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찾아온 손님 ‘박대’하면 벌(罰) 받고, ‘박대’ 대접하면 복(福) 받는다!”
옛이야기는 옛이야기로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속담(俗談)도 아니고, 고사성어(故事成語)도 아니다. 갯벌이 잘 발달한 군산 연근해에서 잡히는 ‘박대’의 미각(味覺)이 유달리 뛰어나 회자하던 유행어다. 근원지는 그 옛날 생선의 메카 군산 째보선창. 그래서 그런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박대는 군산 시내에 살면서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생선이다. 눈이 점(點)처럼 작고 귀가 없는 생선이어서 다행이지 알아들었다면 얼마나 서운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부둣가에서 해풍에 꾸둑꾸둑하게 말린 박대는 ‘시집간 딸에게 박대를 선물하면 버릇이 되어 친정에 자주 들른다.’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만큼 맛이 좋으며 향미 또한 일품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군산의 마른 박대가 사랑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싱싱한 박대를 염수(鹽水)로 씻어내고 껍질을 벗겨 해풍에 말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박대가 군산을 대표하는 생선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도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얇고 납작한 어종으로 분류되는 박대, 광어, 서대, 넙치 가운데 밥반찬으로 박대를 으뜸으로 쳤으며, 그러한 전통이 요즘 어머니들에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박대를 ‘군산의 키워드’로 만들겠다!”며 직원들과 함께 땀 흘리는 (유) 아리울 수산 박금옥 대표(59)도 그중 한 사람.
“군산을 ‘박대의 도시’로 만들겠다!”
군산을 대표하는 생선 박대가 '사랑海 황금박대'란 브랜드로 식품안전관리기준(HACCP) 최첨단시스템을 갖춘 공장에서 가공되기 시작했다. 수산물가공 산업을 집중 육성하려는 군산시가 지역 특산품으로 박대 명품화를 지원하면서 (유)아리울수산이 지난 5월 군산시 성산면 여방리 오성산 아래(부지면적 4874㎡)에 지상 2층 건물(총면적 594㎡)로 가공공장을 오픈한 것. 주로 군산 연근해에서 잡히는 박대는 그동안 해망동 수산물센터와 전통 재래시장 상인들이 소량으로 손질해서 판매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최첨단시스템을 갖춘 공장에서 위생적으로 가공, 진공 포장되어 전국 소비자들을 찾아간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황금박대는 참박대, 훈제박대, 조미박대, 박대묵 등 다양한 제품으로 출시되며 전화(080-452-3333)와 인터넷(http://www.사랑해.org/)을 통해서도 판매되고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수산자원의 황금 보고(寶庫) 서해바다. “수심이 얕은 연근해 바닷속 모래와 갯벌에 서식하는 참서대과 어종 박대(20cm~35cm)는 맛이 담백하고 육질이 부드러우며 비린내가 없어 어린이와 치아가 부실한 노인이 드시기에 좋다”는 게 박 대표의 황금박대 예찬론이다. 그는 “박대는 영양가가 높으면서도 비만을 막아주는 건강식품”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박 대표는 공장을 지으면서 성산면 주민을 상대로 직원모집 공고를 내고 오픈과 함께 10여 명을 생산직 직원으로 고용했다. 직원이라야 모두 10명 남짓인 중소기업이니 100% 지역에서 고용한 셈. 지역 일자리창출은 물론 땀 흘리면서 얻는 행복을 함께 나누면 삶의 질 향상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서로 힘을 합하면 지역 특산품 개발과 경제적 이익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박 대표를 비롯한 직원 모두가 군산을 ‘박대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들의 손을 거쳐 유통되는 황금박대를 전국 각지의 미식가는 물론 세계인이 즐겨 먹는 식품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그래서 상표도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다는 뜻의 ‘사랑 海’로 정했으며, 회사 이름도 물의 순우리말 ‘아리’와 터전을 뜻하는 ‘울’의 합성어인 ‘아리울’을 앞에다 붙였다.
“포장도 어머니가 바느질하는 심정으로 정성을 다합니다.”
남편, 아들, 언니 등 일가족이 각자 주어진 분야에서 열심히 땀 흘리는 모습도 보기 드문 광경이다. 매니저인 남편은 건조작업과 마케팅을 도와준다. 스물다섯 살 아들은 세척에서 포장까지 모든 공정에 참여하면서 배달도 한다. 손맛이 좋기로 소문난 언니는 주방에서 ‘사랑 海’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으며 박 대표도 오전 10시가 되면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직원들과 함께 작업실로 향한다. "군산의 특산물인 박대를 엄선하여 위생적으로 가공해 반 건조 후 급랭(急冷), 진공 포장하는 과정에서 청결과 신선도가 유지된다"며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황금박대를 한 상자씩 가슴에 안고 돌아갈 수 있도록 품질향상과 마케팅에도 힘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박금옥 대표. 그는 “박대 껍질을 벗기는 작업에서 크기를 고르고, 포장할 때도 어머니가 등잔불 밑에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심정으로 정성을 다한다”며 공장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생선을 즐겨 먹었습니다. 특히 조기와 박대를 좋아했어요. 무슨 요리를 해도 고소하고 맛있잖아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시댁도 생선의 본고장 째보선창인 거예요. 째보선창 출신 신랑을 만난 거죠.(웃음) 음식솜씨 좋은 시어머니와 바닷가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생선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군산이 다른 항구도시에 비해 생선 가공 시설이 낙후되어 있음도 알게 됐어요. 항구도시로 위상도 있는데 속상했죠. 어떻게 하면 풍성했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타이밍이 맞아 박대 가공공장까지 오픈하게 되었네요.” 공장을 가동하고 3개월 가까이 지나는 동안, 하루도 거르는 날 없이 작은 양이라도 주문이 들어오고, 격려성 전화가 걸려와 보람을 느낀단다. 고등어, 삼치, 갈치 등도 가공하느냐고 묻는 전화도 자주 걸려온다고 한다. 회사 설립 단계에서 경상도와 제주도 지역 수산물 가공공장 10여 곳을 견학 다니면서 최첨단 시스템을 보고 놀랐으며, 낙후된 군산과 비교되어 속상했었다는 그의 표정에서 사명감과 애향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게 먹는 행복이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박대
“군산에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비린 맛이 전혀 없어서 아이와 시어른들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전국적인 식품으로 자리 잡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아요!”, “사랑해 황금박대 그 맛 대박이에요!” 등 황금박대를 맛본 고객들의 칭찬도 이어진다. 그중 30대 주부 백연경씨 소감을 들어본다. “평소 비린내 때문에 특별히 싱싱한 생선이 아니면 안 먹었었는데, ‘사랑해’ 조기와 박대를 먹고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너무나 싱싱하고 탱탱해서 맛도 일품이고, 비린내도 나지 않더라고요. 너무너무 맛있어요. 특히 초등학교 2학년, 6살 두 아들이 밥 먹을 때마다 박대를 달라고 하네요. 가뜩이나 입맛 없는 여름이라 걱정이었는데 아이들 밥 한 그릇 ‘뚝딱’이네요. 군산의 특산품을 군산 시장님이 믿고 추천하는 회사니까 더 믿음이 가는 것 같아요. 가시 바르기도 좋고, 구울 때 비린내가 아닌~~ 고소한 냄새, 정말 품격이 달라요!”
필자 역시 밥맛이 없거나 반찬 만들기 귀찮을 때, 무엇을 만들어 먹을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냉동실에 넣어둔 마른 박대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찹쌀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밥공기가 작게 느껴질 정도다.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서 굽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몸에 냉기가 돌고 쌀쌀한 기운이 느껴질 때 밥을 뜨거운 숭늉에 말아 알타리무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별미 중 별미. '이런 것이 먹는 행복이구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생선이나 채소나 싱싱해야 제 맛이 나는 법, 박대 역시 꾸들꾸들 잘 말라서 몸통이 뽀얘진 놈을 골라야 조리할 때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는다. 모든 생선이 수컷보다 암컷의 육질이 연하고 깊은 맛도 더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박대도 배에 선홍색 줄무늬가 있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알을 품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황금박대, 위생적이고 정밀한 심사 거쳐 탄생
아리울 수산은 수협공판장에서 공판이 끝남과 동시에 박대와 조기를 엄선하여 구매, 냉동 처리해서 필요에 따라 가공한다. 작업실에 들어가기 전 위생실에서 팔 부위까지 깨끗이 씻고, 살균 처리한 장화와 위생복으로 갈아입은 뒤 에어샤워기로 소독하는 절차는 필수. 박 대표는 “식품 안전사고는 작은 부주의에서 시작되고 회사 이미지까지 실추시킨다”며 “손만 깨끗이 씻어도 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고 귀띔했다. 작업실 온도는 신선도 유지와 변질 방지를 위해 18℃~22℃를 유지한다. 해동실에서 해동한 박대를 첨단 자동공정시설의 비늘제거기에 넣으면 박피기를 거치면서 비늘과 껍질이 벗겨지고 깨끗하게 손질되어 컨베이어를 타고 나온다. 이때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물에 세척해서 냉풍 건조실로 보낸다. 냉풍실로 옮긴 박대를 비닐 채반에 담아 냉풍에 반 건조하면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침샘을 자극하는 황금박대로 탄생한다.
냉풍 건조실에서 건조한 박대는 영하 40℃의 급랭실에서 24시간 급랭 후 CAS 전자저울에 달아 한 마리씩 진공 포장, 금속검출기를 통과 냉동 제품실에 보관했다가 박스 포장하여 판매한다. 등급은 길이와 중량을 참고해서 정한다. 왕대(35cm 이상, 290g 이상), 특대(35cm, 220g~280g), 대(33cm, 180g~210g), 중상(31cm, 150g~170g), 중(29cm, 120g~140g), 소(27cm, 90g~120g) 등 여섯 등급으로 나뉘며 80g 이하는 상품에서 제외된다. 조기는 대(23cm, 150g 이상), 중(22cm, 120g~140g), 소(20cm, 90g~110g) 등 세 등급으로 나뉜다. 조기 역시 80g 이하는 상품에서 제외된다.
“싱싱한 참조기도 ‘황금조기’란 브랜드로 가공해요!”
박금옥 대표는 “서해안에서 잡히는 수많은 어종 중 박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생선은 조기일 것”이라며 “우리 공장에서는 서해에서 잡히는 싱싱한 참조기도 ‘황금조기’란 브랜드로 가공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박대와 조기의 공통점은 모두 제사상에 오르며, 무슨 요리든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고, 굽거나 쪄먹어도 맛과 향미가 뛰어나다는 것. 머리 부분에 큰 귀돌(耳石)이 있어 석수어(石首魚)로도 불리는 조기는 서해안을 대표하는 생선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서해안을 끼고 있는 전라도와 충청도, 경기도 서부지역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제수용 생선으로 '조기'를 으뜸으로 쳤다. 어자원은 풍부했으나 어로장비와 저장 능력, 냉동기술 등은 빈약했던 1950~1960년대. 우리네 어머니들은 곡우(穀雨) 때 잡히는 1등품 조기 무더기에서 큰놈을 골라 살짝 얼간을 해서 해풍에 꾸둑꾸둑하게 말려 통풍이 잘되는 대청이나 곳간에 보관해두었다가 제삿날이나 명절 때 사용하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음력 3월이 되면 흑산도 근해에 2천 척이 넘는 조기잡이 배들이 몰려 만선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조기떼가 조류를 따라 북상하여 4월쯤에는 연평도에 파시가 섰다. 봄이면 군산 부둣가에도 고깃배들이 만선을 알리는 오색 깃발을 펄럭이며 조기 파시가 섰다. 공판장 주변 건조대에는 알이 통통한 굴비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째보선창에 가면 강아지들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소문도 그때 나온 유행어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조기는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국민적 생선으로 사랑받고 있다.
“봉사활동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아요!”
박대를 ‘군산의 키워드’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박금옥 대표. 그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업이 또 하나 있다.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인들 배식을 돕는 일이다. 생사가 걸린 대수술을 3번째 받던 날 병실 창밖을 내다보며 겸손과 만남, 나눔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회복 후 시작한 자원봉사 활동 20여 년. 땀을 흘리면서 행복을 느끼기에 이 또한 감사한단다. 불우소년 소녀 돕기에도 참여하고 있는 박 대표는 “봉사활동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봉사활동은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몸이 허락할 때까지 하려고 합니다. 제 행복을 찾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아들과 남편도 가끔 봉사활동에 나섭니다. 주변에서 칭찬할 때는 부끄러워요. 하는 일에 비해 받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건강이 좌우되기 때문이죠.”
자신보다 어렵고 불우한 이웃을 돕고, 일하면서 흘리는 땀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박금옥 대표. 그의 발길은 비가 내리는 오늘도 구 군산역 부근에 있는 군산 경로식당(무료급식소)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