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타난 인간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문어는 팔 하나를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피부의 색감, 질감, 형태 모두 쉽게 주변 환경에 따라 변하는 변신술에도 능했다. 해조류처럼 위장하느라 가볍게 흐느적거리며 떠다니거나 몸을 돌처럼 뭉쳐 바닥에 박힐 줄 알았다. 팔을 두 다리처럼 세우고 걸었다. 사냥을 할 때는 전략적이고 지능적이었다. 2천 개의 빨판은 제각각 자유롭게 움직였다. 천적인 파자마상어의 공격을 받아 팔 하나를 잃었다. 잃었으나 얼마 후에 그 자리엔 새 팔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떼를 지어 다니는 작은 물고기들에게 팔을 가볍게 흔들며 장난스럽게 반응했다. 유머러스했다. 또다시 상어의 공격을 받았을 때는 속절없이 당하지 않고 상어 등 위에서 상어를 제압했다. 막 다른 길에서는 모든 빨판을 이용해 온갖 패각류를 뒤집어 입고 동글동글해질 줄 알았다. 어느덧 암컷 문어는 짝짓기를 마치고 새끼들이 부화하기를 기다려 가만히 생을 마쳤다. 그때서야 제 몸을 순순히 잔인한 상어에게 내주었다. 이 모든 시간을 생의 목적을 잃어 힘들었던 다큐멘터리감독 크레이그포스터와 함께 했고 그들은 함께 교감했다. 크레이그포스터에게 문어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가르쳐 준 선생이었다.
노란다리갈매기가 줄지어 선 해변에 가만히 앉아보았다. 나를 보고 날아오르지 않고 유유히 노니는 갈매기를 보며 나의 문어 선생님을 떠올렸다. 크레이그가 문어와 교감할 때의 희열을 생각하면 그가 짜릿하다고 한 기분이 무얼지 아주 조금 짐작이 되었다. 그에게 문어가 선생이 되어준 것처럼 내게도 얼마나 많은 식물과 곤충과 또 새들이 선생이었던가를 떠올렸다. 내가 그들에게 배운 생에 대한 열정과 도전, 또 위로가 얼마였던가. 나는 부진아 같은 학생이었을지 몰라도 더디 가도 나의 선생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한 번 더 깨닫게 해준 나의 문어 선생님을 위하여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