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장군(1545~1598) 유품을 전시해놓은 ‘명량대첩 기념관’에서 진도(珍島)읍에 있는 식당으로 옮겨 점심을 먹었다. 구수한 가시리 된장국 백반으로 허기를 채운 탐방단은 진도 홍주로 권커니 잣거니 잔을 나누었다. 적당히 목을 축인 탐방단은 조선 시대 남종화의 대가 소치(小痴) 허련(許鍊:1808~1893) 선생이 말년에 거처했던 운림산방(雲林山房)으로 이동했다. 옅은 비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도는 운림산방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10분. 출발할 때는 비가 내렸는데 버스가 도착하니 그쳐서 다행이었다. 일행은 소치 선생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운림산방 앞마당에서 군산문화원 이복웅 원장의 설명을 듣고 현존하는 작가 130여 명의 작품이 전시된 소치기념관과 쌍계사 등을 돌아보았다.
"시·서·화에 뛰어나 3절로 불리는 소치 선생은 49세 때 존경하던 스승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 선생이 세상을 뜨자 고향 진도로 내려와 첨찰산(485m) 능선 아래 양지바른 곳에 화실을 짓고 '운림각'이라 불렀는데 지금의 '운림산방'입니다. 소치 선생은 86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서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으며 자서전 소치실록도 집필하셨죠. 이곳 현판과 조금 전 울돌목에서 기념관 들어가기 전에 봤던 비석에 한자로 음각된 '약무호남 시무국가'는 소치 아들 의제 선생 글씨입니다." 남정근(83) 전 군산·옥구문화원장은 소치기념관 앞의 잔디에 심어진 나무(일지매) 앞으로 다가가 수험생이 필기하듯 안내판 내용을 꼼꼼히 메모했다. 남 전 원장은 "소치 선생이 손수 심어서 길렀다는 나무 세 그루 중, 두 그루(백일홍, 일지매)는 이름을 알고 한 그루는 몰랐는데 '자목련'인 것을 확인했다"며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낸 학생처럼 밝게 웃었다.
운림산방에서 소치 선생에 대해 설명하는 이복웅 원장
운림산방을 병풍처럼 둘러싼 첨찰산 능선을 바라보며 걷던 황금택 지회장은 "등산모임에서 몇 차례 다녀갔다"면서 "굽이굽이 이어진 능선을 3시간 정도에 걸쳐 산행하면서 내려다보는 운림산방은 방향이 바뀔 때마다 몽환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그림 전시장 같았다"고 말했다. 어느 회원은 "뛰어난 산수(山水)와 풍치를 보니 명작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감탄사를 터뜨리기도. 첨찰산 서쪽 끝 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寺刹)로 알려지는 쌍계사(雙溪寺)와 상록수림을 돌아보고 운림산방을 출발해서 신비의 바닷길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39분. 잠시 버스에서 내려 비안개 자욱한 바다를 조망하고 목포시 남농로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연구소로 방향을 잡았다.
해양문화의 보고(寶庫)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전시관에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도착하니 광장의 대형 닻(길이 8.3m 너비 5m)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서해에서 새우를 잡던 멍텅구리배 닻이라고 한다. 멍텅구리배는 오랜 시간 바다에 정박해서 작업하고, 밀물과 썰물에 잘 버텨야 하기 때문에 큰 닻이 필요하단다. 전시된 닻은 2000년 6월, 전통 조선기술과 어로 민속 보존사업의 하나로 전남 신안군 어민 박항휘 등이 제작한 것으로 전한다. 국내 최대로 알려지는 해양유물 전시관(1층~4층)에는 남해에서 발굴된 고려선과 1323년 중국 원나라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신안 앞바다에서 난파된 신안선(무역선), 조선의 실학자 정약전이 쓴 우리나라 해양수산생물 사전 <자산어보> (玆山魚譜: 1814년)의 발자취, 조선 통신사 선과 거북선, 판옥선, 조운선, 근대의 고기잡이배까지 다양한 문화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해군과 잠수부 등으로 이루어진 해저유물 발굴단이 국내 최초로 발굴한 720여 개의 선체 조각을 이어 실제 크기(길이 35m, 폭 11m, 무게 200톤으로 추정)로 복원한 신안선과 고려 시대 도자기를 운반하던 완도선은 수백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했다. 특히 배에 실려 있던 고려청자와 다양한 공예품들은 14세기 동아시아 해상 무역과 당시 조선기술을 보는 것 같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신안선 맨 아랫부분에 적재되어 있던 목재로 표면에 묵서하거나 음각으로 새긴 다양한 문양과 부호, 한자와 로마자 등이 복합적으로 표기된 자단목(紫檀木) 더미도 눈길을 끌었다. 자단목 원산지는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이며 불교와 힌두교 문화권에서 태우면 향기로운 연기를 내는 분향료(焚香料)와 조각품·장식품·고급가구 등에 쓰였다고 한다. 1975년 5월 중국 용천요(龍泉窯)의 청자 몇 점이 어부들의 그물에 걸리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다양한 해저 유물과 바닷가 주민의 삶과 문화, 우리 배와 중국 배의 역사 등 선조들의 해양문화와 발자취가 담긴 문화재를 보면서 선조들이 바다를 어떻게 이용하고 개척하였는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