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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강변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 말아묵자
글 : 조종안(시민기자) / chongani@hitel.net
2014.02.01 16:01:3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제1의 항구도시 부산과 경상도 지역 주민들은 돼지국밥을 무척 즐겨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에 나가면 돼지국밥 전문식당 간판이 자주 눈에 띈다. 피난시절부터 먹기 시작했으니 부산이 원조라며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애향심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은 ‘글쎄요?’다. 1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군산 공설시장(구시장) 옹기전에도 한국전쟁 이전부터 돼지국밥 전문 식당 골목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 이름 하여 ‘군산의 세느강변’. 아래는 ‘중동집’ 주인 박윤봉(61)씨의 전언이다.

 

“서너 달 전이었어요. 일본에서 여든이 넘은 할머니와 그의 아들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통역하는 분과 함께 우리 가게를 찾아왔더군요. 일제강점기 이 건물에 살면서 중앙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가 해방(1945)과 함께 일본으로 갔다는 할머니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옛날에는 국밥집이 4~5개밖에 없었는데 많이 늘어났다’며 놀라는 거예요. 그래서 국밥집 골목이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머니는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소원을 성취했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시드군요···.” 

 

박씨 말마따나 한때 ‘구시장’으로 불리었던 공설시장은 일제강점기(1918) 장재동에서 옮겨와 ‘신영시장’으로 개장, 1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첫 번째 골목에 호미, 낫, 곡괭이 등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이 10여개나 됐고, 가축을 사고파는 ‘닭 전’도 있었던 공설시장은 인근 농촌과 섬주민은 물론 충청도 강경, 논산, 장항, 서천, 한산 등지에서 장보러오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정성과 인심이 가장 큰 무기인 '중동집'

‘북어는 때릴수록 맛이 나고, 북은 칠수록 신이 난다'라는 말이 있는데, 군산의 세느강 '중동집'이 그 짝이다. 갈 때마다 감칠맛이 더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철부지 시절 내 모습을 돌아보고 그 옛날 사람들의 정겨운 숨결도 느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할까. 돼지고기 냄새도 맡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 고소한 냄새가 그리우면 옹기전 골목으로 학교를 오갔다. 자장면 냄새가 그리우면 '쌍성루' 옆 골목을 택했는데, 주방 창문이 골목을 향해있어 얼마든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하루는 국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부처님처럼 눈감고 있는 돼지머리를 구경하다가 발길을 돌리는데, "할로야!" 하고 정겹게 부르는 소리가 발길을 멈추게 했다. 아버지와 형님 이름은 몰라도 '선창 쌀집'이나 '할로네 집'은 우체부 아저씨가 사연을 물어볼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니 고개를 돌릴 수밖에. 

 

"고놈, 머리가 장군처럼 크고 잘생겼네···, 너 할로 동상(동생) 맞지? 국수 한 그릇 말어줄 티니께 먹고 가그라···."

 

곱상하게 생긴 ‘중동집’ 주인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짓을 하기에 갔더니 국수를 말아주며 어머니 안부도 묻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했던 외식이고, 엄한 부모 밑에서 밥보다 칭찬에 굶주렸던 터라서 50년이 넘은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찾아다니는 것 같다. 그렇게 곱상했던 아주머니가 지금은 꼬부랑 할머니가 됐고, 식당은 30년 전부터 전수받은 며느리가 운영하고 있다.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닮았는지 요즘 같은 세상에 술과 안주를 공짜로 얻어먹는 건달 손님이 많다.

 

 

식탁은 3개, 술·반찬 인심은 무한정

예나 지금이나 '중동집'은 식탁이 4~5개 밖에 없는 아주 작은 식당이다. 그러나 고기와 양념을 아끼지 않고 퍼주고 손님 한 사람이 가도 즉석에서 반찬을 만들어 주는 정성과 서비스는 호텔 레스토랑 못지않다. 특히 국밥을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버무려주는 싱싱한 부추 겉절이는 입맛을 돋아주고, 국물이 얼큰하고 개운해서 과음한 다음 날 속을 푸는데 그만이다. 들깨가루를 듬뿍 넣은 국밥을 처음 먹는 사람은 보신탕으로 착각할 정도다. 

 

오젓과 육젓 등 계절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새우젓과 국밥을 주문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간이나 순대·귓불·막창 등을 넣어달라고 하면 마다지 않고 넣어주는 인심은 어머니의 손맛을 떠오르게 한다. 많은 사람이 돼지 뼈를 고아낸 국물로 돼지국밥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만든다고 자랑하는 식당도 있다. 세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기자는 조금 달리 생각한다.

 

국물이 우유처럼 하얀 설렁탕은 소머리를 고아낸 국물이어야 하고, 샘물처럼 국물이 맑아야 특유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곰탕은 양지부위와 소 내장이 재료이듯 돼지국밥도 돼지머리와 내장을 온종일 고아낸 국물이어야 전통 돼지국밥 국물로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얼큰하고 시원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인 '중동집' 돼지국밥은 시장 상인은 물론 시골에서 장보러 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도 여전히 인기가 좋다. 소주 한두 잔 정도는 서비스로 나오기 때문이다.  

 

 

옹기전 골목에 얽힌 이런저런 추억들

그 옛날 중동집은 달리는 기차에서 석탄을 퍼내 생계를 유지했던 서래산 피난민촌 아이들의 거래처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사들인 석탄에 쌀겨와 황토를 적당히 배합해 말렸다가 땔감으로 사용해서다. 석탄을 쏟아놓고 새카만 손으로 국밥을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며 야릇한 감정을 느꼈던 그때가 새롭다.   

 

철길 건너 공설운동장에서 체육대회가 열리거나 선거 유세가 있는 날이면 옹기전 골목도 시끌벅적했다. 국수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로 허기를 채우고 "자~알 먹었소!"라고 인사를 건네며 수염에 묻은 국물을 손으로 닦던 노인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1960년대 중반까지 한 그릇에 10원이던 국밥은 7000원으로 오르고, 5원하던 국수는 찾는 사람이 없어 메뉴판에서 사라졌다. 이렇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 국밥 한 그릇 값에서 놀라운 경제성장과 세월의 무상함을 함께 느낀다. 

 

옹기전 옆에는 째보선창으로 흐르는 샛강이 있었는데, 동남아지역 집들처럼 갯벌에 나무기둥을 박아 지은 집들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한다는 뱅어가 잡힐 정도로 물이 맑았고, 배도 떠다녔는데 지금은 복개공사로 주차장으로 변했다. 이렇게 아스라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어서일까. '중동집'을 갈 때마다 더욱 정겹고 마음이 아련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돼지국밥집 골목을 '군산의 세느강'이라 소개해오고 있다.    

 

'서울 촌놈'이란 말이 있듯, 군산에 살면서도 서른이 넘도록 시장 옹기전이나 돼지국밥집 골목을 모르는 친구들이 많았다. 1980년대 초로 기억하는데, 중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세느강'이라 했더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곧바로 이해하고 낭만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세느강 '중동집'에서 저녁이나 하자"라고 전화하면 금방 알아듣고 달려온다.  그 옛날 뱅어가 헤엄치던 샛강은 복개되어 주차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공설시장 옹기전은 '군산의 세느강'으로 다시 태어나 내 마음 속에서 계속 흐를 것이다. 60년 가까이 고목처럼 터를 잡은 '중동집' 음식 맛과 넉넉한 인심 또한 영원히 이어질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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