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서, 파피루스(종이 대신 사용한 식물), 39.8×550cm, B.C.1275년경, 영국 대영박물관
지난 10월 선사시대 미술을 서두로 역사를 따라가 보려한다. 선사시대를 지나 고대 미술에는 이집트,그리스, 로마 미술이 있다.
이 가운데 오늘은 이집트 미술을 소개하려 한다. 이집트 미술(B.C.3,000~B.C. 525)은 르네상스 미술과 현대 미술 그리고 그리스, 로마 미술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지형은 흥망을 넘나든다. 요새(要塞)와 같은 한국을 탐하지 않던 나라가 있었던가.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이집트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번영하는 가운데 이러한 풍요 그 이면에는 강을 벗어나면 사막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끝은 바다이다. 이러한 지형 속에서 안전하게 3천년의 문화가 이어져갔다.
이렇듯 외침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위치였음에도 그들의 미술은 ‘죽음’과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집트의 미술의 주요한 핵심은 ‘영혼불멸’이다.
회화, 조각, 건축등 모든 미술 영역에서 죽음에 관한 소재는 동일하게 반영된다. 이 모든 중심에는 왕(파라오)의 힘이 절대적이며, 그들의 영생과 환생을 위해 이집트 예술이 태어나게 되었다.
‘특이점이 온다’(레이 커즈와일)에 나오는 통계를 보면 고대 이집트인의 평균 수명은 25세로 기록되어 있는데, 제국의 풍요를 누려보기도 전에 끝을 맞이한 그들이 곧 다가올 죽음을 삶으로 되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혹자는 이집트 미술이 죽음과 밀접한 이유는 풍요한 나일강과 상반되는 죽음의 땅 사막을 보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도 전한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B.C.2575~B.C.2465
풍요와 죽음의 극단적 배치속에서 ‘무덤 속 미술’이 시작된 이집트 미술의 특징을 살펴보자.
이집트 미술의 가장 큰 핵심은 ‘정면성의 원리’이다. ‘본질을 그려야 영혼이 길을 잃지 않고 다시 찾아와 내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것에 해당하는 조형적 규칙을 정하게 된 것이다.
그들의 미술품을 살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생각했던 본질의 형태는 머리는 측면, 눈은 정면, 상반신도 정면, 배꼽은 측면, 팔다리는 측면, 양손은 모두 나오며 방향성이 없고, 발은 엄지발가락이 보이도록하며 인체 각 부분을 조합하여 한 화면에서 다양한 각도와 크기를 보여준다.
◀헤지레의 초상, 헤지레 묘실의 나무로 된 문의 일부, B.C.2778~2723, 이집트 카이로박물관
▶늪지에서의 새 사냥, 회벽에 채색, 82×98cm, B.C.1390, 네바문 무덤 출처
‘헤지레의 초상’은 이집트 미술의 초기에 시작된 것이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위에 설명된 조형적 특징 그대로 ‘정면성의 원리’의 법칙을 충실히 이행한 좋은 예이다.
또 ‘늪지에서의 새 사냥’은 사람의 크기를 주목하여보자. 이들에게는 계급의 서열 또한 매우 중요시하여 주목의 대상일수록 크게 그려서 신분에 차별을 뒀다고 한다. 사냥꾼의 모습 역시 ‘헤지레의 초상’과 같은 방법으로 인체가 표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이집트 화가들은 솜씨가 부족한 것일까? 동식물의 묘사를 잘 살펴보면 묘사가 사실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내세를 위해 본질적 묘사를 적용한 대상이 아니라면, 동식물의 묘사는 종과 이름까지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고 하니, 그 당시 화가의 솜씨를 짐작 할 수 있다. 이와같이 ‘늪지에서의 새 사냥’은 규칙에 따라 양식화된 표현과 사실적 묘사가 결합된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연못이 있는 정원, 네바문 무덤의 벽화
정면성의 원리를 표현한 또 다른 작품이다. 풍경을 바라본 화가의 시점은 다르지만 정면성 법칙을 충실하게 이행하여 사물의 모습을 온전하게 표현 하려 하였다.
시간이 흘러 이집트의 미술에도 변화의 시기가 왔다. ‘태양신 아톤’만을 숭배하는 왕이 즉위하면서 화풍에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집트 제18왕조 ‘아케나텐’의 흉상, B.C.1336
▶‘아케나텐’의 아내 ‘네페르티티’ 왕비, B.C.1360
B.C.1336년 아케나텐(이집트 파라오)이 즉위하며 그간 경직 되었던 이집트의 미술은 서민들이 그려왔던 풍속화와 같이 인간미가 있는 자연스러운 형태로 변모했다. 한눈에 보아도 인물의 특성을 살린 자연스러운 조형물임을 느낄 수가 있다.
이집트인들은 생과 죽음의 관계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동경과 공포가 있었을까. 왕이 영생하는 불멸의 존재로 바꾸기 위해 어떤 희생의 피가 있었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한줌의 흙이 되기 싫은 몸부림은 훗날 이집트 미술이라는 화려하고 거대한 유물을 남겼다. 그러나 사후 세계의 그 어떤 안락함을 알지도 못한채 그 파라오들은 아직도 ‘죽음의 잠’ 가운데 들숨과 멀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