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내의 모든 개발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해당지역의 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에 환경․ 건축행위의 결과가 양이 아니라 질에 의해 평가 받아야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문화적 도시환경을 물려줘야한다.'
이는 베를린전체가 전시장이 되어 실제 부지에 직접 건설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독일 베를린 국제건축전(IBA)의 기본적인 철학이었다. 이를 통해 1988년 베를린은 인간적이며 예술적인 특징이 잘 살아있는 도시로 거듭났다.
최근 군산시는 내항과 원도심 주변을 중심으로 근대문화시설 경관사업이 한창이다. 지난2008년 ‘근대산업유산 활용 예술창작벨트화사업’에 선정된 이후 구)군산세관, 오는 9월30일 개관식을 갖는 근대역사박물관, 2012년 개관예정인 근대문화유산으로 표현되는 조선은행, 나가사키18은행, 미즈상사, 대한통운 창고 등을 박물관, 전시관 소극장, 창작지원공간 등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이 그 내용이다. 또한 민박체험관 무형문화재전수관 등으로 주변 주택들에 대한 경관사업까지 도시재생사업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근대산업 유산활용 예술창작 벨트사업100억, 근대역사경관조성사업140억 총 240억이 이 지역에 집중 투하되고 있는 셈이다.
일제의 경관사업 군산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는 개발인가?
그러나 일부 시민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도시 경관사업의 정체성에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고 있다. 군산토박이라는 두석진(73, 중앙로)옹은 “지역이 개발되는 것은 좋은 일인데 왜 하필 일제 강점기 건물을 보조금을 주어가며 공짜로 고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정체성을 모르겠어. 일제가 우리한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데……”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군산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도시정체성이란 말 그대로 과거에 있는 것은 물론 지금부터 만들어지는 것을 포함해서 그 도시에만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자연경관과 역사 환경 등이 대표적인 요소가 되며 더 크게는 그곳에서 일상을 보낸 주민의 삶의 방식까지를 포함하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의미를 군산정체성에 대비해 보면 지금의 일제 강점기 경관사업과 그 건물속의 예술창작벨트화사업만으로는 무언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 있다. 이러한 일제 강점기 건물이 가장 많이 보존한다는 사실이 가지고 있는 군산의 역사적 의미와 아픔 그리고 우리후손들에게 어떤 문화적 배경을 담은 도시를 물러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군산은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전초기지로 사용된 만큼 일제의 잔재가 풍부히 남아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지역 이였기 때문에 항일, 항거의 역사도 풍부하다. 1919년 3월5일 구암 교회의 호남최초의 만세운동은 임피, 대야, 옥구 장날이 만세운동으로 퍼지면서 각종 3.1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또한 1923년 국내최초로 낙합 정미소 여성노동자 파업이 일어났다. 이 또한 항일 항거의 역사이다. 그 후 철도노조, 인쇄공노조, 인력거노조까지 각종 노조 항거운동이 있었다. 1929년 옥구농민항쟁도 일본 농장주에 대항한 사건이다. 당시 14만여 건의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군산경찰서까지 농민이 습격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항일 농민역사다. 이밖에 최무선의 진포대첩 임병찬장군의 의병활동 최호 장군 등 무수히 많은 항일 항쟁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이들은 지역의 닳아빠진 역사책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을 뿐 군산도시의 재생의 현장에 녹아들지 못하고 주인공 옆에 부채를 들고 부치는 엑스트라에 불과한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대문화유산의 경관사업의 엄청난 예산과도 비교도 안될 만큼 재현이나 관리에 잊혀 진 존재가 되고 있다.
군산문화재단 설립 왜 표류하나?
작년 군산시는 이러한 이영춘 가옥을 포함한 근대문화시설과 군산예술의 전당 그리고 채만식 문학관까지 군산문화시설을 관리할 가칭 군산문화재단 설립을 공식화하여 준비 위원회까지 구성하려 했었다. 이러한 막대한 문화시설을 시가 책임지기엔 행정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문화재단 설립 지자체지원금도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산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미 43개의 지자체가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고 거의 모든 지자체가 서로 지원금을 타내려 재단설립에 관심을 가졌던 인기 있던 행정 편의 주의적 문화행정이었다. 그러나 도의회서 조례제정까지 되었던 전북문화재단, 준비 위원회 구성까지 했던 군산문화재단 등이 표류하기 시작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지자체장의 정치적 보훈처, 혹은 위인설관설 등이 대두되면서였다. 물론 예산낭비, 기존 예술단체의 ‘옥상옥’ 개념등도 한몫을 차지했다. 각 지자체는 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거센 물살을 만난 셈이다.
의식 있는 예술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군산의 한 작가는 “문화재단설립은 방향과 지향성을 가지고 시민사회의 즉 민간의 역량을 결집해 행정에 제안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이 군산문화재단은 이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밝히는 설립목적이 확실한 정관을 가지고 추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민사회 즉 민간의 역량이 안 되니……” 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군산시는 근대문화시설을 어떻게 관리 할 것인가에 대한 용역을 실시 중에 있다. 사실상 군산문화재단의 설립에 관한 용역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9월말이면 최종 보고서가 나온다. 정준기 군산시 문화체육부 과장은 “문화재단 설립은 어떤 용역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를 바탕으로 주민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충분히 거쳐 결정될 일입니다. 시가 정한 원칙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군산 근대문화 시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현대인들은 기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추어 진 도시에 살면서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긴다. 개개인에게도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도시에 대한 요구도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것에서 심미적이고 정신적인 그리고 도시의 독특한 정체성과 개성이 가미된 역사적인 관점의 도시재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갈수록 거세질 것이다. 군산시는 많은 사람들이 ‘근대유산이 잘 보존된 도시’라고 말한다. 쌀 수탈 기지로서의 일제 강점기의 역사뿐만 아니라 이에 항거한 항일역사도 많다. 6.25동란 실향민이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호남속의 강한 보수주의경향을 띤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주한미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특징상 친 미주의적 성향도 강하다.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본능은 우리 시민을 뿌리가 약한 내고향정신이 부족한 곳이라는 오명도 있다.
방치에 가까운 미개발 덕에 우리는 근대문화유산을 많이 가진 고장으로 명성을 얻었고 정부 지원금으로 지역재생을 하고 있다. 잘만 한다면 한국근대메카로서 연구하고 보존하고 밝혀야할 자원이 풍부한 인문사회의 보고가 될 지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도시재생에 있어 첫 단추를 잘못 채우면 땅값이나 부동산투기만 난무하는 건설의 현장으로 전락 할 수도 있다.
도시는 지나간 삶의 흔적이 축척된 공간이며 동시에 현재의 삶의 양식이 새롭게 피어나는 공간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 자체가 역사 문화적 자원이 된다는 점에서 파괴와 보존 그리고 개발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군산시가 근대문화경관사업이 하면서 가장 후회됐던 부분이 옛 시청 건물과 구 경찰서를 허물었다는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역사의식과 새로운 관점에의 고민을 공유한 시민소통부재와 더불어 미래사회에 대한 예측을 못했던 이유였다. 이번 근대문화유산사업은 다음세대까지 생각하는 원칙과 지향성을 갖는 도시재생사업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교육적 현장뿐만 아니라 방문객이 많은 잘사는 군산건설이라는 궁극적 목표까지도 효과를 거둘 가장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하려면 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