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저마다의 색깔이 있고, 나름의 향기가 있다.
만나면 반갑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헤어짐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 ‘그저그런(?)’ 사람도 있다. 이 깊어가는 가을 앞에 선 그대여,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시집 ‘안부’가 나왔다.
서천에서 나서 군산에서 공부하고 정착했다가 당진에서 시(詩)와 함께 살아 온 김선순 시인의 첫 시집이다. 군산과의 짙은 인연으로 이 근처에 올 때마다 가슴이 뛴다는 그녀. 그녀의 시집 속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살면서 우여곡절을 겪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그녀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에 견줄만하다. ‘안부’를 묻는 그녀의 첫 시집에는 잔잔한 것 같지만 격랑이 쳤던 시인의 인생 길이 가득하다. 열심히 살다가, 잊어버리고 살다가 그러다가 문득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아득했던 날들을 떠올린 것이다.
청춘의 시련, 아팠지만 내색도 안하던 그녀
평온해 보였던 그녀의 청춘은 시련, 그리고 좌절의 연속이었다.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항상 벼랑 끝 선택을 해야했다.
속절없이 겉치장에 집착하고, 화려한 네온싸인같은 삶을 좇았던 낭만의 시대 1990년대. 평범한 아가씨였던 그녀였지만 스스로 생계를 짊어지고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해야 했다.
너무 힘들었다. 힘이 부칠 땐 쉬고 싶고, 머물고 싶기도 했으나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일찍부터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던 그녀의 가슴은 메말라갔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당당하게 세상과 부딪쳤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9남매를 키우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려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던 스무살 청춘 여성. 가끔씩 입을 굳게 다물 때면 뭔가 사연이 있어보이기도 했으나 그녀는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생의 그늘진 부분이 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손꼽을 정도였다. 늘 주변을 챙기면서 화사하게 웃기를 좋아했던 그녀였기에 인기 만점이었다.
가장 빛나는 순간 순간을 만끽하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의연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서울 생활을 했고, 다시 복학하는 고된 삶이 이어졌다.
막연하게 ‘아픔이 있겠거니’ 짐작은 했으나 가까웠던 친구들조차 그 깊이까지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늦깍이 학사모를 썼고 여러 해가 지난 다음 아이들을 가르치는 논술학원의 원장이 되었다.
가끔씩 방황하고 싶을 때 그녀의 곁에는 ‘수맥’이라는 글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 앞 막걸리집과 골목 술집을 몰려다니면서 한 잔 술에 시나부랭이들을 안주삼아 읊었던 ‘동류의식’을 가진 이들의 모임이었다.
한 때 ‘수맥’은 그녀에겐 유일무이한 안식처이자 도피처였다. 그 안에서 문학은 보이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해라’ 하지 않았으나 시 공부는 숙명과도 같았다.
그녀가 오늘까지 갈지자로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한 시대를 같이 부대끼며 견뎌 온 힘의 칠할은 바로 ‘수맥 동인’이지 않을까.
삶의 유일한 통로, 그것은 시(詩)와 함께 가는 길
‘안부’를 묻는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볼 때마다 ‘참, 안생겼다’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그녀. 지금부터 김선순 시인의 삶과 문학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지난 시간의 흔적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곰곰 삭혀보는 일. 아리고 슬펐던 날들이여 이젠 안녕하고 바람에 날려보내는 일.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들에게 한 땀씩 의미를 부여하는 일.
대학때부터 어렵고 힘들었던 습작 과정을 거쳤기에 시인은 그런 작업들에 익숙할 터였다.
어쩌면 “즐겁고 즐거워라 힘든 작업이여, 고통이여, 시련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않을터이니. 너는 한 줄 시어로 다시 태어나라.”라고 툭툭 말을 건넸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안부’의 작품들이다.
쉽게 읽혀지는 시는 읽어보면 안다. 그러나 읽기 쉬운 시가 쓸 때에는 얼마만한 고통과 인내를 원하는 지 써본 사람은 다 안다. 시인으로써의 마지막 로망이 바로 쉽게 읽혀지는 시를 쓰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안부를 묻는 시인의 눈은 “어느 날에는 이승의 빛나는 순간이었다가, 어느 순간 이 세상과 저 세상으로 나뉘어져 버린 현실”을 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래서 ‘안부’를 묻는 건 아닐까.
슬픔은 언제나 시의 정점에 서 있다.
이별은 마찬가지로 슬픔의 곁에 우뚝 서 있으며, 눈물과 그리움은 그의 사촌격이다. 걱정과 위로, 그리고 아쉬움 또한 그 테두리에 있다.
시인은 한 권의 시집에서 여러가지를 말하지만 결국 하나의 주제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김선순이 시인으로써 첫발을 내디뎠으니 ‘살아왔던 대로’ 모범적인 작품을 만들어가리라.
그러나 시인이여. 발칙한 상상을 하시라.
감히 한마디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그렇고 그런 작품은 넘치고 또 넘쳐난다. 그러니 됨됨이와 어울리지 않더라도, 말이 되지 않더라도 원고지 위에서 신나게 ‘삐끼삐끼’ 춤을 추기를 권한다.
그래서 인간 김선순이 쓴 시가 아니라 시인 김선순이 쓴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이 시대의 시인, 작가들에게 우뚝 서길 바란다.
그리하여 긴 시간 동안 한 여자로써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상처에서 온전히 치유되시라.
‘나의 결별, 나의 시, 나의 문학’
어렵고 힘든 날들이여 가라. 청춘의 무게를 담아냈던 날들에게 시인은 묻는다.
“깊고 깊은 어둠이 있었기에 네가 돋보였으며. 내가 가고자 하던 길이 아니었음에도 당신이 있기에 나는 그 어둠 속의 별이 되어 너에게 다가갔노라”라고 말이다.
시인은 말과 단어의 행간에 숨어 “나를 보내느니 이제부터 영혼의 사치는 안녕이다. 이제부터 ‘나의 결별, 나의 시, 나의 문학’으로 활짝 꽃피게 할터이니 두어발치쯤 뒤에서 지켜보시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를 만든 건 앞만보고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며, 숨 한 번 쉬지 않고 달려 온 날들이며, 어떻든 걸어야만 했던 날들이며, 쉼 없이 걷기를 멈출 수 없었던 날들이며, 삶의 정수리를 내달리던 날들이다”
시인이 ‘나를 만든 지난 날’에서 말하듯이 “참 많이 애썼다. 잘 견뎌줘서 고맙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첫 번 째 시집이 지난 날들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 그리움 등으로 채워지고 있음은 지극히 자연스런 과정이다. 시인과 삶을 함께해 온 가족들과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 애정의 결과물들이라고 보기에 그렇다.
‘안부’를 통하여 시인이 알게 모르게 인연을 맺어왔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으니 다음엔 시인의 작품으로 시인 스스로가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작품은 손 끝으로 써지는 게 아니라 가슴 속에서 익어가는 것이다. 그 말을 가슴 한 편에 새겨 놓으시고.
김 시인이 “그 때는 알 수 없었지만 무모했고, 실수했고, 안타까웠던 것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라고 했던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에서와 같이 삶이란 견뎌내면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서로에게 알게 하자.
그래서 ‘안부’가 따뜻하게 읽혔듯이 다음 시집은 더 상큼하게 다가서기를 서로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