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7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17일(금) 군산시 금광동에 자리한 동국사(주지: 종걸 스님)에서는 이날 오전 신도와 사찰을 찾은 관광객 등 1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축 법요식을 거행, 부처님의 자비를 되새겼다. 2013년 석탄일 봉축표어는 '세상에 희망을, 마음에 행복을'. 부처님의 은은하고 온화한 미소가 온누리에 퍼진 듯 날씨도 화창하고 맑았다. 가족동반으로 사찰을 찾은 신도들은 형형색색의 연등에 이름표를 매달고, 친지와 이웃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부처님의 위대한 선언, 왜곡된 부분 많아"
대웅전 법당에서 거행된 봉축 법요식은 마음이 안정되고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난다는 타종을 시작으로 김순자 보살의 육법 공양, 삼귀 의례, 반야심경 봉독, 신도대표 신중희 보살의 부처님 탄신일 봉축발원문 낭독, 종걸 스님의 봉축 법어 발표순으로 진행됐다. 법요식에 참석한 신도들은 봉축 법어에 앞서 석가가 태어나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키고 사방
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선언한 탄생게(誕生偈).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를 종걸 스님의 선창에 따라 합창으로 답했다.
종걸 스님은 "흔히 불교를 비방하는 이웃 종교인들은 탄생게 앞부분(천상천하 유아독존)만 나름대로 해석하는 바람에 위대한 선언이 왜곡된 부분이 많다"며 "'유아독존'의 '나'는 석가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니고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개개인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천·지·인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는 중생들을 부처님께서 깨달음의 진리로 모두 편안케 해주겠다는 '평화 선언'이요 '행복 선언'이라는 것. 종걸 스님은 "태자의 신분을 버리고 고행 끝에 중생들을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 인도한 석가는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최고의 인권운동가였다"고 덧붙였다.
법요식이 끝나고 신도들은 아기 부처의 머리에 감로수를 부으며 마음속 괴로움을 씻어내고 경건한 자세로 촛불을 켜며 저마다의 소망을 기원했다. 나운동에서 친구와 함께 왔다는 남 할머니(72)는 "손자들이 건강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달라고 기원했다"고 말했다. 각양각색의 연등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경내에서는 가족을 동반한 신도들과 방문객들이 사찰에서 재공한 비빔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자비와 광명으로 이 땅에 오신 부처님의 참뜻을 기렸다.
충북 청주에서 아들 손자와 함께 왔다는 하춘근(83) 할아버지는 동국사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사진촬영이 취미라는 하 할아버지는 한문 실력도 대단했다. 부처님오신날 소원을 묻자 메모지에 한자와 한글로 "인생 일대 부처에 바라는 것은 '성취'에요"라고 적었다.
일본불교 대표 종단 조동종이 세운 '참사문비' 다시 보여
일본의 망언이 계속 이어지고 석탄일이어서 그런지 일본 조동종(曹洞宗) 소속 스님들이 작년 9월에 건립한 '참사문비'가 다시 보였다. 참사문비에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과 그에 동조하여 선무공작까지 담당했던 자신(조동종 스님)들의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음각되어 있다. "우리는 과거 해외포교의 역사 속에서 범했던 중대한 과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아시아인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 해외포교에 종사했던 사람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일본의 해외 침략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그것을 정당화했던 종문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생각해 보건대 불교에서는 모든 인간이 불자로서 평등해야 하고 어떤 이유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훼손되어서는 안 될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 말한다. 그런데도 석가모니 세존의 법맥 잇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삼는 우리 종문은 여러 아시아 민족 침략 전쟁에 대해 성스러운 전쟁이라 긍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참사문 옮김) 참사문은 "민족, 국가, 신앙 등으로 보장받는 정체성은 사람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임에도 조동종을 비롯한 일본의 종교는 한민족의 일본 동화와 황민화 정책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고, 중국 등지에서는 자진해서 특무기관에 접촉, 첩보활동을 한 승려도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근대교육 자료로 활용가치 높은 동국사
동국사(국가등록문화제 64호)는 1909년 일본 조동종 우찌다 스님이 군산의 외국인 거주지 1조 통에 금강선사(포교소)를 개창하고, 1913년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정부로 이관되었다가 1955년 동국사(東國寺)로 개명하고 1970년 대한불교 조계종 24교구 선운사에 증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 정방형 단층 팔자지붕 홑처마 형식의 일본 에도시대 건축 양식으로 외관이 화려하지 않으며 소박한 느낌을 준다. 지붕 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 외벽에 미서기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전통한옥과 대조를 이룬다.
요사채는 몸채를 툇간으로 둘러싸는 일본 전통양식이고 복도를 통해 법당과 연결되어 있다. 사용된 목재는 모두 일본산 쓰기목이다. 범종은 1919년 일본 경도에서 주조했고, 창건주 및 시주자, 축원문 등이 음각되어 있다. 동국사는 식민지배의 아픔을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교육 자료로 활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