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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 문인화가 김수나 씨를 만나다
글 : 이소암 / isa6246@hanmail.net
2024.12.30 11:48:51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현대인에게는 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어떤 이는 전공에 맞춰 직업을 선택했지만 현재의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을 하는 경우도 많다. 다행하게도 어떤 이는 자신이 즐기는 것을 전공, 직업으로 삼아 오직 한 길을 향해 가는 이도 있다. 이에 굳이 따진다면 삶의 만족도나 행복도는 후자가 높지 않을까. 김수나 씨를 말하고자 함이다.

 

행복은 유리 상자

 

그는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군산으로 이사했다.

그는 유복한 가정환경 덕택에 유치원 교육은 물론이고 피아노와 무용까지 배우게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어머니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기도 했지만 첫째에 대한 어머니의 과잉 사랑이었다. 이런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그에게 무한한 사랑만을 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간암을 선고받았다. 3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더 이상 치료가 힘드셨는지 퇴원하시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 앞에 와 계셨다. 그는 아프지만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그때 그 아버지의 표정을 지금도 기억한다. 

 


 

자신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저의 사춘기는 동시에 시작되었어요. 사실 사춘기였는지 아니면 아버지와의 이별이 힘들어서였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그 시절 나를 되짚어보면 말을 잃은 아이였죠. 친구들도 많이 걱정할 정도였어요. 4학년 때였어요. 선생님이 서예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셨어요. 그 당시 말 대신 나의 유일한 표현방법은 글쓰기였어요. 서예도 그때 시작했는데 말없이 붓으로 글을 쓰는 게 유일하게 느끼는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는 꾸준히 고등학교에서도 서예를 했다. 그 당시 서예를 하는 친구들이 많이 없었다. 그야말로 고등학교는 대학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서예는 취미생활처럼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89년도 전국에서 처음 아니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서예과가 생겼다. 그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예과로 진학했다. 그 시기, 서예를 중요시하는 중국도 일본도 사사를 받을 뿐 대학에 학사 과정이 없었다. 한국 대학에 서예과가 생긴 이후 중국에서도 대학에 서예과가 생겼지만 지금은 현재 경기대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과되었다.

 


 

자신만의 길을 닦다

 

그는 대학에 가서 더 깊이 있는 서예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서예는 단순히 손으로 글씨만 쓰는 것이 아니라 서예가 역사를 기록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며 철학이 담긴 분야라는 것을 배웠다. 문인화가 서예의 범주라는 사실도 대학에서 배웠다. 대학에 가기 전에 글씨를 쓰며 마음을 표현했다면, 대학 진학 후에는 문인화(매.난.국.죽)로 더 많은 표현을 하게 되었다.

“서예와 문인화는 書如其人(서여기인),畫如其人(화여기인)이라고 해요. 글씨와 그림에 그 사람의 마음이 많이 담겨 그 사람과 같다는 뜻이죠.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 글씨는 모두 다르지요. 글씨를 쓰면 성격이나 마음이 많이 담기는데 이렇듯 글씨의 힘, 그림의 힘은 크죠. 서예를 전공으로 공부하다 보니 서예가 더 좋아졌고 매력적인 분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이렇게 좋아하는 분야를 즐겁게 공부하다 보니 현재 직업으로까지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바로 들어갔으나 결혼 생활과 함께 잠깐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혼해서 공부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공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멈추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었다.

 


 

꾸준함이 재능을 앞선다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이기는 것은 없는 듯해요. 사실 제가 서예를 좋아해서 꾸준히 하고 있지만 그 당시 저는 재주가 있는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조금 느리다고 해야 할까요?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좋아하다 보니 잘하는 것도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어요.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지금까지 43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예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르친 기간이 올해로 32년째가 되어간다. 가르치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지만 제일 안타까운 것은 잠깐 글을 쓰고 재능이 없다며 포기하시는 분들이었다.

“꾸준함이 곧 재능인데 말이죠...”

 

안정된 한 호흡이 한 획을 낳고

 

“남편 직업을 따라 군산에 2년 동안 살게 되면서 서실에 오신 분이 있어요. 지금은 대구로 다시 가셨지만 인연을 끊지 않고 7년째 대구에서 군산으로 서예공부를 하러 오십니다.”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면 평생 붓과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붓글씨는 제가 경험해 본 바로는 정신적 건강에 많은 도움이 돼요. 벼루에 맑은 물을 넣고 먹을 갈다 보면 호흡이 차분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느린 호흡이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로 인해 정신적인 쉼의 상태가 되어 정신 건강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행복의 붓길을 따라

 

그는 2016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저는 문인화가로 활동 중이어서 조금 욕심을 내자면 문인화, 하면 생각나는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아니 저의 그림을 기억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 제 이름 대신 ‘서예’라고 부르셨어요. 그랬듯이 그냥 저를 생각하면 저절로 붓글씨가 떠오르는 사람, 서예와 문인화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행복을 전하는 붓 하나로써 충분히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그의 어린시절처럼 그의 미소는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 같다. 그러나 때로는 그 미소가 담담한 수묵화를 닮은 듯도 하다. 모쪼록 그의 바람대로 붓 하나로 행복한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 기억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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