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을 더해가는 오성산 등산로
산에는 뻐꾸기 소리 요란하고, 들에 지천으로 돋아난 온갖 나물이 입맛을 돋운다는 5월. 계절의 여왕으로도 불리는 5월 첫 번째 주말(5일)은 ‘어린이날’이자 여름의 문턱을 넘어선다는 ‘입하’(立夏)였다. 입하는 나무들이 마지막 싹을 띄워 푸르름의 여름으로 넘어가고자 몸부림치는 때이기도 하다.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푸르름을 더해가는 오성산(228m)을 바라보다가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성산초등학교 총동문회 김항석(33회) 회장이 12일(토) 오전 10시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하는데 음식을 넉넉히 준비했으니 점심때 김밥이나 함께 먹자는 전화였다. 하찮은 김밥이지만, 챙겨주는 정성이 고마웠다.
김 회장은 “성산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1922) 성산면 도암리에 ‘사립 성산학교’로 창립됐으며 1923년 6월 1일 ‘성산 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올해까지 86회에 걸쳐 약 9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졸업생들은 전국 각지에서 그 지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모교를 소개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 환하게 웃는 김항석 회장(오른쪽).
초등학교 운동회, 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
체육대회가 열리는 12일 오전 11시 20분 성산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운동장에 들어서니 구수한 황토 냄새가 가장 먼저 반겼다. 청군·백군이 적힌 깃대와 푸른 하늘을 수놓은 만국기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게 했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운동회가 떠올랐던 것. 먹을거리 부스에서는 여성 동문들이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한쪽 부스에서는 막걸리와 김밥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침을 거른 터여서 푸짐한 상차림은 침을 꼴깍 넘어가게 했다. 선후배 동문들과 인사를 나누던 김 회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족구시합이 벌어지는 운동장은 그야말로 동심의 세계. 응원 열기도 대단했다. 감독이라도 된 양 손짓 발짓으로 코치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이 든 선배가 어렵게 찬 공이 상대방 코너로 들어가면 환호와 박수가 터졌고, 빗나가거나 그물에 걸리면 탄식이 터졌다. 시합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선후배가 웃고 즐기는 놀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보는 사람 모두를 동심의 세계로 돌려놓았던 제기차기
추억의 제기차기와 남녀 발 묶고 뛰기, 축구공 굴리기는 운동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으니까 넘어지고 자빠지고, 제기와 축구공이 멀리 도망갈 수밖에. 전통 놀이인 제기차기는 한발차기, 양발차기, 헐렁차기, 넣어주기, 돌려차기 등 놀이 방법도 다양한데 양발로 차면서 재주부리던 코흘리개 시절이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줄다리기에 참여한 선후배 남녀동문이 사력을 다해 줄을 잡아 다니고 있다.
줄다리기와 400m 이어달리기에서 사력을 다하는 선수들과 열띤 응원전은 이날 체육대회는 물론 추억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운동회에서 줄다리기와 청백 계주가 시작되면 응원석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낮술에 거나해진 아저씨들은 운동장으로 나와 춤과 노래로 열기를 돋우었는데, 그만한 구경거리도 없었다.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서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100m 달리기 최고 기록이 4등. 그래서 연필이나 공책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마음이 급한 아이들은 총소리가 나기도 전에 출발선을 넘기도 하고, 앞에 가는 교우의 옷깃을 잡기도 했는데, 언제 출발신호가 떨어질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던 그때가 새롭게 느껴진다. 한가한 본부석도 추억의 앨범을 뒤적이게 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 본부석은 학교 사친 회장, 주조장(술도가) 주인, 파출소장, 우체국장, 방앗간주인 등 마을 유지들이 교장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운동회를 관람하는 장소여서 앞으로 지나가도 안 되는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해서 운동회 때마다 본부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둔 급우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때는 운동회는커녕 소풍도 못 갔어··
운동장에서 만난 오제흥(37회) 교장은 “성산초등학교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2011년 부임할 때 학교 규모가 옛날보다 작아진 것을 보고 아쉬웠다”며 “그래도 내용 면으로는 도시에 뒤지지 않는 시설과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알차게 성장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초등학교 시절 아련한 추억들을 회상하는 채을석 고문.
참석 동문 중 가장 연장자는 올해 팔순을 맞이한 채을석(21회) 고문. 초등학교 학생처럼 뛰고 넘어지며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채 고문 눈빛에는 후배를 사랑하는 애틋함이 함께 느껴졌다. 채 고문은 “내가 다닐 때는 일제강점기여서 운동회를 한 번도 열지 못했다”며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내가 다닐 때는 한 학년에 두 학급으로 한 반에 60명씩 했고, 나이 차이가 많아서 결혼한 급우도 있었어.(웃음) 평양전쟁(1941~1945)이 한창이던 때여서 운동회는커녕 봄가을 소풍도 못 갔어. 학교 근처에 있던 왜놈들 농장으로 작업을 나갔지. 오래된 소나무에서 송진도 따고 퇴비를 만들기 위해 낫을 들고 풀을 베러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6·25(한국전쟁)가 일어나서 고생을 많이 했지···.”
채 고문이 다닐 때는 등교하면 운동장 한쪽에 설치된 일본 신사에 삼배부터 올렸다고 한다. 징용으로 끌려갈 젊은이들도 일장기를 펼쳐들고 신사에 신고한 뒤 전쟁터로 나갔다고. “운동장에 나오니까 젊었을 때 동창회를 함께 이끌어가던 강근호(20회) 전 군산시장이 생각난다”는 채 고문은 “요즘은 옛날 친구들에게 이메일 보내는 재미로 지낸다”고 말했다. 군산대학교 채정룡(40회) 총장도 성산초등학교 출신이었다. 반가운 옛 급우들과 담소를 나누던 채 총장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남녀 동문이 한자리에 모여 정담을 나누고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보았다”며 “세월이 영원하듯 우리들 마음의 고향인 성산초등학교와 총동문회도 영원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성산초등학교 총동문회 임원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