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소피아 성당의 그리스도 모자이크
중세미술의 두 번째 시간 ‘비잔틴 미술’이다. 이 시기의 미술은 미술사에서 암흑기로 불린다. 고대 미술에서 진보적 발전을 거듭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 드러난 시기이다.
고대 시대의 미술은 창의적인 면모를 보이며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었다. 그리스와 로마는 황금 비율을 통해 완벽한 아름다운 인체를 조각하는 것에 집중 했었다. 이것은 발전을 거듭하며 인간과 일상의 실용성이 녹아있는 미술로 변화하며 중세 미술의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예술적 변화의 흐름은 충분히 좋은 바탕 이였지만, 오로지 ‘크리스트교’라는 종교에 집중 되어있던 중세는 확실히 미술이 정체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고대 미술도 신의 세계가 있었고, 중세 미술 역시 신의 세계가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중세에서 만나는 신을 표현한 미술은 신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제한된 세계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이 중세 미술을 이해하는 중요점이다.
중세 ‘비잔틴 미술(Byzantine art)’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긴 기원후 330년경부터 이 도시가 멸망한 1453년까지의 동부 지방 예술을 말한다. 당시 지형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었는데, 여기에서 동부지방인 동로마 지역이 비잔틴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비잔틴’이란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뜻에서 시작 하였다. 건축, 조각, 화화에 이르는 비잔틴 미술의 복잡한 형식들을 콘스탄티누스황제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동로마에 기독교 문화(크리스트교)를 정착시키며 비잔틴 미술을 발전 시켰다.
기독교와 천주교처럼 예수를 섬기는 종교를 ‘크리스트교’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양상이 강해지면서 예술의 전반적인 흐름은 신 중심의 성서의 내용과 의미 전달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렇듯 종교적 가치가 중심축을 이루다보니 성서의 주된 내용들은 기록하는 역할은 잘 되어지는 반면, 일상의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발전들은 멈춰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발전이 멈춰질 지라도 그동안 쌓아왔던 예술의 흔적은 다음 걸어갈 예술 형태의 토대가 된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의 전통위에 동부지방 미술을 홍합하게 됨으로 크게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 동서양의 융합된 미술이 탄생하게 된다.
‘크리스트교’안의 성서의 내용을 빛나게 만들어 준 비잔틴 미술의 세 가지 특징을 알아보자.
첫 번째는 유리조각을 이용하여 빛을 활용함으로 건물 내부를 화려하게 만든 모자이크이다. 두 번째는 목판에 새겨진 성모나 성가족 회화의 ‘성상화’들이 있다. 세 번째는 ‘삼각 궁륭’을 통한 구조적 형식으로 인하여 거대하고 확 트인 내부 중앙의 구조를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비잔틴 미술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미술품 세 가지를 찾아보자.
‘빛은 신과 작품을 빛나게 한다.’라고 말하듯이 첫 번째의 비잔틴 모자이크 예술은 그야말로 이 시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5~6세기 무렵 세계 역사 속에 유명세를 남긴 수많은 모자이크 중 몇 작품은 터키의 비잔티움과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제작 되었다.
대부분의 주제는 역시 종교와 관련이 깊었으며, 예수는 초월적 신의 존재 또는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로써 표현 되었다. 이 당시의 모자이크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신의 광명을 대신하기에 만족할 만한 재료의 조건을 갖추었고, 이를 통해 묘사된 장면들은 웅장하고 화려하여 위엄 있는 형태를 이루었다.
위 작품이 모자이크를 이용한 대표작중 하나이다.
‘산 비탈레 성당’의 주교 막시미아누스는 금으로 된 십자가를 들고 있는데 정 가운데 자리 잡은 인물을 주목해 보자. 이는 이 교회의 우두머리 사제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이다. 황제는 거의 모든 부분이 금색으로 묘사되어 있다. 금색 바탕에, 금관을 쓰고, 금빛 그릇에 빵이 있으며 그의 머리 위 후광까지도 금색으로 되어있다. 이는 그가 교회의 성자임을 상징하며 어깨의 견장은 세속의 권위를 말한다. 권위의 표현은 더 나아가 옆에 있는 한 인물의 발을 밟고 있는 행위를 통해 막시미아누스의 권력적 힘을 가늠 해 볼 수 있다.
비잔틴 미술의 두 번째 큰 특징은 ‘성상화’이다. 블라디미르의 ‘성모’ 성상화는 나무판에 그려진 작은 그림이다. 어린 성자와 성모의 모습인 이 작품 역시 거룩함을 상징하는 후광이 있으며, 정면을 응시함으로 긴장된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인간의 연약함은 이 그림에 신적 믿음을 불어 넣으며 전쟁에서도 승리를 얻기 위해 직접 전장에 지니고 갔다고 하는데, 훗날 우상숭배라 하여 금지 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 비잔틴 미술의 대표는 건축물이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웅장한 교회를 건설하고자 마음먹고 독특한 돔 형태의 건축물을 구상하였는데 그것이 ‘아야 소피아 대성당’이다.
‘아야 소피아’는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 구조는 축구장의 3배가 넘는 크기이다. 지난 호에 실린 로마의 직사각형 건축 ‘바실리카’틀 위에 중앙부에 ‘삼각 궁륭’의 원리인 거대한 아치 네 개를 연결되었으며, 40여개의 창이 돔의 하단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 웅장함은 최고점을 장식해 냈다. 이렇듯 연합된 구조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비잔틴 미술의 총집합체가 이곳 ‘아야 소피아’ 성당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다.
고대 로마의 거대한 스케일은 신성을 중시한 동방의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만나며, 신을 더욱 거룩하고 위엄 있는 존재로써의 자리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술품으로 단계를 거듭해 나갔다.
이번 시간에는 여기까지 중세미술 두 번째 비잔틴 미술을 마무리 하며, 차후 중세 미술의 세 번째 주자 로마네스크 미술로 바톤을 넘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