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이가 맞느냥게?”
영감은 집요했다.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딴 인간을 만날 줄 알았으면 이곳에는 오지 말았어야 했다. 얼굴이 화끈거려 더 댓 걸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놈이 왜 오리발이여?”
“이런 싸가지가.....”
이놈 저놈 하는 소리까지 듣고 보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모른 체 하기여?”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영감은 내 표정 따위는 아예 무시 해 버리고 있었다. 질그릇 깨지는 소리로 왜장을 치는 꼴이 흡사 나와 사생결단을 하겠다는 푼수다. 여기저기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창피해서 졸도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이놈의 영감탱이?”
앞뒤 볼 것 없이 한 주먹 쥐어 밖아 주려고 달려들다가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횡재다 싶게 기자 녀석이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최재만이랑게.”
영감이 이번에는 갑자기 소리를 낮추면서 내 옆으로 다가와 웅얼거리듯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어디서 들어 봄직한 이름이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고 싶어 피하고 있는 데도 영감은 무슨 속셈인지 계속 엉겨 붙고 있었다.
“얼래? 증말 몰라보는 것이여?”
영감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운동회?”
순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다. 그 심한 사투리를 듣는 순간 번개같이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영감의 머리는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제야 생각났디아?”
영감이 쫓아와 다짜고짜 내 팔을 잡더니 힘차게 흔들어 댔다. 그리고 마치 전기를 맞은 것처럼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달려들더니 까맣게 찌그러진 얼굴위로 두 줄기 눈물방울을 주르르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기가 막힌 해후였다. 영감은 내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십 년만인 셈이다. 달려가 마주 껴안다가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영감을 밀쳐 버리고 말았다. 운선 창피하다. 처음부터 좀 모자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비참한 꼴까지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더 망신을 당하기 전에 빨리 이곳에서 도망을 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조급해 지고 있었다.
그때가 언제 인가? 1949년 전쟁이 일어나기 전 해였다. 그 해 봄 4학년이 되면서 새로 반 편성을 했다. 처음으로 여자아이들과 합반이 되었는데 한 달이나 늦게 담임선생으로 배정되어 온 것이 최재만 선생이었다. 예쁜 여선생님이나 멋진 총각 선생님을 고대하고 있던 우리 앞에 나타난 선생님은 우리를 너무 실망시켰다.
작은 키에 못생긴 얼굴은 그만 두고 기형적으로 큰 머리통에 앞이마까지 훌떡 벗어진 웃기는 모습이었다. 큰 머리통이 무거운지 제대로 새우지도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인 채 교단으로 올라온 선생님은 아주 어린 애송이었다. 심지어 사환이 새로 온 모양이라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뭔가 이상했다. 교단 앞에 올라서더니 그냥 멍하니 서 있는 것이었다. 반장인 광열이가 차려 경례 인사를 했다.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고개를 까닥거리더니 돌아서서 칠판에 이름을 썼다.
“나 최재만이여.”
칠판에 써진 글씨야 그렇다고 치고 입에서 나오는 어눌한 사투리는 선생님의 입에서는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
“정직!”
옆에다가 다시 썼다.
“내 좌우명인디.”
“그려?”
누군가 선생님 말투를 몰래 흉내 내고 말았다. 숨을 죽이고 있던 아이들이 쿡쿡 거리 더니 이번에는 뒷자리 앉은 녀석들이 발로 교실바닥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외모도 외모지만 처음부터 우리가 선생님을 무시했던 것은 이미 퍼진 무성한 소문 때문이기도 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쌀을 스무 가마니나 주고 임시 교사 자리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그쯤 했으면 화가 날만도 한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씩 웃더니 회초리로 탁상을 찰싹 때리면서 엉뚱한 소리로 오히려 우리를 자극하고 말았다.
“촌놈들....”
큰일 났다.
시골구석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가장 싫어하는 소리다. 서울에서 전학 온 꽁지머리 인숙이가 촌놈 어쩌고 하다가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지 모르는 얼간이 같은 소리를 하고 만 것이다.
“우-”
이번에는 아이들이 아예 입을 모아 비웃고 나섰다.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니 기대감이 생겼다. 어쩌면 그 지겨운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자습이나 시키다가 졸리면 운동장에 나가서 공차기나 시키는 선생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내가 바라던 선생님이 온 것이다. 재미가 생긴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교실 바닥을 쿵쾅거리지도 않았고 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선생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겁이 없는 것일까? 소문대로 실력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초짜라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일까? 선생님은 낯 색 하나 변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반장이 누구여?”
광열이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앞으로 나와.”
“왜요?”
“왜 떠들어?”
“나는 몰라요”
광열이가 제법 대차게 나왔다.
“우-”
반장의 반항적인 태도에 힘을 얻은 아이들이 이번에는 제법 큰소리를 냈다. 나는 점점 재미가 생겼다. 이럴 때는 어느 편을 들어서도 안 된다. 연민의 눈으로 선생님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과 동참하지 않는 나를 자신의 편으로 알아 본 것일까? 내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모르는 체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