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교(華僑)들은 자신을 스스로 짜장면에 비유하곤 한다. 그 이유는 한국인은 짜장면을 중화요리라고 하지만, 중화요리점 주인(화교)들은 한국 음식이라고 하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이 땅에 들어온 화교들이 100년 넘게 뿌리를 내리면서 중국에도 한국에도 없는 고유의 문화를 형성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화교들은 언어와 의복, 생활 등에서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중 의복은 70년대까지 중국 전통 복장을 일상적으로 착용하였으나 이후에는 한국인과 같은 복장을 하고 다닌다. 결혼도 해방 후까지 동족 배우자를 원했지만, 3세대의 50% 이상은 한국인과 결혼하는 추세이며 장례 절차와 매장은 중국 풍습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특징에도 중국 친척 집을 방문한 화교가 한·중 축구경기를 관람하면서 마음으로는 한국팀을 응원했다는 이야기는 이들이 이방인이 아닌 다문화 시대를 열었던 한국 최초의 이주민이며 함께 상생해야 하는 이웃사촌임을 확인하게 한다.
화교들의 생활상 느껴지는 전시회 열려
화교들의 생활상이 담긴 '100년을 함께 살아온 이웃 친구 화교' 전(展)이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하 박물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군산에 화교가 들어온 시기는 19세기 후반으로 개항(1899)과 함께 화교 상인들이 거점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산의 화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산둥반도 출신이 대부분. 인천을 거치거나 직접 군산에 도착한 중국인 대부분은 부두나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채소농사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중화요리점, 잡화상, 철물점, 옷감장수 등으로 재물을 모으면서 뿌리를 내렸다.
군산에 화교가 가장 많이 거주했을 때는 일제강점기로 1600여 명을 헤아렸으나 지금은 모두 떠나고 40명 남짓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교육기관인 화교소학교와 화교 교회, 화교 공동묘지 등 피부로 느껴지는 흔적이 이곳저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는 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기획 중인 '군산이 만난 사람들' 시리즈의 첫 번째 행사로 100여 년을 함께 살아온 군산 화교들의 삶을 통해 근대시대 최초의 이주민이었던 화교들의 삶과 문화를 조명하고자 기획했다"고 전했다.
전시 내용은 화교들의 역사와 문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활용품과 사진, 인터뷰 동영상 등. 1960년대 결혼식, 일제강점기 유곽(칠복루)이었던 군산 화교소학교와 운동장에 세워져 있던 석탑, 유치원용 교재, 초등학교 교과서, 참고서, 손으로 쓴 가정통신문, 학생들 아침조회, 수업 모습, 쌍십절 운동회, 졸업식 사진 등은 자국 언어를 고집스레 사용하던 그 옛날 화교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중 '만보산 사건' 이후 군산으로 피난한 화교들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개교(1941)한 군산 화교소학교 옛 건물, 화교학교 운영 관련 자료, 중국 전통 의상 등이 눈길을 끌었다.
만보산 사건은 1931년 중국 길림성(지린성) 만보산 지역에서 일제가 술책을 부려 한국과 중국 농민이 벌인 유혈사태를 말한다. 일제는 중국인이 한국인을 죽였다고 소문을 퍼뜨려 국내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배척하고 공격하게 하였다. 훗날 한국 언론의 사실 보도로 오해는 풀렸으나 그 여파로 많은 화교가 본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군산시 나운동 군경묘지 뒷산 중턱에 있는 화교들의 공동묘지 사진도 발길을 멈추게 했다. 지방세, 국세는 물론 적십자회비까지 꼬박꼬박 내던 화교들. 그들의 묘지는 원래 삼학동과 오룡동 사이 산비탈에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도로가 뚫리면서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군산 화교협회(회장 형광의)에서 제공했다는 치파오(旗袍) 등 중국의 다양한 전통 의상을 비롯한 중국 전통 신발, 윗알이 두 개로 나눗셈이 가능한 주판, 엽차를 끓여 마실 때 사용하던 주전자와 찻잔, 결혼 증명서, 성경책, 제사용 향로와 지전(紙錢), 악기(호금), 부채(학익선), 식기와 조리도구 등 화교들의 생활상이 엿보이는 생활용품도 전시하고 있다. 군산 화교소학교 여건방(呂建芳) 전 교장의 인터뷰 영상은 전시회에서 느낀 궁금증과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준다.
군산시 영화동에서 중화요리점 '용문각'을 운영했던 여 전 교장은 화교들이 중국을 떠나 한국에 온 사연과 군산에 정착한 화교들의 일제강점기 생활상 등 살아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증언하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일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침략당하는 동병상련의 고통을 함께 겪었던 화교들은 우리나라 근대시기 최대의 이주민 집단으로 100여 년을 함께 살아온 이웃이자 친구"라며 "이들(화교)을 통해 다름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다문화 시대 문화를 함께 생각하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