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제가 정성껏 편집한 '내가 사랑하는 군산'을 나눠 드리고 있습니다.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특별한 택시기사를 만났다. 손님들에게 인쇄물을 나눠주며 군산의 명소를 소개하는 이상우(41)씨. 그는 틈만 나면 군산의 변두리 마을과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정보를 얻고, 지명유래 관련 서적을 뒤적인다. 그에게는 길가의 나무 한 그루, 비석 하나도 소중한 연구 자료다. 택시에는 각종 인쇄물과 안내판으로 가득하다. 택시는 관광안내센터, 이씨는 센터장처럼 보이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아내는 쉬는 날이라도 편하게 살지,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힐난합니다. 생각해서 하는 얘기겠지만, 저는 다릅니다. 군산을 찾는 손님들은 한주옥, 복성루 등 소문난 맛 집을 가장 많이 찾는데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명소를 소개하는 일이 재미있어요. 모르던 지식도 배우니까 보람도 있고요."
개인택시 경력 10년 남짓인 이씨. 그의 첫 직장은 군산 개정병원이었다. 지금의 아내도 병원에서 만나 결혼했다. 신혼 시절 개정병원이 부도로 문을 닫자 아내는 어린이집을 운영했다. 그는 승합차 운전으로 아내를 도왔다. 우연한 기회에 택시사업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무엇을 애향심이라고 하는지조차 몰랐다고 털어놓는 이씨. 그는 "서비스 차원에서 시내 영화관 상영일정과 문화 전시회, 여행 정보 등을 제공하면서 군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며 수줍게 웃는다.
6~7년 전 군산 나운동에 개관한 롯데 시네마와 이씨의 특별한 택시기사 경력은 햇수를 같이한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고민하던 차에 롯데 시네마가 개관했고, 손님들이 영화프로를 궁금해 하는 데 착안하여 영화 상영시간표를 차에 부착하고 다녔던 것.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칭찬도 이어졌다. 이씨는 곧바로 월별 문화행사 일정과 신문, 잡지도 뒷좌석에 비치했다. 자부심과 긍지로 서비스하다 보니 인쇄물까지 만들게 되었다.
"군산은 군산 사람이 더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쇄물은 외지인보다 군산 시민에게 더 많이 드립니다. 외지인은 그때뿐이지만, 시민은 꼼꼼하게 읽더라고요. 토씨 하나까지 읽었다며 고마워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보람을 느끼고 마음도 즐겁습니다. 손님이 가자면 가기 싫은 곳도 가야 하는 게 택시 기사입니다. 그러나 자료를 얻으러 간다고 생각하면 사물이 달리 보이죠. 지역 향토사 공부에 가장 좋은 직업은 택시기사인 것 같아요."
이씨는 군산 여행 정보와 관련 책자를 구하다가 김중규 학예연구사를 만났다. 김 학예사는 향토사학자가 되고 싶다는 이씨에게 열심히 해보라며 <군산답사 여행의 길잡이><군산 역사 이야기> 등 자신이 펴낸 책과 참고 서적을 선물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책을 선물 받은 후 이씨의 택시는 독서실이 되었고, 공부방이 되었다. 특히 군산문화원에서 발행한 <군산의 지명유래>(이복웅)는 겉표지가 누덕누덕 해지도록 읽었고, 궁금한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지명이 전문 관심분야가 되었다. 관심을 두니까 뭔가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것.
"이 냥반들, 방송국에서 나온 모양이네!“
"기사님 안내를 받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다녀본 지역 명소나 마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였는지 궁금하군요. 그곳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시골 쪽을 얘기하시는 모양인데요. 하도 많아서···. 그럼 비행장 가는 길목의 '비석거리'와 옥구향교 부근 '감나무 가로수', 그리고 수령이 300년 이상으로 알려지는 '느티나무 고목'을 보기로 하죠. 출발하겠습니다." 비석거리는 돌아올 때 들리기로 하고, 옥구향교에 도착하니 감나무 가로수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사라진 모양이었다. 이씨는 몇 그루 남은 감나무 가지를 가리키며 "길 양편으로 감나무가 400m 정도 이어져 있었다"며 "이곳을 오가면서 가을 햇살에 붉게 익어가는 감들을 보면 풍성했고, 평소에도 운치가 있었는데 사라졌다"며 안타까워했다.
발길을 200m쯤 떨어진 '광월마을'로 돌렸다. 20여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는 마을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입구에는 수령이 500년도 더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고목이 수호신처럼 서 있고, 그늘에 놓인 평상에서는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니까, 할머니들이 "이 냥반들 방송국에서 나온 모양이네!"라며 반갑게 맞이한다. 노인들은 인공(한국전쟁) 때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고, 군대 가서도 전사한 젊은이가 한 명도 없는 복 받은 마을이라고 자랑한다. 마을의 다른 이름은 '한절마을', '대사마을', '감난골' 등이란다. 마을 안쪽에 큰 사찰이 있어서 '한절(寺)', '大寺'로, 감나무가 많아 '감난골'로 불리었다고. 장석순(89) 할머니는 "내가 열아홉에 맹경(만경)서 시집왔는디 절을 헐어낸 지 5년 되얐다고 허데"라고 말했다. 당시 어른들은 "한절로 놀러 가세!"라고 했으며, 지금도 기왓조각이 많이 발견된단다.
시간이 없어 비석거리는 다음으로 미루고 대신 옥구읍 선제리 오산마을에 들러 일제가 방공호로 파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에도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 발을 들여놓자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동굴 길이는 약 20m로 바닥에는 김칫독도 보이고, 수박덩이도 놓여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동굴을 아이스박스로 이용하고 있었다. 마을 아저씨는 "아침이면 입구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다"고 귀띔했다.
"공부를 더해서 향토 사학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
오는 길에 펼쳐본 인쇄물은 초등학생 공책(가로 15cm, 세로 21cm)처럼 얇지만, 군산시 면적과 인구, 역사, 행정구역, 군산 기네스에 등재된 기록, 군산의 산, 평야, 천(川), 주요 관광지, 문화재 및 박물관, 군산이 낳은 인물, 군산의 팔경(八景), 지정 보호수, 농·수 특산물 등 알찬 정보들이 수록돼 있었다. 자료를 옮겨온 도서(冊)와 언론사 및 관청 홈페이지도 서른 군데가 넘어 편집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하게 보는 홍보 인쇄물로 알았는데, 편집인도 있고, 콘텐츠 목록도 있고, 갖출 것은 다 갖춘 작은 책자군요. 얇지만, 내용도 알차고요···." "과찬이십니다. 우리 고장(군산)에 대해 관심과 애향심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너무 부족해요. 풍광이 좋으면서도 그동안 시민에게 외면당해왔던 명소를 찾아다니고, 사람들도 더 만나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보충해야 합니다. 공부를 10년~15년쯤 더해서 강의도 하고 책도 펴내는 향토 사학자가 되는 게 꿈이거든요."
자신이 운전하는 개인택시 손님들에게 군산을 소개하면서 나눠 주려고 '내가 사랑하는 군산'이란 소책자(표지까지 40쪽)를 펴낸 이상우 씨. 초판은 2007년 5월 4일 인쇄했고, 지난 4월 7일 제10판을 인쇄했단다. 비영리 목적으로 5년 만에 열 번째 인쇄라니, 인기도서가 따로 없었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씨는 "군산 시민과 다른 지역 관광객을 위해 직접 편집하였고, 인쇄는 '우리 사무기기'에서 무료로 해주었다"며 "글씨는 작지만, 여느 관광안내 책자보다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군산을 이해하고 배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진이 첨부되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