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선거를 다시 해야 쓰것는디....”
선생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나는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고 벌떡 일어났다. 임시 교사라고 하더니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선생이다.
광열이는 우리반 아이들의 정식 투표로 반장에 당선이 되었다. 사실 광열이가 반장이 되는 데는 내가 선거운동을 해준 덕이 크다. 그때 자습시간을 늘려주겠다는 공약도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건 안 됩니다.”
갑자기 내가 반대를 하고 나서자 선생님은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좀 창피 한 이야기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운동화 때문이다. 광열이 선거 운동을 해주는 대가로 운동화를 받은 사실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었다. 한데 겨우 한 달도 못되었는데 반장선거를 다시 한다면 아무래도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였다.
“왜? 안 되는 디?”
“선생님이 오기 전에 선거를 했습니다.”
“소용없어.”
“이유가 뭡니까?”
“불경죄여.”
“그게 뭔 데요?”
“선생님을 몰라본 죄란 말이여.”
“경례했어요.”
“눈에 뵈는 것은 소용없는 것이여.”
그때 우리는 누구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선생이 억지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운동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정의감에서 분연히 다시 일어났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 무렵 한참 밀려오는 민주주의 물결로 난장을 치던 선거판에서 주어들은 풍월이었다. 하지만 자격증도 없는 선생이라 무식한 탓인지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아예 완전히 무시하고 나오고 말았다.
“내가 입회하지 않은 선거는 무효여. 선생님이 새로 왔으면 당연히 반장도 새로 뽑아야 하는 뱁이여.”
사실 나는 운동화가 아니면 반장 선거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내가 넘볼 수도 없는 반장이다. 거기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이고 나발이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는 선생과의 싸움 같은 것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나와!”
한데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한참을 노려보던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지명해서 교단 앞으로 불렀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불안해진 나는 엉기엉기 기어 나갔다.
“이름이 뭐여?”
“두만이요.”
“성은 없는 겨?”
“넷, 황 두만입니다.”
곧 회초리가 날라 올 것만 같아서 불안해 떨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들을 한번 쭉 째려보고 난 선생님의 입에서 정말 어이없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황두만이가 임시 반장 혀.”
“네?”
이게 웬일인가? 말도 안 되게 나를 반장으로 지명하고 나선 것이다. 갑자기 두 다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좀 전에 아이들이 우하고 야유를 보내고 있을 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나를 자기편으로 착각을 한 모양일까? 아니 ‘일사부재리’ 어쩌고 하면서 반장을 옹호하고 나서는 나를 의리 있는 놈으로 봐준 것일까? 도시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들어 보는 반장소리다. 광열이가 쾡 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배신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등이 간지러워 왔지만 나도 모르게 비어지는 웃음을 감추느라고 일부러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황두만!”
선생이 갑자기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 작은 체구어디에서 그렇게 큰소리가 나올까?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시방부터 반장 선거를 다시 하것다. 황두만이는 투표용지를 나누어 줘.”
“넷!”
“그리고 정식 반장으로 찍어 달라고 말 혀.”
선생은 나를 반장으로 공천 한 것이다. 그리고 나를 뽑으라는 노골적인 선거 운동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식으로 투표를 하면 삼 학년 때 반장이었던 광열이가 뽑히는 것은 뻔할 뻔 짜다.
이렇게 되면 이변이다. 아니 땅 집고 헤엄치기가 되는 셈이다. 선생의 뜻을 눈치 챈 나는 아이들 앞으로 다가가 차례대로 악수를 하면서 환하게 웃어 주었다.
“선생님과 손발이 맞는 사람이 반장이 되어야 공부하기가 편해지는 뱁이여.”
두 눈을 부릅뜨고 아이들을 노려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내가 선생과 손발이 맞는 다니 다행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나를 찍기 싫은 아이들이라도 감히 선생에게 반대하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개표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광열이는 단 두 표였다. 한 표는 광열이 자신이 찍었을 것이고 또 한 표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내가 찍었다. 아까운 표였지만 대세를 짐작한 나는 머리를 써서 배신자가 아니라는 변명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참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냐?”
쿡쿡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제일 뒤쪽에 눈을 내려 깔고 앉아 있는 광열이에게 운동화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시시한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게 되고 말았다.
개선장군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밥을 먹어도 기분이 좋고 화장실에 앉아 일을 봐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절대 권력자 선생님의 빽을가지고 있는 나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무투표로 당선이 되어서 공약 따위도 없었기 때문에 힘들 것도 없었다. 이제 선생에게 님 짜도 붙여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를 반장으로 밀어준 선생님이 아닌가. 광열이처럼 불경죄로 쫓겨나지 않으려면 꼬리를 흔드는 충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장 앞으로 와봐!”
아침 교실에 들어오면서 첫마디다. 출석도 반장이 부르고 교무실 전달상황도 반장인 내가 대신했다.
“자습들 허그라.”
선생님은 햇볕이 오는 창가에 앉아 졸거나 먼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일과였다. 숙제를 내주고 조사에서 손바닥회초리까지 반장 책임이고 보니 내 권력은 보통을 넘어섰다. 아이들은 줄을 다투어 내게 아부를 하고 나섰다. 헌 운동화를 얻어 신고 전전긍긍하던 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