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팥, 몇 톨의 팥알에 불과했습니다.
어머니의 솥 단지 안에서 끓어 오르던 정다운 팥고물!
그 깊은 세월의 맛을 다시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성당의 아들 조성용은 약관 29세에 (주)대두식품을 설립했다. 천생 효자인 그는 늘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다.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빵을 만들었지요. 내 식구 입에 들어가는 음식처럼, 끼니마다 밥상을 차리는 것처럼, 팥을 삶고 반죽하고 그것들을 손수 빚으셨습니다.”
앙금이 듬뿍 들어간 이성당의 ‘단밭빵’은 군산의 다른 이름이다. 길게 늘어선 내장객들과 노란 빵 봉지를 들고 돌아다니는 관광객들로 상징되는 군산의 모습. 이런 모습은 대두식품이 있음으로 해서 이뤄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대두식품을 만들고 40여년 만에 대한민국 굴지의 식품기업으로 성장시킨 데에는 조성용 회장의 준비성과 성실성이 바탕이 되었다.
“처음엔 무척 어려웠지요. 진심은 닿고, 열정은 통한다는 말처럼 창업 13년만인 1996년 ‘연간 앙금 생산 1만 톤 돌파’라는 작은 기적을 만들었지요. 이제는 연간 3만톤이라는 생산량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대두식품의 앙금은 국내 총 앙금 소요량의 70%를 담당하고 있을 만큼 건실한 위치에 섰다. 탄탄한 기술력이 입증되고, ‘앙금’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까지 뻗어 나가고 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만든 기업이 세계를 향하고 있으나 그의 고향 군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진해져 갔다. 그의 서민적인 삶과 조용한 리더십은 군산사람들의 가슴 속에 시나브로 스며들었다.
어머니의 손 맛, 세상과 함께 공유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깊은 손맛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맛 좋은 앙금’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앙금을 대중화 할 수 있을까.”
수많은 고민과 고민,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닥쳐왔던 난관을 뚫고 시작된 게 바로 (주)대두식품이다.
가업을 잇기 위하여 공부를 마치고 고향 군산에 돌아 온 청년 조성용. 그가 도전한 대두식품이 처음부터 잘나간 것은 아니다. 모진 시행 착오를 겪었으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늘 날 앙금과 배기, 쌀가루를 생산하여 제과와 제빵, 제병업계에 맞춤형으로 공급해주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대두식품.
“고객이 우리 제품을 믹싱해서 쓰는 게 아니라, 업체의 사용 규격에 맞추어 생산할 수 없을까 구상하던 시절이었어요. 분업화에 대비해서 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앙금제품을 주문제로 하면 어떨까 구체적으로 구상했었죠.”
앙금을 주문제로 하자는 생각을 굳히고 일본에서 기계를 도입하려고 했다. 그 당시 북해도부터 규슈까지 돌아다니면서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공장들을 다 돌아봤다.
“견학을 갔는데 그들은 원하는 생산 라인은 보여주지 않고 화과자 라인을 주로 보여주더라고요. 핵심은 보여주지 않는 교묘한 상술이랄까, 조금은 섭섭했지만 정말 많은 공부가 됐죠.”
그는 좌절하지 않고 어머니의 손 맛을 재현하기 위해 계속 뛰었다.
그런 노력에 따라 당도, 점도, 색상 등 체계적으로 제품을 규격화하면서 고객과 대화할 수 있는 '앙금 규격'을 만든 기업 ‘대두식품’으로 성장시켰다.
오늘날에는 ‘앙금, 배기, 쌀가루’를 브랜드로 생산하고 있으며, 각종 농산물(딸기, 파인애플, 사과, 오렌지, 유자, 호박, 고구마, 쑥, 녹차, 흑임자 등)을 이용하여 200여 종 이상의 다양한 앙금 주문품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특급 소재, 쌀가루 전문 브랜드를 더했고, '쉽고(Easy)','단순하고(Simple)', 간편하게(Convenient)' 조리 가능한 제품 ‘냉동 생지’가 가세했다.
또한 남녀노소가 사랑하는 만주, 화과자, 떡과 빵 등 한국형 맞춤 간식이 가득 차려진 프리미엄 디저트 브랜드 ‘화과방’도 고객들을 찾아가고 있다.
설립 40주년 맞은 (주)대두식품
(주)대두식품의 브랜드 철학은 미미신선(美味新鮮)이다. 맛있고 안전한 식품을 고객에게 제공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음식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진실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늘 날까지 흔들림 없이 정진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 믿습니다.”
이 회사의 심볼마크는 ‘너른 대지 위에 갓 돋아나는 곡물의 싹’, 그 모습을 형상화했다. 자연을 닮은 마음으로, 자연과 더불어 무한한 성장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았다.
또한 ‘대한민국 앙금의 역사’로 이름 지은 브랜드 가치로 대두식품은 늘 우리곁을 지켜 갈 것이다.
40주년을 넘어 100년 기업을 지향하는 대두식품의 성장세는 계속될 것이다. 고객의 니즈에 맞는 제품 개발과 생산, 공급 체계를 확실히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등 업체에 납품을 할 때 반죽을 마무리해서 냉동한 상태에서 납품을 하면 현장에서는 굽기만 하면 되는 게 우리 제품들이지요. 일반적인 유명 메이커는 대부분 내용물까지 넣어서 가져 오지만 대두식품에서는 고객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내용물과 속을 따로 따로 납품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시대상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입맛도 변하여 간다. 기업 또한 시대에 맞게 변해야 산다. 향토기업 또한 능숙하게 변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게 함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조 회장이 있기에 대두식품의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100년 동안 살아남으려면 또 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외국에 나가보면 100년 이상 된 기업이나 가게들을 볼 수가 있는데,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춰서 변신을 거듭하였거든요. 대두식품도 힘들었던 과정들을 뒤로 하고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보 봐요.”
조성용 제25대 군산상공회의소 회장
군산에서 가업과 기업을 일으키고 군산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조성용 회장. 어느 땐 우직한 면도 보이지만 그는 스펀지를 닮았다. 그의 잔잔한 미소를 마주하게 된다면, 누군들 어떠랴 금방 푹 빠져들게 될 터이니.
그는 지난 2024년 2월 제25대 군산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했다. 상의 의원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다. 지역의 향토기업 대표가 상공인 단체를 이끌게 된 건 매우 잘된 일이다.
고향 군산에 대한 애정과 향토의식, 그리고 지역과 함께 살려는 그의 생각과 실천 의지 때문일까. 때론 박절하기가 겨울 북풍같은 이 지역민들도 ‘진짜’ 군산사람으로 그를 손꼽고 있다.
(주)대두식품으로 대한민국의 식품업계를 대표하면서 이제는 이 지역 상공인들을 이끄는 ‘군산의 어른’으로 성장했으니 군산 사회에 낭보이다.
“지역 경제가 어렵지만 새로운 기업들도 들어서고 있으니 어렵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상공회의소 또한 6개 경제단체 협의체 구성은 물론 기업 민원처리 사전 컨설팅 전문가 위촉, 산업발전·동반 성장을 위한 군산시와 상공회의소, 군산지역 산업단지 업무 협약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는 기업가이지만 어렵고 힘든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소리 없는 봉사와 나눔, 선행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역민들의 애끓는 마음을 골목 정담으로 듣고난 뒤 이를 직접 해소하곤 했다.
“군산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거든요. 군산의 공업단지에 이차전지 기업들은 물론이지만 기업들의 입주가 이어지고 있는데 시민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입주 기업들에게 부탁을 했지요. 업체 입주에 맞춰 적어도 현수막 20개 정도는 시내에 걸어달라고 말이죠. 그래야 지역민들이 작은 희망이나마 갖게 될 게 아니겠어요”
매주 월, 목요일에 상공회의소에 나와 직원들과 격의없는 회의를 하고, 현안을 듣고, 함께 점심을 나누는 그를 보면 이른 시일 안에 상공인 단체에도 그의 미소가 퍼져 나가리라.
어느 땐 형님 리더십으로, 또 어느 땐 불굴의 사업 의지로 리드해 나가는 조성용 회장은 지역이 중소 상공인 회원을 늘려 나갈 계획도 갖고 있다. 그가 있으니 상공회의소 또한 한 걸음 더 발전하게 될 것이다.
군산과 함께, 서민적인 조성용 회장
누가 봐도 보통 서민처럼 살아가는 조 회장과 가족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이다.
향토 기업인이면서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서민적인 삶의 모습은 지역민들에게 교훈이 되고 가르침이 되었다.
조성용 회장과 가족들이 이성당 신관 2층에서 모닝셋트로 아침을 하는 모습은 낯선 일이 아니다. 지금도 이성당 건물에 거주하는 참 군산사람이다.
서울 출장을 갈 때면 조 회장은 새벽 5시에 문을 여는 명산동 골목식당을 찾곤 한다. 주로 ‘미역국’을 즐기는데,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따뜻한 미역국을 생각했을까.
한국 제과·제빵·제병업계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기업가로 자리 잡기까지는 아내 김현주 여사(이성당 4대 사업주)의 잔소리가 특효였다.
“벌써 40여 년 전 이야기이지만 신혼 때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영업을 해야 하는 지역 제과업소의 직원들과 오후 5시경부터 술자리가 이어졌어요. 최소한 두 분 정도를 만나곤 했는데, 그 분들과 삽겹살에 소주를 많이 마셨지요. 그 때나 지금이나 꼭 집에 돌아와서 잤는데 ‘왜 이렇게 많이 마셨느냐’라고 구박을 많이 받았죠.”
아내는 남편의 건강이 늘 염려되었다. 조 회장은 ‘어쩔 수 없었노라’고 강변하기도 했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소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잔소리가 자장가로 들릴 수밖에.
불자이셨던 어머니와 장모님이 맺어준 인연
이성당의 맏아들로 태어나 10여 년 동안 전주북중과 전주고, 한양대에서 공부를 마친 청년 조성용은 당연하게 군산으로 돌아왔다. 가업을 일으켜야 하는 의무감이 충만했다.
이성당의 3대 사업주였던 어머니(오남례)의 봉사와 나눔, 소리 없는 선행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는 인간적으로 성숙되어 갔다. 그리고 경영인으로써 튼튼하게 기초를 닦아갔다.
청년 조성용에게는 내조가 필요했다. 가정을 꾸리는 건 어려웠기에 불자이셨던 어머니께서 나섰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졌다. 총각 조성용은 지금의 아내 김현주 대표와 딱 9일 만에 결혼했다.
“무척 추웠던 1984년 1월이었어요. 어머니는 가까운 흥천사에 다니셨는데, 지금의 아내(김현주 여사)의 어머니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어요. 두 분이 그 절에 갔다오셔서 ‘이번 달 안에 식을 올려야 한다’라는 거였어요. 절에서 ‘음력 설날을 지나면 3년 동안은 결혼하면 안된다’ 라고 했었나 봐요.”
불자이셨던 두 분 어머님 말씀은 곧 법이었다. 그 날 이후 9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 다음 날이 ‘설날’이어서 하룻만에 돌아왔다.
“느닷없는 속전속결 결혼식이었으나 아내의 대학 졸업식 날에는 양가 식구들이 대거 축하해주는 좋은 일도 생기더라고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자 그는 한 단계 더 도약을 생각했다. 지역과 함께하는 삶, 국가에 이바지하는 삶,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행보가 이어졌다.
그 이후 제과업의 선진지 일본을 찾아 이성당과 대두식품을 한 단계 끌어올릴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왼손이 하는 걸 오른 손이 모르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출입문 옆 자리를 선뜻 내주던 조 회장 어머님의 선행은 군산 지역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 ‘소리없는 선행’은 그의 삶의 기준이 되었다. ‘왼손이 하는 걸 오른 손이 모르게’, 그 기준은 늘 지켜졌다.
지역 상공인들을 위한 봉사를 위하여 군산상공회의소 회장 취임과 함께 거액의 특별후원금을 내놓은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드러내기를 극구 사양하고 있으나 사회복지 공동모금이나 지역의 수많은 단체들을 위하여 매년 거액을 기부하고 있으며, 어려운 이웃과 단체들을 위한 나눔에 현물 협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이 게 바로 향토기업인 조성용의 진면목이다.
대두식품 40년은 조성용이란 이름 앞에 성실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님을 의미한다. 그의 이름 앞에 ‘성실’이라는 수식어를 새겨 놓아도 좋지 않을까.
‘혼, 열정, 미래’ 라는 세 가지 철학을 이루어 나가려는 (주)대두식품이 세계를 향하여 성장해 나가고 있다.
“100년 동안 살아남으려면 시대에 맞춰 방향을 잡고 흐름에 맞춰 나가야 하지요. 또 변해가는 입맛에 적응해야 합니다. ‘함께 간다’는 생각은 물론이고요.”
지금까지 봉사와 헌신으로 지역 사회에 봉사하여 왔던 것처럼 대두식품은 100년 기업을 위하여 도전하며 긴 시간 이 지역과 함께 할 것이다.
스스로를 내보이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주변을 돌보아 주는 조 회장의 선행을, 스스로 돋보이는 걸 삼가 하는 게 몸에 밴 그의 겸손을, 월명동, 명산동 골목 식당을 찾아다니는 그의 섬김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지역사회가 (주)대두식품의 놀라운 경영 성과로 경사를 맞을 날이 머지않았다. 군산상공회의소 의원들 또한 지역 상생의 길에 함께하기로 했으니 조 회장의 리더십과 함께 어려운 군산 사회에 단비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