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념회, 지난 11월 29일 풍원교회 카페
진솔함과 함께 톡톡 튀는 위트와 유머 눈길
교직 퇴직 후 글쓰기를 위해 준비한 흔적 돋보여
교육 공직자로 정년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외출’을 시도한 그녀의 글에서는 어떤 향기가 나고 있을까?
공립 단설유치원의 원장으로 재작년 정년퇴임한 박세원 씨의 첫 수필집은 기대한 바 그대로였다.
지난 11월 29일 오후 4시 풍원교회 카페에서 열렸던 『다시, 시작의 자리에서』 출판기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한 가운데 튀지 않았으나 갖출 건 다 갖춘 행사였다.
이날 강임준 시장과 황진 자원봉사센터 이사장, 윤신애 시의원과 나루문학 회원들, 교회 임직자와 작가의 지인 등이 자리를 꽉 채웠다.
강임준 시장은 “어렸을 때의 꿈이 ‘시인’이었는데, 철학과 문학을 하려는 나를 집에서 말렸다.”라고 회고하면서, “박세원 작가처럼 글 쓰는 직업을 가졌더라면 후회 없는 인생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라고 축하의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번 책은 1부 ‘함평 천지, 아버지의 노래’, 2부 ‘다시, 시작의 자리에서’, 3부 ‘여름날, 붉은 그리움이 피다’, 4부 ‘제2의 인생, 빛을 배우다’ 등 주제별로 모두 40편에 달하는 삶의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다.
○ 정년 이후, 작가로써의 삶은 준비
정년 이후의 삶을 위해 그림과 사진을 배우고, 그 자산으로 새로운 작가의 길에 입문하였기에 작품마다 진솔한 마음이 묻어났다.
「물속에서 얼마나 놀았는지 퉁퉁 불은 손이 쭈글쭈글 부챗살이 되어 있고 뱃가죽은 등짝에 달라붙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렁에 올려 둔 보리밥 한 덩이 아른거려 발걸음을 재촉한다.」〈그 여름, 영수천에서〉
「잠자리에 들면 마당에서 한 솥 끓여내던 비릿한 멜젓 냄새가 몽글몽글 올라왔다. 벌떡 일어나 식은 밥 한 숟가락을 퍼 담고 김치 몇 조각 길게 찢어 왕갈비 뜯듯이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매콤하고 진한 김칫국물까지 비벼 먹고 나서야 위장도 만족한 듯 달래졌다.」〈엄마의 손맛, 멜젓 한 숟가락〉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진솔함은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그 안에서 넘쳐나는 위트와 유머에 점점 매료되어 갔다.
○ 순간 순간의 위트와 유우머로 공감 형성
숨기고 싶었던 찰나의 순간을 초보 작가인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슬쩍 웃음 짓게 만들고 있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발등을 밟지 않으려고 어거지로 뒤로 물러서는 순간, 봉긋한 내 가슴이 상대방의 가슴에 슬쩍 스쳤다. 그때 후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누님, 그거 헛뽕이지요?”
순간 포복절도하며 자리에서 물러 나왔다. 교직이라는 문화에서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로 인해 오랜만에 시원하게 웃어보는 밤이었다.」〈서울의 밤, 귤 한 상자〉
시골 학교 교사들의 서울 나들이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추억을 작품으로 만들어 낸 일부분의 내용이다.
지역 관광버스 회사를 돕기 위해 낡은 시골 버스를 대절했는데, 서울에 와서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준비한 먹을 것을 싸 들고 여관방을 찾아 헤매던 이야기, 젊은 교사들이 노래방에 갔던 에피소드가 줄거리이다.
○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장점
솔직 담백하면서도 자신의 가슴속 이야기를 은근슬쩍 드러내 놓는 일, 독자들이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게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내 차의 범칙금 용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저녁 늦게 귀가해 남편의 레이저 눈빛을 피하느라 싱크대 그릇들을 요란하게 닦았다.
“그렇게 과속할 때 돈은 아깝고 목숨은 아깝지 않아?”라고 한마디 들었다.
“그러게, 내가 정신이 나갔나 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돈은 아깝고 목숨 아깝다는 생각은 왜 못 해봤을까.」〈인생의 규정 속도〉
「운전 경력 35년 동안 자동차 두 대를 안방처럼 깔끔하게 관리해주던 남편, 언제 자동차보험 만기가 되었는지, 재산세를 언제 내는지, 전기세·수도요금이 얼마인지 지금도 잘 모른다. 그야말로 날라리 마누라가 든든한 집사를 둔 덕이었다.」〈삼식이라도 좋으니〉
박세원이라는 여성 교직자가 처음 교단에 서고 성장하기까지, 결혼 40년 동안 애틋하게 외조해 온 남편과의 밀당에도 눈길이 갔다.
○ 삶 속에서 건져올린 깨달음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의 진리는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묻혀 있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여기에서는 누구나 통용되는 불문율이 있었다. 어머니뻘 되는 어르신에게도 호칭은 ‘언니’, ‘오라버니’였다.
어른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어르신’,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했다. 언니, 동생 하는 호칭이 훨씬 정감 있게 들렸다.
잘 다듬어진 몸매도, 화려한 의상도 모두가 젊게 보이고 싶은 노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춤추는 인생, 라인댄서〉
누구나 빛나는 시절이 있었으며, 이른바 ‘어르신’들 또한 그런 시대를 걸어와 오늘에 다다랐다.
나이 든 어른으로서가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걸어가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은 마음이 읽혀졌다.
‘처음’이란 건 왠지 낯설다.
모든 과정이 생소하기에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처음 책을 내는 게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세원 작가는 퇴직 이후 이 책을 내기 위해 그림과 사진을 배우는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 이 책은 내 삶의 ‘영양주사’이며, ‘적금통장’
미리 준비하고 열심히 달려온 교직자로서의 성실했던 한 평생을 바라보는 것 같다.
“이 책은 나에게 주는 ‘영양주사’이며, 나의 ‘적금통장’이며, 행복한 날을 위한 과정입니다.”라고 소회를 말하는 그녀에게서 새벽까지 자판을 두드렸던 시간의 두께가 묻어났다.
“결혼식 ‘신부 입장’에 이어 두 번째로 떨린다.”는 작가는 “한 줄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새벽까지 원고를 쓰다가 지쳐 잠이 든 아내에게 ‘밥 달라’는 소리도 못 했다”고 너스레를 떨던 남편 서은식 시의원은 “이제 글 다 썼으면 제발 밥 좀 주라.”라고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축하의 말을 더했다.
조심스럽지만 때론 번뜩이는 문체로, 어느 땐 덤덤하게 말하다가 반전의 결말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솜씨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첫 작품집이면서 자신이 살아온 세상의 소리를 담담하게 그려낸 수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