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은 음력 4월 초파일로 불기 2557년을 맞는 부처님 오신날이다.
자비·복덕·청정·진실·지혜의 부처님 모습을 이웃과 함께 찬단하고 국운융창과 국민화합을 두 손 모아 기원해 본다. 부처님의 설법을 원조적으로 전하고 있는 법구경은 모든 길 가운데 팔정도(八正道)가 뛰어났고 모든 진리가운데 사성제 (四聖諦)가 뛰어났으며…라고 했다. 바른 길과 진리를 설법한 이 팔정도 사성제는 바로 불교의 근본 원리이다.
이렇게 해탈하면 누구나 열반에 들 수 있다하여 석가는 계급사회를 부정하고 ‘평등의 법’을 설법하였다. 또한 진리의 정도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인연법을 뒷받침하고 있다. 불교의 공무(空無)사상과 제행무상(諸行無常)은 물질만능으로 눈이 어두운 세태에 경종을 울린다. 열반경(涅槃經)은 인간에게 자기자신과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날을 맞아 연등행렬이 벌어지는 것도 사파세계의 어둠을 밝혀주고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뜻한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서울 각 지역마다 사암연합회의 이름으로 펼침막이 내걸렸고 등의 행로로 거리는 온갖 등꽃을 피우고 있다. 이날을 맞아 군산사암연합회는 전야제 행사로 연등어린이회 불교학생회, 청년회, 일반 신도들이 동참해 제등행렬을 벌인다.
군산에는 소룡동에 천년고찰인 은적사가 있다. 1천3백년 전 신라 진평왕때 창건된 사찰로 명사(名師)로 손꼽히고 있는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직접 창건했다는 사실에서 더욱 전통적인 사찰로 알려져 있다.
그 은적사가 한때는 오랫동안 손을 보지 못해 비만 내리면 빗물이 새는 등 낡은 사찰이었 지만 1991년부터 대웅전을 비롯해 국락전·명부전·삼성각과 요사채가 신축돼 새 모습을 갖추고 있다.
수령 3백년이 넘은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있어 천년고찰의 면모를 지키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흐르고 있는 새물의 맛은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게 한다.
8·15 전 봄·가을 소풍철에는 의례 은적사를 찾는게 하나의 연례행사가 되다시피했다. 그만큼 갈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수면의 축성산 기슭 우거진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상주사 역시 천년고찰로 전라북도 문화재 제 39호로 지정돼 있으면서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대웅전은 마치 화장기 없는 곱게 늙은 누님과 같은 산사이다. 시내에는 동국사와 흥천사 외에 백년을 헤아리기에 충분한 연불암이 신축돼 월명공원 경내에 외롭게 자리하고 있다. 속칭 산재당이라고 불렸고 형과 아우인 형제스님이 주석하고 있었고 그때의 절 공양의 감미로운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동국사는 1913년 일인에 의해 세워진 일본의 대종단 조동종(曹洞宗)의 막사로 금광사(金光寺)가 행방과 함께 동국사로 이름을 바꿔 한국 조계종의 말사가 됐다. 중기시인 고은 씨(수원 거주)도 한 때 여기서 승려생활을 했었다. 지금은 종결 스님이 종무를 총괄하고 있지만 작년 9월 일본불교 최대 종단 조동종이 동국사 마당에 참사비를 세워 일본정치의 협력과 전쟁가담사실을 참회하는 참회비도 세웠다. 경내 종각의 범종은 일본의 불도(佛都) 쿄도시의 당시 신자들이 시주한 것으로 시주자 이름이 음각돼 있어 뚜렷이 남아있다.
월명공원의 해방터널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흥천사는 우리나라 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말사로서 현재 비구니 승려들이 상주하고 있다. 이 흥천사는 8·15전 일본종단의 하나인 히가시혼간지(東西本願寺)였음을 알 수 있는데 건축양식은 일본 절 그대로 설계돼 있다. 일제 강정기 쌀 수탈의 집산지 군산항의 쓰라린 과거사를 상징하고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현 삼성빌딩자리는 그 전에는 역시 일인들의 니시혼간지(西本願寺)였다. 글쓴이는 그 절의 스님이 결성한 소년단원이기도 했다.
일본 쿄도역에서 내려 10분쯤 걸으면 왼편에 웅대한 본사의 건물의 자태를 볼 수 있다.
‘부처님 오신날’의 노래를 여기 옮겨 본다.
꽃보라 흩날리는 룸비니 동산
한줄기 찬란한 빛이 우주를 덮고
거룩한 싣달태자 탄생하실 때
유아독존 큰소리 누리퍼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