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물을 볼 때마다 경외심이 생긴다. 큰 바위의 오목한 틈에서 자라난 소나무, 아주 좁은 시멘트 틈을 뚫고 피어난 꽃들. 자주 만나는 풍경이지만 늘 기특하고 대견해 멈춰 서서 말을 건다.
“애썼구나. 이 좁은 틈에서, 친구도 없이 홀로.”
그렇게 말을 건네고는 사진에 담아, 더 오래 기억하려 한다. 오늘은 그런 식물을 눈여겨봐 준 또 한 사람을 떠올린다. 어느 꽃집 앞, 좁은 틈에서 피어난 붉은 꽃. 가까이 보니 백일홍이었다. 꽃이 핀 자리가 위태해보였다. 주인이 드나드는 출입문 바로 앞. 문을 활짝 열면 문에 치어 몇 번이고 꺾였을 자리였다. 그런데도 괜찮다는 듯, 백일홍은 홀로 당당히 서 있었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으니 꽃집 주인이 문을 열고 나와 환환 얼굴로 예쁘죠? 말을 건다.
“네, 그런데 이 백일홍이 있어 문 열고 닫을 때 불편하지 않으셨어요?”
그러자 주인은 직접 문을 열어 보였다. 문을 활짝 열면 꽃대가 닿았다.
“그래서 더 이상은 열지 않았죠. 문을 열 때마다 조심조심, 딱 이만큼만 열었어요.”
주인은 사람 하나가 드나들 만큼만 열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 이 꽃 아래쪽 꽃대궁 좀 보세요. 많이 굵어졌죠?”
그가 가리킨 곳은 백일홍이 대리석 좁은 틈을 벗어나 뻗어 나온 꽃대 부분이었다. 좁은 틈에서는 더 이상 줄기를 키울 수 없으니, 그 지점에서야 비로소 숨을 트듯 줄기를 확장했을 것이다.
‘꽃집 주인이니 당연히 꽃을 귀히 여기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꽃집에서 문을 활짝 열어야 할 상황이 한두 번이었을까. 매주 서울 도매시장에서 사온 꽃을 들여놓을 때는 문을 크게 열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무심코 발길에 채일 위기도 있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일홍은 여전히 그 자리에 당당했다. 그것은 주인만의 마음 씀씀이가 아니라, 이곳을 드나드는 손님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덕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백일 동안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백일홍. 백일 동안 사람들은 이 꽃을 보며 잠시 발걸음을 멈출 것이다. 기도하듯, 마음을 기울이며 꽃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백일홍 또한, 그들을 기쁘게 맞아주었을 것이다. 사람이나 꽃이나 시절인연처럼 잠시 만나 반겼을 것이나 서로가 모르게 받은 위로가 있어 그 시간을 조금 더 밝게 걸어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