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놈 아니어?”
거무튀튀하고 못생긴 얼굴이 몹시 못마땅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영감의 눈에도 내가 노숙자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옷은 좀 후지 게 입었지만 좋은 풍채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환한 얼굴로 공짜 밥을 얻어먹겠다고 어정거리고 있으니 좋지 않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참새 따위가 어찌 봉황의 큰 뜻을 알겠는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운 문자다. 순간적으로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선거운동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드디어 내차래가 왔다. 밥을 떠 주는 중년여인의 눈빛이 따뜻했다. 생색내기로 나선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순전히 그렇지 만은 아닌 것 같다.
“맛있게 드세요.”
제기랄,
된장국에 김치한쪽으로 뭘 맛있게 먹어? 생각 같아서는 그냥 엎어 버리고 싶었지만 억지로라도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무슨 망신을 당하더라도 표를 잃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엉거주춤이라도 앉을 만한 자리를 찾아보았다. 왼쪽 모퉁이에 빈자리가 보였다. 주춤 주춤 걸어가 깔려있는 신문지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새삼스럽게 대합실 안이 지저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청소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식사를 할 때 방석대용으로 쓰라고 바닥에 깔려있는 신문지를 일부러 치우지 않았던 모양이다.
거지가 따로 없다. 싸늘하게 식어 버린 국그릇의 된장냄새가 구수하기는커녕 비릿한 것이 역겹다. 오늘따라 아침을 늦게 먹고 나온 처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시하는 사람은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라는 듯이 일부러 팔을 높이 들고서 느리게 국물을 떠다 입에 퍼 넣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제법이다. 그렇다고 밥그릇에는 선뜻 수저가 가지를 않았다.
퀴퀴한 냄새를 피해 창 쪽으로 코를 돌렸다. 이웃공원 푸른 숲이 보인다. 순간 퍼뜩 서울의 효창공원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처음 노숙을 했던 곳이다. 철조망이 둘러 처진 잔디밭에서 이슬을 맞으면서 밤을 새웠다. 시장에서 사들고 왔던 식은 떡 한 덩이로 아침을 때우면서 충치 먹은 이빨이 부러져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삼키고 말았었다.
인간이 참 간사한 동물이다. 그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돈 몇 푼 벌었다고 벌써 잊어먹었다. 사실 누가 그때 나를 기억할까 봐 창피 한마음으로 등이 스멀거린다.
“배 안 고퍼?”
질그릇 깨지는 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좀 전에 줄을 서서 새치기를 하던 영감이다. 벌써 다 먹어 버린 그의 손에는 빈 그릇만 들려있다.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는 것이 아쉬운 모양이다.
“더 드시려고요?”
생색이야 이런 때다. 싶어 선심 쓰듯 슬그머니 영감 앞으로 밥그릇을 내밀어 주었다.
“너나 잘 챙겨.”
연감이 허옇게 눈을 흘겼다. 이런 본때 없는 영감이 있냐? 욱하고 감정이 치밀어 올라 왔지만 사람들 앞에서 내색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마침 기자가 빈 그릇을 챙기고 있는 부녀들에게 카메라를 들여 대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한마디쯤 끼어들고 싶어서 영감을 무시하고 서둘러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가만?”
갑자기 영감이 따라 일어나면서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다가 친한 척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성씨가 황씨 아녀?”
제법 은근한 목소리다. 이제야 나를 알아 본 모양이다. 반가워 영감의 손을 거머쥐려다가 순간 떠 오른 생각에 주춤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혹시 도둑놈이 아닐까? 이 딴 곳에서 어정거리는 인간이라면 혹시 교도소에서 만났던 인간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하이고 그때가 언제인데 지금까지 나를 기억하는 도둑놈이 있다니 세월도 참 무심하다.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오래 전에 교도소에 간 적이 있었다. 운영하던 밀가루 대리점이 부도가 나서 몇 달간 감옥사리를 했다. 그때 미결감방에서 도둑놈들과 함께 징역을 살았었다. 다행히 실형은 받지 않고 풀려 나왔기 때문에 간신히 전과자는 되지 않았지만 한동안 도둑놈들과 동지로 어울려 살았다.
도둑놈들도 꼴값에 의리를 챙겼다. 동료의 집 대문에는 저희들만의 암호로 표를 해놓고 표시가 있는 집에는 대문이 열려 있어도 들어가지를 않는 것이 룰이었다. 흠이라면 길가에서 얼굴이 마주 치는 것이었지만 대신에 문단속은 걱정이 없었다.
덕분에 교도소에 다녀온 흔적이 가시기 전까지 그 흔한 지방의원은 커녕 조합장 어쩌고 하는 벼슬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억울하게 손해를 보면서 살았다. 생각하기도 싫은 그때가 언제라고 지금까지도 나를 알아보는 도둑놈이 있다는 것이냐? 기가 막힌다. 이것도 선거 운동이고 보면 어쩔 수 없다지만 오늘은 정말 신경질이 난다.
영감과 나를 교대로 쳐다보고 있는 기자 녀석이 웬 수 같다. 젊은 놈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인가. 기자 녀석은 이제 봉사 식당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나와 영감의 수작을 훨씬 더 흥미로워 하는 것 같았다.
“황가가 맞느냐고?”
영감이 아예 내 옷깃을 잡고 늘어졌다.
“네 맞아요.”
내가 시장에 당선이 되면 임시직 비서 한자리라도 얻어 볼까하고 따라다니는 자칭 수행원 녀석이 눈치도 없이 반색을 하면서 나대신 대답을 하고 나섰다. 이제는 피할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나를 아셔?”
“너? 그렁게 두만 이가 분명헌거여?”
“어럽쇼?”
내 아명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도둑놈은 아닌데..... 고향 쪽의 누구일까? 한데 아무리 보아도 때 국물이 흐르는 영감의 얼굴이 누구인지 떠오르지를 않았다.
두만이는 내 아명이다. 두만강 푸른 물 어쩌고 하면 공산당이라고 잡혀간다고 개명을 했다. 꽤 나 오래 된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그때 이름을 기억하는 인간이 있다. 그러고 보면 개명 후에 교도소에 들어갔으니 감방 동기는 아닌 셈이다. 어떻든 시치미를 때고 볼일이다.
“세상에 황씨가 한둘인가?”
목소리를 깔면서 영감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