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un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메인 메뉴


콘텐츠

홈 > ARTICLE > 사회
배수정의 미술칼럼 - ‘1950년 아픈 고통의 잔상, 한국의 유월이 남겨진 그림’
글 : 배수정 / jlmjlm710@naver.com
2024.06.19 15:56:38 zoom out zoom zoom in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en Coréee), 패널에 유채(Huile sur bois), 109.5×209.5cm, 1951, 입체주의, 파리 피카소미술관

 

유월. 녹음이 제각각의 옷을 입는다. 그 옛날 보릿고개를 넘어 땅이 소산을 내어주는 고마운 이때가 되면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반도의 아픔이 6월의 기억을 떠오르게한다.

 

전쟁을 한번도 겪어내지 않은 세대이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 역사의 참상이 선명해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현재도 진행중인 그 연장선에서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현세대에도 남겨져있기 때문인가 싶다. 

 

이달의 작품은 과거 1950년 6월에 시작된 한국전쟁의 참상을 담아낸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그림이다.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태어나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 활동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큐비즘 작가다. 그는 예술을 향유하다가 1973년 4월 8일 91세로 삶을 마감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피카소가 한국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그렸다. 그는 한국에 온적은 없지만 보도를 통해 접한 정보를 토대로 그렸다고 전해진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갑옷으로 무장한 군인들의 총칼 앞에 처참한 모습으로 발가벗겨진 여인과 어린아이들의 공포와 분노를 그림에 담았다. 이는‘게르니카’와 함께 대량 학살의 잔혹성을 폭로하는 그의 대표적 작품중 하나이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Oil on canvas, 349×776.6cm, 1937년, 마드리드 

 

‘한국에서의 학살’은 피카소가 1950년 한국전쟁 중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신천 대학살’을 소재로 하여 한국전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한국전은 1936년 피카소의 모국인 스페인에서 일어난 내전을 연상시키며, 이 전쟁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 작품이 그려지게 된 배경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개입을 격렬하게 비난해 온 프랑스 공산당이 피카소에게 반미 선전을 위한 작품을 의뢰하면서이다. 당시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는 1951년 이 작품을 완성하여 그 해 5월 파리의 살롱 드메(Salon de mai)에서 처음으로 전시하였다.

 

그러나 용감하게 저항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고자 했던 프랑스 공산당원 의뢰자의 눈에는 무고한 시민의 죽음에 초점을 맞춘 피카소의 작품은 그리 탐탁지 않았다. 더군다나 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의뢰자는 이 작품을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그림이라고 평가하였다. 이후 이러한 비평으로인해 피카소는 프랑스 공산당과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한국에서의 학살’은 신천 양민 학살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개입된 배경이란 설 때문에 반미 작품으로 찍혀서 1980년대까지 반입 금지 예술품 목록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왜 반미 작품으로 경계시 되었을까. 위에서 잠시 언급 했듯. 이 작품은 피카소가 프랑스 한 정부 단체의 주문으로 그려졌다. 그 정부는 미국에 대한 행방을 추긍할 목적이 있었는데 피카소는 그 시점을 달리 하고 있었다.

전쟁속에서의 가해자가 북한군인지 미국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민간인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학살자라는 그 참혹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점이다.

 

프랑스 공산당측의 의도를 빗겨간 피카소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앞서 그린 ‘게르니카’에서 보여준 전쟁의 잔혹한 참상이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면의 분할이 많고 평면화된 ‘게르니카’와는 달리 ‘한국에서의 학살’은 조금더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회화성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물의 섬세한 움직임이 조금더 구체적으로 읽혀진다.

 

중심축에서 오른쪽은 투구로 무장을 하고 공격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학살자들이다. 그들은 건강한 체격의 남성들로 보인다. 반면 왼쪽에 서있는 사람들은 모두 여성과 아이로 구성 되어 있다. 

임산부와 젖먹이 유아, 공포가 아직 낯설은 돌잡이 아이, 무서움을 아는 나이의 어린아이 그리고 사춘기에 이른 소녀의 모습까지 태아에서 청소년에 이르는 각 세대가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다. 

남자 성인은 어디로 갔는지 무슨일이 있는지 알 수없고, 남겨진 힘이 약한 여인과 어린아이들만이 화약내 나는 총부리 앞에서 떨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전쟁이라는 것. 얼마나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것인가. 학살 앞에서는 도덕과 양심을 버리고 살생을 해야하는 그 잔인함을 표현하기위해 극한의 강,약의 대립 구조를 표현하게된 피카소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아직 "ING". 전쟁의 악연이 진행중이다. 얼마전 북한에서도 ‘오물 풍선’이라는 이름의 물건들이 날아오고, 남쪽에서는 대북 선전물과 확성기 방송에대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총칼의 육탄전이아닌 몇분이면 땅위는 무너진 잔해와 만물이 먼지로 사라질 수 있는 경험해보지 못한 재앙과도 같은 전쟁이 될 것이다.

 

다음 세대 앞에서 위험한 나라가 되지 않기를, 1950년 그날의 새벽이후 74년이 지난 오늘에도 계속되는 이 긴장이 속히 멈추길 바래본다.​ 

배수정님 기사 더보기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닫기
댓글 목록
댓글 등록

등록


카피라이터

주소 : (우)54020 전북 군산시 절골3길 16-2 , 출판신고번호 : 제2023-000018호

제작 : 문화공감 사람과 길(휴먼앤로드) 063-445-4700, 인쇄 : (유)정민애드컴 063-253-4207, E-mail : newgunsanews@naver.com

Copyright 2020. MAGAZINE GUNSAN. All Right Reserved.

LOGIN
ID저장

아직 매거진군산 회원이 아니세요?

회원가입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으셨나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