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바람개비를 들고 소꼽친구들과 산야를 내달리곤 했다. 그런 바람개비처럼 맞바람을 즐기며 나의 길을 내달리며 살아왔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역경을 견뎌야 했고, 수많은 좌절을 이겨내야 했다. 그러나 바람이 세면 셀수록 더욱 힘차게 돌아가는 바람개비처럼 나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굴하지 않은 줄기찬 웅전으로 바람을 이겨냈다. 그것은 나에게 삶의 의미이고 개선(凱旋)의 퍼레이드였다. 이것은 가천대학교 이길여(82)총장이 펴낸 ‘아름다운 바람개비’의 서문 중의 한 구절이다.
군산 대야면에서 태어나 대야초등학교를 나와 1946년 이리여자고등학교에 입학, 51년에 졸업하고 서울대 의학부에 들어가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총장은 먼저 인천에 길 병원을 세워 종합병원으로의 면모를 갖춰 지금은 전국 유수의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서울 성남의 가천대학교의 총장으로 의료와 교육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이길여는 가천대를 글로벌 명문대로 가는 21세기 첨단의학을 열겠다는 의지로 메디컬캠퍼스와 인천 송도 국제도시에 강화교육원, 그리고 미 하와이 교육원의 개설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은 이미 아름다운 캠퍼스로 빛나는 글로벌 인재양성의 샘으로 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암센터와 비전타워는 그 웅대한 내일을 열고 있으며 가천대 의전원과 하버드의대의 공동과정을 운영하면서 파격적인 현지 어학연수의 혜택도 주고 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2020년까지 국내 톱10으로 명문대 서열에 올려놓겠다는 목표로 하고 있다. 가천 길재단 회장이기도 한 이길여 총장은 동아일보창설자 인촌 김성수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인촌상도(공공봉사) 수상했다. 인촌상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언론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로 인촌 선생을 잇기 위해 제정됐다.
영광의 인촌상을 받은 이 총장은 “수상을 계기로 더욱 정진하여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변혁의 시대에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더 크게 공헌하겠다”고 말하고 “내가 고등학생 때 6.25전쟁이 일어나 저와 같이 공부하던 남학생들이 전쟁터에 갔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나를 의료봉사의 길로 나아가게 했다”며 “이룬 것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격려하기 위해 큰 상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고 그 소감을 말했다. 지난해 대야초등학교 동문회는 선·후배등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모교 마당에 이길여 총장의 동상을 세워 후배들의 귀감으로 삼아왔다.
또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인천의 길 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받고 태어난 네쌍둥이 자매가 나란히 간호사가 돼 학사모를 쓴 데 이어 합동결혼식까지 올리게 됐다. 가천대 길병원 인공신장실과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황슬(24), 설, 솔, 밀 자매. 이들 중 지난해 11월 선교사 남편과 결혼식을 올린 둘째 설 씨를 제외한 세 자매는 11일 경기 용인시청 시민예식장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린다. 이들이 태어난 것은 1989년 1월, 출산을 앞두고 인천의 친정을 찾은 어머니(59)는 양수가 터지고 길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고, 제왕절개를 통해 네쌍둥이가 건강하게 태어났다. 당시 길병원 이사장이던 이 총장은 강원 탄광에서 일하던 이들의 아버지(59)가 수술비 마련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병원비를 받지 않았다. 또 퇴원하는 이 부부에게 “네쌍둥이가 성장해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세월이 흘려 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으로 1억2000만 원을 지원했다. 이어 2010년 네쌍둥이가 간호사 국가고시에 함께 합격하자 모두 길병원 간호사로 채용했다.
이들은 가천대 간호학과(야간)에 편입한 뒤 학업을 병행해 지난해 2월 졸업식에서 다 같이 학사모를 썼다. 맏이인 슬 씨는 “함께 태어난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는 것도 큰 축복인데 결혼식까지 함께 올리게 돼 더없이 기쁘다”며 “앞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 많은 분들에게 보답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길여 총장은 2012년 뉴스위크의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인 중의 한사람으로 뽑혔다. 한때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던 이 총장은 항상 고향과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재경 전북인회 임원회에도 어김없이 참석하고 있다. 바람개비처럼 바람이 세면 셀수록 맞바람을 즐기며 나의 길을 내달리며 살아온 그의 삶의 의미에서 개선의 퍼레이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