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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종구의 독서칼럼: 책과 사람 그리고 세상 이야기 - 장류진. <달까지 가자>
글 : 공종구 / kong@kunsan.ac.kr
2024.12.30 13:39:1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가운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작품이 있다.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조차 가뭇없지만, 그 제목은 아주 매력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그 제목은 우리네 인생의 이면과 속살에 대한 묵직한 통찰이나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일에 대해 정확하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너무나도 함부로들 말들, 특히 뒷담화를 많이 하고들 한다. 물론,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들 함부로 말하는 것이리라. 잘 알게 되면 그렇게 쉽게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젠더 갈등, 빈부 갈등과 더불어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을 보이는 갈등이 하나 있다. 바로 세대 갈등이다. 기원전 196년의 이집트 로제타석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고 못되먹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보면 세대 갈등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대 갈등은 ‘꼰대’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차원 자체가 단순해 보이지가 않아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결혼 문제를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만을 봐도 그러한 판단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목하 대한민국 청춘남녀들에게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그러한 문제는 자연스레 한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협하는 인구절벽의 문제와 연동되어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지 오래이다. 대한민국의 청춘남녀들이 결혼과 출산의 선택에 소극적인 데는 당연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를 하나의 낱말로 압축해서 정리한다면? ‘불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좀 더 행복한 생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예전의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현재의 청춘남녀들은 요모조모 꼼꼼하게 따져본 후 그러한 기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무턱대고 결혼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이만교의 소설 제목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 대한민국의 청춘남녀들은 결혼에 대한 편익 비용을 꼼꼼하게 분석한 후 ‘얻게 되는 이익’보다는 ‘치러야 되는 손해’가 더 클 수도 있다는 계산 때문에 부모나 가족 친지들의 채근이나 관습에 떠밀려 섣불리 결혼을 선택하려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적령기를 훌쩍 넘긴 자녀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에 부모나 주변의 가족 친지들이 결혼을 채근하거나 재촉할 때 동원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살림은 살아가면서 하나둘 늘려나가면 되는 거란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상태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몇이냐 되겠느냐?’, ‘서로 맞지 않은 부분 또한 하나둘씩 맞춰나가며 살다 보면 다 살게 되어 있다. 우리들 때는 다 그렇게들 결혼을 해서 이렇게들 잘 살고 있다’. 그러면서 인륜지대사인 결혼마저도 옴니암니 따져가면서 계산의 대상으로 삼으려드는 청춘들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타박 한마디씩을 덧붙이곤 한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의 그러한 채근이나 재촉의 논리는 자신들이 살던 삶의 환경이나 조건들과 현재 대한민국의 청춘들이 처한 그것들과는 천양지차의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그러한 세대 간의 조건이나 상황들의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더불어 젊은 세대들의 처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들이 살았던 환경이나 조건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치관이나 결혼관을 일방적으로 권고하거나 주입하려고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결혼에 대한 기성 세대들의 가치관은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결혼을 화두로 세대 간 갈등을 이야기하는 먼 길을 에둘러 온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 글이 소환하고자 하는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를 세대 간의 차이라는 해석의 코드로 읽어보려고 하는 의도에서이다 “흙수저 여성 청년 3인의 코인열차 탑승기”(한영인, ‘아폴로 프로젝트, AGAIN!’, ‘달까지 가자’, 창비, 2021, 350면) 서사로 압축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가치관 충돌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볼 수도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허영과 위선을 들어내고 냉철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진단하자면, 인간은 이기적⸱경제적 동물의 속성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눈에 보이는 신’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지닌 돈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불법이나 편법이 아닌 정상적인 방법임을 전제한다면, 대한민국의 청춘들이 주식이나 비트 코인 등에 투자하는 행위 자체에 윤리나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여 크게 문제 삼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그러한 투자 행위를 바라보는 기성 세대들의 일반적인 시각은 그다지 호의적이거나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젊은이들이 한창 나이에 성실하게 노력해서 하나둘 일구어나가면 좋을 텐데 벌써 한탕주의의 요행에 눈을 떠서 걱정이라고. 젊은이들이라고 성실한 노력을 통해서 차근차근 자산을 불려나가는 것이 안전하고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걸 모르겠는가? 하지만 금수저는커녕 은수저도 아닌 흙수저로 태어나 아빠 찬스는 언감생심인데다 세습 자본주의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물매가 갈수록 가팔라지는 최근 현실에서 성실한 개미 전략을 통해서는 하류 인생을 벗어날 길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간파해버린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그러한 전략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사회학자 김홍중은 대한민국 2⸳30대 청년 세대의 정체성을 ‘생존주의 세대’로 명명한 바 있다. 김홍중은 생존주의 세대의 특성을, “IMF 외환위기 이후 전개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화 과정에서 전면화된 불확실한 미래와 가혹한 경쟁 상황이 자신들에게 제기하는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응전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투 속에서 형성된 집합심리의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홍중,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세대’, ‘사회학적 파상력’, 문학동네, 2016, 255-264면) 한마디로 생존경쟁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낙오하거나 탈락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 자체가 생의 주요한 과제가 된 상황에서 생존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세대가 바로 생존주의 세대 실존의 문법이다. 각자도생의 정글이 지배하는 실존의 조건과 환경의 구속을 받는 생존주의 세대의 지배적인 정동과 심리는 ‘불안’이다. 아니 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직장과 직업, 인간관계, 연봉, 가족 등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실존의 근거와 근저를 형성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들에겐 하나도 안정된 것이 거의 없다. 이러한 정체성을 지닌 생존주의 세대에게 모든 것은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바 ‘액체의 유동성’의 상태를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애 주기별 서사의 합리적인 설계가 가능했던 기성세대들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그게 거의 불가능하거나 큰 의미가 없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이 아들 기우(최우식)에게 처연한 눈빛으로 ‘아들아! 너에게는 다 계획이 있구나? 할 때의 바로 그 계획이 이들에게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희망고문에 불과할 뿐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 작품에서 핵심 모티프로 기능하는 은상, 다해, 지송 세 여성 인물의 가상화폐 이더리움의 투자 행위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할 때라야 이해와 공감의 지평을 확보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마론 제과의 입사 동기로 시절 인연을 맺은 세 사람은 모두 10평도 채 안 되는 원룸에서 기거하고 있다. 자신들의 인생을 “앞으로 전진하는 방향 키를 아무리 눌러도 발에 모래주머니 단 것처럼 무겁게 천천히 나가는”(57면)게임의 상황에다 빗대는 이들에게 불안은, “여태껏 쌓은 건 지나가는 누군가의 콧김 같은 것에도 쉽게 부스러져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구태여 직시하지 않을 뿐 이미 잘 알고 있었다”(95면)라는 다해의 자조와 한탄이 극명하게 압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일용할 양식과도 같다. 맏언니인 은상 언니의 이더리움 투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한다. 은상 언니의 제안에 의해 다해와 지송이 순차적으로 투자의 열차에 탑승한 결과 은상 언니는 ‘33억을 벌어 성수동의 5층짜리 꼬마빌딩의 건물주가 되었고, 나는 3억 2천을 벌었고 지송이는 2억 4천을 버는’ 해피 엔딩으로 서사는 종결된다.   

 

기성세대들이 흔히 착각하는 일이 하나 있다. 자신들은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면서 청년들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고 충조평판을 서슴지 않는 일! 하지만 그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점 한 가지! 자신들이 겪었던 청년 시절과 목하 대만민국의 청춘들이 건너고 있는 청년 시절과는 심연과도 같은 엄청난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 기성세대들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이미 다 겪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별다른 주저 없이 간섭하고 참견한다. 그러니까 ‘라떼’라지! 라떼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어? 그런 의미에서 ‘라떼나 한 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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