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100년 전 인류의 생활보다 훨씬 바쁘게 산다고들 합니다. 보다 빠르고, 값 싸고, 화려한 것을 차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라고. 그래서 한 편에선 슬로우 라이프를 얘기하기도 하고 또 한 쪽에선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빨라져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 쪽 얘기를 들으면 이 쪽 얘기가 맞는 거 같고, 저 쪽 말을 들으면 그 쪽이 맞는 거 같아서, 그러지 않아도 복잡한 머리 더욱 어지럽게 합니다.
치과 얘기를 하고자 하는 데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 번 달에는 치과 치료를 하는 데 있어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 지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충치나 치주질환으로 아파하시는 환자분을 만나게 되면, 치과의사는 우선 눈으로 보고, 두드려도 보고, 흔들어도 보고, 엑스레이도 찍어 봅니다. 그리고 발치할 것인 지 아니면 치료해서 보존할 것인지에 대해 치과의사 스스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어금니 하나에 충치가 생겼는데 씹는 면의 1/10 정도 크기에 한정돼 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충치를 삭제하고 때우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충치가 커져서 8/10 정도 크기가 돼있고, 치아는 흔들리고, 뿌리엔 염증이 있다면 역시 고민할 필요 없이 발치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만나게 되는 충치들은 4/10 크기도 있고 6/10 크기도 있지요. 이런 경우 정말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 치아를 간단히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심을 것인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뽑지 않고 보존하는 쪽으로 치료 방향을 정할 것인가? 대부분의 치과의사는 보존적 치료를 하도록 학교에서 교육받았고 그렇게 진료하려고 노력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를 깎아서 금니를 씌우는 것보다는 충치 있는 부분만 제거하고 때우는 방향, 이를 뽑고 임플란트를 심는 것보다는 신경치료를 하고 이를 씌우는 쪽으로 치료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지요.
스스로의 고민 끝에 보존하는 쪽으로 치료 방향을 정했다면 다음에 해야 할 일이 그 어금니의 주인인 환자분에게 현재 치아 상태를 설명하고 앞으로의 치료 방향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환자분이 본인의 치아를 보존하기위해 열심히 치료 받겠다고 하시는 경우도 있고, 직업상 자주 치과에 나올 수가 없으니 발치해달라고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고민의 깊이가 깊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상태가 나쁜 치아일수록 아무리 치과의사가 열심히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제 기능을 못하고 발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간단한 고장의 차를 수리하는 것과 폐차 직전의 차를 수리하는 것은 그 결과에서도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치료결과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되면 좋지만 그러지 못하고 대여섯 번 치과에 오셔서 치료받았는데 결국 발치해야하는 상황이 된다면 환자분도 치과의사도 맘이 편치 않겠지요.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받아들이시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게 마련입니다. 상황이 열악한 치아를 보존하기 위한 치료가 발치하고 임플란트 식립하는 것보다 설명이 복잡하고 진료시간도 많이 걸리게 됩니다. 반대로 치아 상태가 안 좋아서 뽑고 임플란트 해야 한다고 설명하기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치료도 간단합니다. 결과적으로 돈을 쉽게 버는 치과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치과들이 가는 길이 확연히 나뉘어가고 서로 대립하게 되는 상황이 안타까워서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 내가 다니는 치과는 이 하나 치료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치과의사가 내 치아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얼마만큼 하고 있는 지를 판단해 보시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