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마광장에서 본 팔마산
높은 건물 위에 올라가 군산의 풍경을 내려다 본다. 끝없이 펼쳐진 도시의 건축물 사이로 허파처럼 푸른 숨을 들이 쉬고 있는 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팔마산(八馬山)이다. 43.7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오래토록 군산을 지켜온 관문이자 그 관문을 지켜온 산이기도 하다. 여덟 마리의 말이 도열한 모양을 닮은 산이란 팔마산(八馬山)의 이름처럼 팔마산은 도심 속에서 역동적인 산으로 자리해 있다.
팔마산 남쪽의 군산고등학교 자리는 일제 강점기에 팔마국민학교가 있던 자리였다. 정신대로 끌려가 종군위안부 생활을 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왔던 어느 노인이 증언 속에서 그곳은 트럭으로 실려가기 전 마지막 집결지였다. 해방후 없어진 팔마국민학교는 군산사범학교로 나중에 군산대학교와 교대부속초등학교, 그리고 군산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교육이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그곳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산이 팔마산이다.
군산의 오랜 관문 팔마광장
팔마재로 알려진 고개(八馬峙)는 옛 군산의 시가지로 들어가는 언덕이었다. 지금도 팔마광장은 사통팔달 터미널과 구시장 그리고 조촌동으로 향하는 동부시장쪽 길 등으로 이어지는 오거리가 나 있지만 그곳은 오래전 군산을 대표하는 쌀시장이 서던 팔마재 쌀시장이 있던 곳이다. 설애장터와 연결되는 팔마재 쌀시장은 번영로를 통해 넓은 호남평야의 쌀들이 유입될 뿐만 아니라 인근의 옥산 회현, 서포 나포, 옥구 등 인근의 쌀들이 모이던 쌀 도매시장이었다. 정미소가 모여 있고 수레를 통해 쌀을 실어오던 곳이어서 수레바퀴를 고치는 수레바퀴 수리소가 있던 북적이던 쌀시장이었다.
도시가 확장되고 중심이 외곽 곳곳으로 이동 되었지만 군산의 옛 추억을 간직한 곳이 이곳 팔마산이다.
"어릴 적 아흔아홉 다리에서 물놀이를 하고 팔마산에 올라가 놀곤 했지요. 팔마산에는 일제때부터 있던 긴 굴이 있어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아이들이 굴속을 드나들곤 했어요."
지금도 팔마산 자락에서 슈퍼를 하고 있는 김호재 씨(76세)는 예전 경포천과 팔마산 자락을 따라 뛰고 놀던 어린 시절추억하고 있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변함없이 푸른 그늘을 드리워주는 팔마산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을 돌아보곤 한다고 했다.
팔마산 위에서 본 도시 풍경
도심 속 팔마산 흥남공원을 오를 때면 6·25 직후 3만명의 피난민들이 들어와 함께 살던 북적이던 군산의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흥남부두에서 LST선에 의지해 낯선 도시에 정착해 살아야 했던 피난민들의 억센 생활력이 군산의 정서에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 애환어린 역사가 군산시내 곳곳에 피만민들의 정착촌으로 이어졌다. 흥남부두에서 필생의 탈출을 해야했던 사람들의 그 추웠던 겨울의 눈보라 너머로 군산의 흥남동처럼 고단한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했던 사람들의 새로운 터전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흥남공원 숲길을 걸으며 도심 속 뜨거운 열기에 지친 마음을 다잡아 돌아간다. 해가 뜨고 지는 그 태양의 길이 팔마산 숲 사이로 나 있다. 매미소리와 풀벌레 소리 너머로 유난히 무더운 올 여름의 더위가 지나고 있다. 정자 마루에 앉아 시원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아침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며 돌아가는 일상 속으로 팔마산은 안식과 위로의 푸른 손길을 보낸다. 오늘도 여덟 마리의 말이 끄는 거대한 마차를 타고 세월의 길을 떠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팔마산은 그 푸른 빛을 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