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젊은이가 없다. 손에 흙을 묻히는 것 싫다고 어머니 품 같은 고향을 다 떠났다. 일 할 사람이 없다. 우리 동네 군산 대야 접산리는 큰 동네인데 갓난아기 응애 울음소리는 먼 옛 꿈 이야기다.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없다. 몇 집 건너 빈집. 전부가 거의 65세 이상이다. 그들이 논밭에서 허리와 무릎이 아픈 것을 참고 견디며 땅이 생명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 하나를 가슴에 묻어두고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흙에 범벅져 산다. 이것은 이번 월간 한국시에서 시 당선소감을 밝히는 소감의 한 구절이다.
농부 시인 조충렬은 1934년생으로 전주고등학교와 서울대 농과대학을 다녔다. 전북수리조합 편의원에 당선됐고 진성여중 육성회장을 지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에 입후보 한 적도 있다.이게 그가 살아온 이력이다. 그는 농사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상에 전념해 왔다. 한국시는 원로 시인 김해성씨가 발행하는 순수 시 전문지로 시, 시조, 수필, 문학평론, 동시 등을 다루고 있고 통권 184호를 발행하고 있으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 시인은 이번에 ‘어머니’, ‘만리포’, ‘들국화’ 등으로 당선되어 시인으로서 길을 걷게 됐다. 이 가운데 ‘어머니’를 적어본다
내 동네 나붓뫼 열 일곱에 시집오셔 빛 바랜 몇 벌 옷에 구십 년 한세월 가신 어머니
꽃가마 타고 낯 설은 촌길 찾아 분단장 연지곤지는 시집 오신 몇 날일까
흙일에 묻혀 손등에 이겨진 골 패인 긴 세월 등잔불에 바늘귀 더듬어 땀 냄새 풍기는 아버지 나들이 옷 꿰메시고 새기들에 몸 부려 숙명이라 사신 어머니
가신 세월 그 몇 년이랴 한나 둘 손가락 집어 세어보며 생전에 못 다한…
어머니 용서하십시오
삶과 자연과의 교감에서 들려오는 시적 감흥을 투명하고 세심하게 잘 담아내고 있으며 특히 순수한 시정신과 깊은 정한 사상을 생명적 시어로 빚어내는 묘사력이 뛰어나기에 당선시킨 조충렬 시인에 대한 심사의원들의 평가다. 조 시인은 학창시절부터 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시작품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이렇게 이어온 것이 이번 당선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앞으로는 더욱 힘써 줄 것을 기대해 본다.
최근 일본에서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이 새삼 화제다. 영화의 배경은 전국시대의 일본. 한 사무라이가 단도에 찔려 숨지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수사에 나선 관청은 피살자의 아내와 그녀를 겁탈한 사건 현장을 목격한 나무꾼을 불러다 조사하지만 진술이 서로 엇갈린다. 사건은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 등장인물들은 진실이란 말하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라쇼몽’의 원작을 쓴 사람은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소설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자살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150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를 기리기 위해 1935년 아구타가와상이 제정됐다. 이 상은 기성작가에게 주는 나오키상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신인문학상이다. 해마다 1월과 7월 두 번에 걸쳐 수상자를 발표한다. 수상자 중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 등 일본문학을 빛낸 작가가 수두룩하다. 재일동포로는 이희정(1972년), 고 이양지(1989년), 유미리(1997년)에 이어 2000년 현월씨가 이 상을 받았다. 수상자 명단을 보면 이시하라 신타로의 전 도쿄도지사의 이름도 들어있다. 일본 단체에서 정치인의 우익적 선격을 평가한 결과에서 1위를 차지한 그는 ‘태양의 계절’이란 소설로 1956년 이 상을 받았다.
얼마 전 148회 아쿠다가와 상 수상자로 75세의 구로다 나쓰코(여·미혼)씨가 선정됐다. 역대 최고령 수상자란 점에서 화제다. 수상작 ‘ab 산고’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은 ‘작가의 나이와 상관없이 매우 신선하고 훌륭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국어교사와 사무원 등을 하면서 글쓰기를 했으나 본격적으로 소설에 도전한 것은 은퇴 이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생 2막’에 새롭게 도전한 조충렬 씨와 구로다 씨 같은 노년의 신예 작가들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