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수련원에서 월명호수를 따라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소나무 사이로 파아란 가을 하늘이 청명하다. 초록에 지친 잎들이 조금씩 물들어가는 초가을, 길에 붙은 이정표가 보인다. 솔꼬지길이다. 군산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한번씩은 들어봤을 솔꼬지길이다. 소나무가 유난히 많은 산자락을 따라 숲길을 따라 걷노라면 그 끝에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 나타나는데 그 마을을 예로부터 사람들은 솔꼬지 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옛 문헌에 의하면 소룡동이란 이름도 바로 그 솔꼬지 마을의 솔꼬지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소룡동(小龍洞)의 소룡이란 명칭이 솔이란 이름을 나태내기 위해 음을 빌어온 한자라는 것이다. 또 다른 조선시대 문헌에 의하면 솔꼬지 마을은 이전에 소록리(小鹿里)로도 불렸다고 하니, 소나무를 뜻하는 솔을 표현하기 위해 소룡 혹은 소록이란 한자를 빌어썼다고 하는 말이다. 점방산 자락 소나무 우거진 숲이 황해의 물결과 만나는 곳에 자리했을 솔꼬지 마을의 옛 풍경이 눈에 그려진다.
서해가 바라보이는 솔꼬지 풍경
일제 강점기 시절, 바다를 메워 간척하기 이전 이곳은 황해의 물결과 금강이 만나는 어귀였다. 그곳이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사람들이 모여살던 작은 바닷가 마을 솔꼬지였다. 지금은 솔꼬지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 군산 클라이밍센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멀리 서해 바다와 함께 섬들이 보인다. 금강물이 바다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하구의 끝자락을 따라 해안선이 은적사 쪽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후 군산수산전문대학이 오래도록 자리해 있던 지역엔 지금 전북 외국어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지금은 70줄 나이에 들어선 등산객 한 분은 솔꼬지길을 따라 수산고등전문학교(고등학교, 전문학교 과정의 5년제)를 다니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전한다.
“1971년부터 76년까지 그 길을 따라 학교에 가곤 했어요. 당시에 저는 군산상고 인근의 석치마을에서 자취를 했는데요. 수원지 방죽을 따라 주먹만한 자갈돌이 깔린 소롯길로 등하교를 했습니다. 그다지 길이 좋지 않던 수원지 방죽길을 따라 산길을 돌아 내려가면 학교가 있는 솔꼬지 마을이 나왔어요. 그 숲길을 따라 학교에 다니던 때가 벌써 50여년이 되었네요.”
담양전씨의 재실 긍구재(肯構齋)
그 솔꼬지 마을에 남아 있는 담양 전씨의 재실 긍구재(肯構齋)는 담양 전씨의 선조들을 모신 점방산 자락 아래 자리해 있다. 서경에서 따왔다는 재실의 이름 긍구재는 "아버지가 집을 짓고 집터를 닦아놓았는데 그 아들이 서까래를 올리고 집을 짓지 않으면 되겠는가"라는 서경의 글귀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선대의 유업을 후손들이 계승발전시키겠다는 뜻이 담긴 이름인 것이다. 긍구재와 반대쪽의 산자락에는 제주 고씨의 문충공파의 재실이 있어 예로부터 푸른 바다의 물결이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의 힘을 느끼게 한다. 긍구재의 사적비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옛 사람들이 이곳을 부르던 이름인데, 해가 지는 마을이란 '석양동(夕陽洞)'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 그 솔꼬지 길을 따라 지금은 아파트와 공단이 들어선 거대한 소룡동의 모습을 본다. 이 가을, 용이 꿈틀거리듯 비상하는 활력을 되찾을 기상이 서린 솔꼬지의 근원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