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정(65), 그녀는 타고난 춤꾼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한 한국무용이 어느덧 57년의 세월을 안고 있으니 이제 와서 그녀와 춤을 따로 떼어 설명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게다. 일생을 오로지 어느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수천 년 우리 민족의 얼이 응집된 춤에 매료되어 평생을 천착(穿鑿)하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무용가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주부로서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포기하거나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외길을 걸어온 그녀의 남다른 삶은 그 개인에게도 성취감으로 작용했겠지만 관련 분야의 전승과 발전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녀가 초등학교에 입학 당시만 해도 왜 그랬는지 학교에 가기 싫어 온갖 핑계와 꾀병이 다반사였지만 2학년 때 선생님에게 뽑혀 춤과 노래로 채워지는 학예회 무대에 선 후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만 봐도 천부적으로 잠재력과 재능을 타고났던 것으로 읽혀진다. 이후 우리 가락과 춤에 빠져 군산여중, 고와 원광대학교 무용학과, 군산대학교 대학원을 거치며 공부하는 동안 수많은 대회 참가 경력도 쌓게 되는데 이때부터 춤은 그녀의 전부이자 일생의 천직으로 확고부동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그녀의 춤의 세계는 양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자재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즉흥무(卽興舞)를 비롯해서 정형화에서 벗어나 자연과 우주 조화를 바탕으로 한 금아 이길주의 춤 세계를 표현한 금아지무(金娥之舞), 중요무형문화재 92호로 지정되어 그녀의 스승이기도 한 강선영(姜善泳)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태평무(太平舞) 등 여러 형식을 보여주는데 특히 한국의 춤 중에서 장단의 변화가 마치 드라마처럼 복잡하여 가락을 알지 못하면 춤을 만들 수도 출 수도 없어 가장 기교적인 발짓춤이라 할 수 있는 태평무의 경우 동작이 섬세하고 우아하면서도 정중동(靜中動)의 절도가 있어 그녀가 서울에 올라가 3년여를 공부한 끝에 이수 할 만큼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 태평무는 흩어져 있던 무용의 체계를 바로 세워 승무(僧舞),학무(鶴舞) 등 여러 무용을 무대화시킨 조선 말기의 명고수(名鼓手) 한성준(韓成俊)을 사사한 원로무용가이자 김영삼 대통령 시절 문화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강선영 선생에 의해 맥이 이어지고 있거니와 오늘날 그녀도 강선영 스승을 계승하는 제자 중 하나라는 남다른 자긍심으로 후학을 지도하는 일에도 각고의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일까, 오래전 그녀가 이수(履修)하던 시절만 해도 공부를 위해 누구라도 서울로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최근엔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수를 올 정도로 지방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그녀를 비롯한 뜻있는 국악인들의 열의에 힘입은바가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녀가 지난 1978년도 최은정무용학원을 연 이래 약 33년여 동안 전공자로 길러낸 제자만도 200여명에 이르고 그러한 제자들을 이끌고 국내외 무대에 선 횟수는 일일이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다. 이제는 과거에 비해 우리 춤과 가락을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가진 사람이 늘고 있고 그만큼 국악의 저변이 확대되어 언제부턴가 일반 여성들까지 학원을 찾는가 하면 대학 등의 정규과정 외에 평생교육센터를 통해서도 입문하는 사람이 많아 그녀는 학원에서의 지도는 물론 원광대, 군산대, 충남대 등에도 출강을 나갈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취미로 접하는 주부들에게도 동작 하나하나까지 섬세하면서도 정확한 가르침을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무용은 정형화된 전통무용과 시대 흐름을 따라 스승의 창의력으로 안무되는 창작무용으로 대별되거니와 그녀의 경우 50세 이전까지만 해도 그녀만의 생각과 사상으로 표현되는 창작무용 쪽에 크게 비중을 두었다면 이후 날이 갈수록 우리 고유 전통의 멋과 맛이 살아 숨 쉬는 전통무용에 심취, 최근까지 하루도 쉼 없는 절차탁마(切磋琢磨)로서 지금은 전공자 학생의 지도보다는 시민들의 폭넓은 호응과 참여를 통한 저변확대에 심혈을 기울일 생각이다. 따라서 이제는 제자 나이 40~70대까지 평생교육 차원에서의 지도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데 그녀로부터 춤을 배운 어머니들의 경우 전공자 못지않은 열의로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명망 있는 전국대회에 나가 여러 번의 수상 경력도 쌓는가 하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역의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있어 보람과 더불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는 말도 들려준다.
이제 그녀에게 큰 바람이 있다면 우리 가무악(歌舞樂)이 군산시립예술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위상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약 10여 년 전부터 시 측에 ‘군산시립전통연희단’ 설립제안서를 제출하는 등 발 벗고 뛰다시피 했지만 아직까지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다는데 필자의 과문 탓인지는 몰라도 비협조적인 시 측의 처사가 납득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물론 오늘날 예술의 경우 동서양을 넘나들 정도로 글로벌화 되었고 전통예술과 현대예술의 조화는 시대적 요청이기도 한데 정작 서양 예술이 바탕을 이루는 시립교향악단과 시립합창단은 일찌감치 시립예술단이라는 공적인 단체로 자리를 잡아 막대한 예산 지원을 받는 반면에 정작 우리의 전통가무악은 주인으로서의 우대는 고사하고 문전박대를 면치 못하고 있으니 미심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는 어느 한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요 우리 지역 국악인들의 공통된 바람으로서 누가 앞장서든 반드시 성사시켜야 될 일이 분명하나 시 관계자는 예산 문제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는데 꼭 그렇다면 우선 시립예술단에 포함시키고 예산 지원은 차차 강구하는 쪽으로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특히 관련 분야 시의원들의 협조가 관건으로 보이나 아무도 선뜻 나서 열의를 보이는 사람이 없는 것도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 일터다. 더불어 문동신 시장께서도 우리 군산이 한낱 공장지대라는 인식의 불식을 위해 예술의 전당 건립 등 문화예술 육성과 장려에 많은 지원을 통해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이해를 도움으로써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천명한바 있거니와 지금의 홀대는 그러한 방향성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일찌감치 시립예술단의 일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주, 남원, 정읍 등 타 시에서는 아직도 시립예술단 먼발치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군산의 국악계를 보며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는데 우리민족의 전통 가무악이 향후 언젠가는 반드시 시립교향악단, 시립합창단과 더불어 시립예술단 소속의 한 단체로서 자리를 잡아야 될 당위성 자체에 이의가 없다면 관련 시의원과 공무원, 그리고 설립 추진 인사들이 중지를 모아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것이 지금의 국악계에도 힘을 실어주는 일이요 후대에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 아니겠는가.
“춤을 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춤을 알아간다고는 말하고 싶은 인생의 정점에 서서 우리 춤에 대한 열정만큼은 아직 스무 살의 젊은 나이이고 싶다”는 무용가 최은정. 이제 그녀에게 남은 꿈이 있다면 ‘군산전통연희단’이 설립되어 시립예술단의 가족으로 보다 안정된 위치에서 우리 시민들에게 한층 더 신명나고 멋진 춤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이다. 그렇게 주인으로서의 제자리를 찾았을 때 우리 국악인들의 자긍심은 더욱 고양되고 타 시,도에도 체면을 세우는 일이 되겠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특히 세계 각지 공연 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우리 춤사위의 독창성과 멋스러움으로 원더풀! 을 자아내게 하는 전통예술이 정작 안방에서 홀대받는 아이러니를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그녀를 비롯한 관계 국악인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제 나이에 더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지금껏 그래왔듯 남은 인생 제가 지닌 재능을 단 한 가지라도 더 후학에게 전수하는 게 사명이지요. 다만 한 가지, 우리 국악계의 여망인 ‘군산시립전통연희단’이 꼭 설립되는 걸 보게 된다면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여한도 없습니다” 며 회한어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는 57년 춤 인생 동안 단 한 번의 불평 없이 열렬히 성원해 준 남편에게 항상 고맙다면서 김만기(66)씨와의 슬하에 1녀 1남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
경력요약
1978. 최은정무용학원 설립
1997.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
2000. 군산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2006. 원광대학교 무용학과 출강
2008. 호남춤연구회 회장
2011. 충남대학교 무용학과 출강
2011. 태평무 전수관 호남지부장
주요 수상 1990. 제3회 계명대학교 전국무용대회 안무상
1997. 제1회 전국전통무용경연대회 은상
2001. 제3회 한국유네스코연맹 무용대회 안무상(도지사)
2001. 군산시 예술인상
2005. 여성주간 전라북도지사상
2007. 제5회 한국유네스코무용대회 안무상(도지사)
2007. 군산시장상
2008. 국제라이온스 355-E지구 사자대상 금상
공연발췌 1987. 튀니지 세계민속무용축제 공연
1988. 시실리아 주정부 초청공연
1995.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초청공연
1999. 춤, 원광 모티브 창단공연
2002. 원음 국악 관현악 특별출연
2003. 전통문화센터 우리 춤 우리숨결
2005. 명가 강선영 불멸의 춤 공연(태평무보존회)
연해주 고려인의 날 초청공연
군산 국악 관현악 마음모아 소리모아
2006 명가 강선영 뉴욕 링컨센터 공연
국립민속박물관 최은정의 춤
2007 진포대첩 승리의 춤 안무공연
2008 중국 상해 세계민속무용축제 공연
2009 논개, 거먕빛 영혼 창작무용극 안무공연
2011 ‘四季’ 정읍사 예술회관 공연
2012 인연으로 뿌리내린 춤
전주 전통문화센터 ‘최은정의 춤’공연
2013 서울 국립극장 명가 강선영 불멸의 춤 공연
서울 남산국악당 호남 춤 연구회 공연 / 기타 공연 횟수 약 50여회
태평무(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호남전수관
군산시 나운동42 삼성APT. 상가 2F
063) 468-4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