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씨(46세)와 김기은씨(44세)는 군산시 나운동에 살고 있는 부부작가다. 이 작가는 군산대 국문학과 출신이고 김 작가는 원광대 국문학과 출신으로 대학은 다르지만 대학생 때부터 문학 활동을 해오던 이들은 같은 해에 각자의 대학 학보사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이들은 우연히 독자로서 상대의 글을 먼저 읽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보다는 글로 먼저 선을 본 셈이다. 이들은 문학으로 맺은 인연을 계속 이어나갔고, 군산은 이들의 문학적 상상력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터전이 되었다. 이 작가의 원래 고향은 대구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83년에 군산으로 왔으니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김 작가는 군산 토박이라 이 작가는 아내인 김 작가를 만나려고 군산에 왔나 보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이 작가는 계간지인 <작가세계>에 소설이 당선되며 등단을 했고, 김 작가는 전북일보와 전주일보 신춘문예에 소설과 동화가 각각 당선되면서 등단을 했다. 평생을 작가로서 살아가자는 약속을 하면서 94년에 결혼했다. 이 작가는 전북일보, 전북도민보, 호남매일 등에 각각 1년간 소설을 연재해왔다.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과 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이들 부부는 2001년과 2002년에 차례로 MBC창작동화대상 장편동화부문에 당선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넓혀갔다.
이 작가의 대표작으로는 <그들이 사는 법>, <할아버지의 뒤주>, <그해 여름, 닷새> 등이 있고. 김 작가는 <세계일주을 떠나는 마녀 할머니>, <퇴계와 율곡> 등이 있다. 부부작가로서의 삶이란 어떠냐는 질문에 “서로의 첫 번째 독자이자 검열관”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초고가 완성되면 서로 교정을 봐주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공유하며 함께 키워간다고도 했다. 관심사가 같기 때문에 대화가 많은 편이고 소통도 잘 된다고 한다. 상상력을 공유하고 함께 키워간다면 그 이야기는 누가 가져가느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먼저 글로 써내서 출판하는 사람의 것”이란다. 지금까지 서로 도와가며 구상해놓은 이야기가 글로 써서 세상에 내놓은 작품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부부가 공유한 이야기 주머니에는 10년 전에 구상한 것도 있고, 어제 본 드라마의 주인공이 한 대사에서 착안한 것도 있다. 이야기 주머니가 크고 그 안에 담겨있는 상상력의 씨앗이 많아서 부부 사이에 글의 소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은 없단다. 또한 작품의 소재가 될 만한 게 있으면 눈여겨보았다가 말해주기도 하고, 그와 관련된 자료를 구해 전달해 주기도 한다. 이 작가는 말한다. “상상력은 저보다 아내가 뛰어납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의지하는 편입니다. 어떤 부분이 막혀서 끙끙대고 있다가 아내에게 하소연하면 금방 해결되거든요.” 부부라서 서로의 관심사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좋다. 예를 들어, 음식에 관한 것이나 여성의 심리는 아내인 김 작가에게 듣고, 전투나 무기에 관한 것은 남편인 이 작가에게 듣는 식이다.
이제는 두 딸이 훌쩍 커서 이야기 주머니에 상상력의 씨앗을 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학교에서 들은 얘기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걸 알려주기도 하고, 동화나 청소년 소설을 쓰면 초고를 읽은 다음, 그 또래의 눈높이에서 의견을 말하거나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준다. 언젠가는 저학년용 동화의 제목을 <비뚤어질 테다>라고 정했는데, 둘째딸이 도서관에서 똑같은 제목의 일본소설을 봤다고 해서 찾아봤더니 정말 제목이 똑같아서 수정한 적이 있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규정했다. 시간은 단절될 수 없기에 현재는 과거의 유산이고, 현재 또한 미래의 유산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물은 역사를 지닌다. 그 사물의 내밀한 이력을 엿듣거나 엿보는 건 재미있다. 군산은 1899년 5월 1일에 개항하였다. 군산엔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기 숨어있다. 부부는 시간 날 때마다 월명동, 영화동, 선양동 거리를 걷는다. 오래된 가옥에 박힌 못에서 흘러내린 녹물, 글자가 지워져가는 간판, 색깔이 변해 기울어진 담장, 집터만 남은 공터 등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군산이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통해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 때문일 것이다.
금년 초에 개봉한 전수일 감독의 <핑크>는 도선장 주변과 해망동 일대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다. 부산에서 활동 중인 전수일 감독은 시사회장에서 “역사가 오래된 군산에서 촬영했는데 빛바랜 도시의 느낌이 핑크와 닮아있어서 그곳을 선택했다”며 군산에 대한 특별한 느낌을 피력했다고 한다.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선술집 ‘핑크’는 핑크색 간판을 단 채 아직도 남아있다. 항운노조 사무실을 선술집으로 개조한 내부엔 차림표가 그대로 붙어있다. 부부는 영화의 배경지를 돌아보는 동안 강한 자극을 받았다. 외지인이 군산의 문화원형을 활용하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구상만해오던 작품들에 대해 너무 늑장을 부렸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군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예정보다 일찍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우리 고장이 배출한 채만식 작가의 소설 <탁류>의 속편을 쓰는 것이다. 이 작가는 영업비밀(?)이어서 자세한 줄거리를 말할 수는 없지만, <탁류>가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라는 상상력을 밑바탕에 깔고 진행되는 소설이라고 살짝 귀띔한다. 장편인 데다 시대적 배경이 30-50년대이다 보니 자료를 많이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초봉이 장형보를 죽이고 재판을 받는 장면을 묘사하려면 당시의 재판정 풍경과 공판기록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채만식 작가가 <탁류>의 등장인물 개개인에 쏟은 애정의 정도 같은 것도 감지해야 하는 데,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가는 채만식 연구자이기도 하다. 군산대에서 “채만식 소설의 공간 의식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논문도 채만식에 대해 쓸 예정이다.
이 작가는 <탁류>의 속편을 쓰기 위해 채만식 작가의 <탁류>에 등장하는 장소를 자주 찾는다. 소설에 묘사된 장소를 따라가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숨결이 느껴져 작품을 구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 당시의 지도를 거실에 걸어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니 김 작가도 자연스레 군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 작가가 주목한 건 동국사였다. 일본인이 작성한 1930년대 말 지도를 보면 현재의 군산시가지와 거의 일치한다. 그중에서 금광사라고 표시된 동국사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고, 고은 시인이 출가한 곳이다.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재작년엔 동국사 뒷산에서 땅굴이 발견돼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김 작가는 그 땅굴과 동국사를 배경으로 하는 동화를 쓰고 있다. 제목은 <1935년에 태어난 아이>이다. 일본강점기와 현재를 넘나드는 판타지 동화이다. 현재 3분의 1쯤 진척된 동화는 일본인 아이와 조선인 아이의 우정을 담을 예정이다. 각 지역마다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작업이 활발하다.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 지역과 결부된 이야기라면 그것이 곧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 작가의 작업은 지역 문화원형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스토리텔링을 문화관광자원와 접목하면 우리 지역을 홍보하는 동시에 관광수입원으로서의 역할도 할 것이다. 군산에는 유무형의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산재해있다. 알려지지 않은 것은 발굴하고, 알려진 것에는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준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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