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신’이 강림해도 견디게 하소서!
“한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에서 이번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 제목에서부터 약간은 도발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책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패스트 패션에 맞서는 제로웨이스트의 생활’을 부제로 내세우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저자 이소연은 의류 산업, 특히 저렴한 가격을 미끼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대량 폐기를 유발하는 패스트 패션의 폐해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양한 통계 자료와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소연은 패션 리더를 선망하며 성장했다고 한다. 더불어 성장 과정에서는 패션이니 스타일이니 하는 말들을 입에 달고 지내다시피 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매일 옷을 샀다고는 말할 순 없어도, 적어도 매일 옷을 사려고 시도했을 정도”(30면)로 옷 구입에 열성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이소연은 1,5달러짜리 오리털 패딩에서 에피파니의 섬광과도 같은 각성을 경험한 이후 5년째 새 옷을 사지 않고 지낸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옷 구입에 그렇게도 열정적으로 몰입하던 이소연을 그렇게 변화하게 한 것일까? 그 핵심에는 바로 패스트 패션 산업의 아이러니가 가로놓여 있다.
이제까지 나는 패스트 패션 산업의 폐해나 문제에 대해 막연한 짐작 차원에서이기는 하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이 베트남이나 방글라데시, 미얀마나 캄보디아와 같은 개발도상 국가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옷을 과잉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임금의 문제.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불공정 무역의 문제. 옷의 대량 생산이나 폐기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환경 오염이나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 나의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단순했던가를 생생하게 깨달았다. 이 책은 그 동안 막연한 짐작 차원에서만 알고 있었던 나의 단편적인 지식이나 사실들이 실상은 빙산의 일각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부분이고 실제로는 훨씬 심각하고 복잡하다는 점을 구체적인 통계 자료나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환경부 환경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국내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섬유폐기물은 2010년 112만여 톤에서 2018년 451만여 톤으로 8년 만에 약 네 배 증가했다”고 한다.(35면) 어마무시한 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기후 변화와 적지 않은 관련이 있는 ‘탄소 배출량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데 지구 전역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약 10퍼센트가 패션 분야에서 나온다고 한다. 게다가 합성섬유의 한 종류인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배출되는 온실가스와 맞먹는다’(36-37면)고 하니 그 또한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약자 또는 자연에 대한 착취를 토대로 성장”(140면)한 패스트 패션 산업으로 인해 야기되는 온갖 환경오염이나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말고도 불공정 무역으로 인한 인권 침해의 사례는 충격적이다. 구체적으로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8층짜리 라나플라자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로 최소 1138명이 죽고 2500여 명이 다친 사건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건물이 붕괴되기 전날부터 그 건물에는 이미 여러 곳에서 붕괴의 전조나 징후가 나나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윤에 눈이 먼 공장장들과 건물주들은 노동자들을 협박하여 재봉틀 앞에 앉혔다고 한다.’(141-143면)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한 사고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그 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 노둥자들의 시급은 고작 260원이었다고 한다. 옥스팜인터내셔널의 보고서는 더욱 충격적이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의류 노동자가 평생 일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을 방글라데시 의류업자는 단 4일 안에 벌어들일 수 있다”(195-196면)는 사실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옷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은 편인 ‘옷보’이다. 은퇴하기 전 용돈의 거의 대부분은 책과 옷을 구입하는 데 들어갔다. 은퇴 이후 책은 도서관에 구입 신청 후 대출해서 반납하는 패턴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반드시 사야만 되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책값이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옷을 구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예전같진 않지만 여전히 지금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은 충동 구매에 의해 구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신경이 쓰이는 편이다. 예전에는 필요한 옷이 있을 경우 백화점이나 해당 브랜드의 매장에 직접 들러서 구입을 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쇼핑몰에 들러 구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구입 패턴을 통해 나의 개인적인 패션 취향이나 선호하는 스타일을 정확하게 파악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들에서는 인터넷 작업에 들어가기만 하면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나의 충동 구매를 유혹하거나 자극하는 물건들을 디스플레이한다. 물론 번번히 그 유혹에 넘어가서 충동 구매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전혀 없지만은 않다. 그 과정에서 나는 구입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소비의 객체가 되어 그 유혹을 견디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 유혹을 견디다 못해 구매를 할 경우 내가 소비를 해야 우리 경제도 잘 돌아간다는 말로 나의 행위를 합리화하곤 했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지닌 다양한 욕망 가운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인정욕망’은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킨 중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 사람이 정체성의 근간이 되기도 하는 인정 욕망 가운데 스타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패선은 한 사람이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 있는 스타일을 추구하기 위해 옷을 구입하고 멋을 내고 하는 행위는 전혀 문제삼을 만한 일은 아니다. 잘못된 일은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소비가 생산을 생산한다’는 명제처럼 옷을 구입하는 행위가 한 나라의 경제가 선순환하고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과유불급. 모든 게 지나치면 부족한 만 못하는 법. “2020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매년 5600만 톤의 옷이 팔리고 있고”(39면), “80억 인구가 매년 옷 800억 벌을 구매하는 기이한 현상”(169면)이 발생하는 사이 “패스트패션 회사 CEO는 세계 5위까지 부호의 자리를 지키며 배를 불리고,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은 착취당하다 죽음에 이르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섬유폐기물은 지구를 덮치고”(206면)있는 현실을 과연 바람직하다거나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달라진 세상을 보고 싶다면 스스로 먼저 변화하라!” 그러면 그 변화는 언제? 바로 지금(right now)!,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하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지구라는 행성을 위해, ‘생각은 지구적 차원에서, 실천은 개인적 차원에서! 사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빅데이터를 통해 나의 패션 취향이나 선호를 완벽한 수준에서 파악하고 있는 온라인 패션 쇼핑몰의 알고리즘 편향에 의한 강렬한 유혹을 내가 과연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그래도 이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는 지름신이 강림하사 충동 구매를 자극하고 유혹하더라도 마지막 결재 키를 누르기 전에 한번쯤, 적어도 한번쯤은 합리적 소비나 윤리적 소비의 관점에서 고민은 해보리라는 다짐을.
올 여름의 역대급 폭염이나 폭우 패턴이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갈수록 기후 위기의 양상은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션 패러다임이다”(295면)라는 저자의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로 이 글을 매조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