깃든 다채로운 민속놀이로 결속력을 다졌다. 우리나라는 중국 하대(夏代)의 역법(曆法)을 따라 음력 정월 초하루를 설로 삼아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상 만물이 소생하는 음력 정월이 세수로 가장 적합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설날 아침에 집안 행사가 끝나면 일가친척과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녔으며 연날리기, 팽이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널뛰기, 투호놀이, 제기차기, 윷놀이, 고누놀이, 칠교놀이 등을 했다. 이러한 놀이는 봄까지 이어졌으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제기차기, 고누놀이 등은 1년 내내 즐겼다. 어른들은 풍물패(풍장꾼)를 조직, 마을 곳곳을 돌며 악귀를 쫓아냈다. 지신밟기, 고싸움놀이, 강강술래 등 지방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는데, 이러한 놀이는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고, 복을 빌거나, 건강을 소망하는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응달에 선 지 93년만에 밝은 햇살 받은 설날
중국 역사서 <수서>와 <구당서>에는 삼국(신라·고구려·백제) 모두 정월(正月)을 각별한 달로 여겼으며, 신라인들은 원일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고 적고 있다. <고려사>에도 설날(元正)은 한식·단오·추석·동지 등과 함께 9대 풍속절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의 큰 명절이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역법(曆法)에 따르는 것을 살펴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대대로 내려온 민족의 명절로 추정된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설날을 공휴일로 선포하고 설연휴를 즐기게 된 역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처럼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25년 전. 1989년 2월 6일은 그해 설로 우리의 으뜸 민속명절이 속박에서 해방되는 날이기도 했다. 일제하에서 온갖 질시와 구박을 받았고, 해방 후에도 사라질 위기에까지 처했다가 정부가 공식으로 설을 인정하고, 사흘 연휴를 실행한 해였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 응달에 선 지 93년 만에 밝은 햇살을 받게 되었다. 오랜만에 되찾은 설날을 맞아 전국적으로 2천만여 명이 진짜 '설 쇠러' 고향을 찾고 시장에서도 제수용품을 사려는 이들로 북적거려 모처럼만에 명절 분위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1989년 2월 5일 자 <한겨레>)
설날은 태양력 사용이 선포되던 고종 33년(1896) 공식 폐지된 후 100년 가까이 파란곡절을 겪는다. 일제의 조선 전통문화 말살정책으로 수난을 당했고, 1949년 정부가 공휴일 발표 후에도 쿠데타(1961)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정부가 이중과세라 하여 폐지하려 했으며, 1985년 총선을 앞두고 '민속의 날'로 정했다가 1989년 2월 3일 제 이름 '설날'을 되찾았다. 온갖 박해와 시련을 견뎌내고 1989년 부활한 설날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9년 신정 휴일이 하루로 줄어들면서 명실상부한 민족 최대의 명절로 복권되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아닐 수 없는데, 현대사에서 진정한 설날의 역사는 15년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통 문화유산 하나씩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한국갤럽이 집계한 여론조사로는 당시 국민 중에 신정(新正)을 설로 여기는 사람은 11%에 불과했다. 구정(舊正)을 쇠는 사람은 84%, 신·구정 모두 쇠는 사람은 3,1%였다. 이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강한 애착을 보여주는 그래프이기도 하다. 1989년 이전에는 고유의 명절 설이 신정·구정으로 나뉘어 차례를 지내는 바람에 친지와 새해 인사를 나누기조차 쉽지 않았다. 어느 설을 쇠느냐로 가족 간에 다툼이 일기도 했다. 직원이 상사에게 언제 인사하러 가야 좋을지 고민하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정부가 설 전후 3일을 연휴로 정하자, 대기업과 공단의 중소기업들은 5일~7일의 휴무와 함께 직원들에게 특별보너스를 지급하였다. 달아오른 명절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사람이 유명 관광지와 휴양지를 찾았다. 여행 자유화 물결에 힘입어 동남아를 찾는 여행객도 생겨났다. 경제성장과 함께 찾아온 설연휴는 삶의 패러다임도 바꿔놓았다. 설이 가까워지면 설악산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 유명 관광지와 스키장 부근 호텔은 예약이 밀렸고, 설 전날 외국여행 떠나는 사람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여행지 호텔에서 차례 지내는 사람도 느는 추세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도 필요하고 여행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렵게 되찾은 소중한 전통 문화유산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다. 설연휴에 짬을 내서 가족이 함께 민속놀이나 공연장을 찾아 즐긴다면, 그 또한 새로운 설 문화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