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동 기업은행 뒤쪽으로 롯데아파트와의 사이 길에 위치한 ‘개똥벌레’는 찾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7080 라이브카페’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기타리스트 김용하(金龍河)씨와 최훈(崔勳)씨, 그리고 유일한 여성으로서 색소폰 연주자인 정연이(丁姸伊)씨까지 3명인데 모두 1960년생 동갑내기들로서 음악 하나로 의기투합되어 팀을 이루게 되었다. 개똥벌레의 운영자인 김용하 씨는 중앙로 2가에서 출생한 군산 토박이로 고교시절 기타를 배워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도 할 만큼 재능이 있었으나 군 제대 후 완고한 부모님의 만류로 음악 생활을 접고 직장 생활에만 전념한 오랜 공백기도 있었다. 그러나 기타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어서 40대 들어 직장 퇴근 후 지인이 운영하는 여러 곳의 라이브 카페에 나가 다시 연주를 시작하면서 내재된 끼를 발산하게 되는데 이를 통하여 기량을 더욱 가다듬는 계기와 함께 인생의 전환점도 맞게 된다.
정연이 씨의 경우는 오래전부터 자녀들이 서울에 유학중이어서 서울에도 주거가 있는 관계로 주중 절반은 그곳에서 보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자녀들이 등교하고 나면 혼자 남는 시간이 무료했던 터라 소일거리가 필요했지만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그러던 7년 전 어느 날 딸과 둘이서 경기도 가평에 있는 남이섬에 갔을 때 공원 안에 설치된 무대 위에서 어느 남자가 색소폰을 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때는 가을, 소슬한 바람에 하염없이 낙엽이 흩날리는 정경 속에서 울려 퍼지는 색소폰의 감미로운 선율은 그녀에게 마음의 평정과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당시 약간의 우울증세로 마음 한구석 허전함이 컸던 시기여서 더욱 그녀의 심금을 울렸는지 모른다. 그녀는 불현듯 색소폰을 배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녀는 평소 친구처럼 지내던 김용하 씨에게 생각을 말하자 언젠가 야외에 나가 거리 공연을 해보고 싶은 욕구로 동료 한 사람이 더 있었으면 하던 김용하 씨는 적극 환영했다. 그녀가 우연히 알게 되어 찾아간 곳은 금천구 자택 부근에 있던 ‘잉벌노색소폰동호회’(회장 유병호)라는 특이한 이름의 단체였는데 약 30여명의 회원 중 그녀가 유일한 여성이어서 모두들 반갑게 맞아주었다. 원래 악보 정도는 공부가 돼있던 그녀는 누구보다 진도가 빨랐고 재능을 알아본 원장도 각별히 지도에 신경을 써주었다. 색소폰을 접하면서 자신의 적성에도 잘 맞아 내재된 우울증도 점점 호전되어갔고 하루가 다르게 실력도 늘어갔다. 그녀는 생활이 즐거워졌다. 색소폰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색소폰을 배운지 3개월여 되던 어느 날, 군산에 다니러 내려온 그녀는 용기를 내어 김용하 씨와 무창포 해변으로 야외 공연을 나갔다. 야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스피커, 앰프, 발전기, 반주기, 마이크 등 관련 장비만도 만만치 않은데 김용하 씨는 그 모든 장비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혼자서 공연 할 수는 없는 것이라서 그녀의 합류로 비로소 바라던 일이 가능케 되자 무척 즐거워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아직 실력이 일천했던 터라 공연이라기보다는 그간 배운 것을 밖에 나가 연습한다는 취지였는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초보 실력으로 거리에서 연주한다는 것은 보통 배포가 아니었지만 비록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대중 앞에 서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만 발전이 빠르다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날 해변에 나왔던 사람들은 기타와 색소폰의 공연을 보며 많은 박수도 보내주고 특히 여성이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에 큰 관심을 보여주기도 해서 내심 멋쩍으면서도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좋은 경험의 하루가 되었거니와 이런 횟수를 거듭하며 그녀는 시나브로 실력과 자신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2011년도 들어 그들은 주말을 택하여 서로에게 시간이 맞는 날 야외 공연을 다니게 된다. 그간 공연을 나갔던 장소만 해도 무창포해수욕장을 비롯해서 변산 및 모항해수욕장, 춘장대, 격포, 신성리 갈대밭, 새만금 해넘이휴게소, 고속버스 군산휴게소, 은파, 청소년수련관, 3.1탑 광장, 내항테마공원, 금강하굿둑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서 그러는 사이 그녀의 색소폰 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을 거듭, 이제는 기교와 노련미가 더해지면서 실력자의 반열에 들고 있을 정도다. 김용하 씨는 작년 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의 자리에 ‘개똥벌레’라는 라이브카페를 열었다. 처음 해보는 업소였지만 자신의 연주 공간이 마련됐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었다. 혼자라면 엄두도 나지 않았겠지만 정연이 씨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어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이다.
기타리스트인 최훈 씨는 불과 몇 개월 전 ‘개똥벌레’에 합류한 케이스다. 서울 태생으로서 국가공무원이기도 했던 그는 약 7년 전 직장을 명예퇴직하고 처가가 있는 군산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군산은 단 한 명의 친구도 없는 낯선 곳이었다. 일찍이 은파 주변 전망 좋은 아파트를 마련해둬서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었지만 소일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가끔 혼자서 은파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위 두 사람의 야외 공연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본래 트렘펫 전공자였으나 군악대 시절 어느 사병의 기타 연주를 듣고 매료되어 트럼펫을 접고 기타를 익혔다하며 한눈에도 이론과 실기가 두루 탄탄한 실력파다. 재능을 썩이고 있던 그는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을 알게 된 것이 너무 좋아 만남이 거듭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이로써 기타 2명, 색소폰 1명으로 지금의 진용을 갖추게 된 셈인데 주로 가요를 노래하는 감미로운 목소리의 김용하 씨와, 흔하게 볼 수 없는 홍일점 색소포니스트 정연이 씨, 그리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주로 팝을 연주하는 최훈 씨까지 모두가 나이도 같지만 음악적 구색과 호흡도 척척 잘 맞아 단란한 팀웍을 이루고 있다. 또한 ‘개똥벌레’는 7080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꼭 그 장르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어서 웬만한 신청곡은 거의 소화해낸다. 요즘도 이들은 가끔 업소 문을 닫는 날 야외로 공연을 나가기도 하는데 장비의 운반에서부터 설치까지 귀찮고 힘들기도 하련만은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시민들을 볼 때 큰 위안과 힘이 된다면서 자신들이 가진 재능으로 사회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야외공연은 실내 무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는 점에서 활력을 얻기도 한다. 예컨대 재작년 추운 겨울 어느 날 새만금휴게소 공연 시 알게 된 전주에서 금은방을 한다는 어느 50대 아주머니는 이후 이들의 야외 공연이 있는 날이면 사돈들을 동반하고 군산까지 찾아올 정도로 열성 팬이 되었는가 하면, 청중 가운데는 연주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에서부터 온갖 먹거리를 사들고 오는 사람, 반주기 위에 돈을 얹어놓는 사람, 기타 연주 중인 김용하 씨 얼굴에 기습 뽀뽀를 하고 도망치는 여성 등 이런 저런 유쾌한 해프닝도 심심찮게 벌어져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기도 하는데 이 모두 장시간의 공연에서 오는 피로를 씻게 해주는 소중한 요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야외공연을 나갈 때마다 마치 소년들처럼 왠지 모를 들뜬 기분에 젖어들기도 한다.
‘개똥벌레’는 저녁 7시경 문을 열어 통상 새벽 1~2시까지 영업을 하며 이들 3명이 교대로 감미로운 라이브를 들려주지만 요즘은 손님 가운데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때는 멋진 기타 솜씨로 반주를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업소 문을 연지 1년이 조금 넘는 동안 단골손님도 많아져 마치 가족 같은 훈훈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간혹 지나친 취기로 고성을 지르는 등 타인에게 폐가 되는 손님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좋은 매너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손님이 훨씬 더 많기에 이곳은 단순히 노래를 듣고 부르는 공간을 넘어서 좋은 사람들과 친교의 연을 맺는 가교의 광장이 되고 있다.
7080라이브카페 ‘개똥벌레’
(나운동 기업은행 뒷길)
Tel 063) 466-7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