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있는
이색 베이커리카페 ‘논(NⵁN)’
김재경 대표
글 오성렬(主幹)
회현초등학교 입구에 지난 4월초 문을 연 베이커리카페 ‘논’, 이를 ‘NⵁN‘이라 표기한 것은 주변이 온통 논(畓)인 시골지역이기도 하지만 무농약 유기농 베이커리임을 나타낸 것이다. 카페 내부에 들어서니 60여 평은 돼 보이는 여유로운 공간 중앙의 그랜드피아노와 바이올린, 플룻이 시선을 끌고 구수한 커피와 베이커리 향이 은은히 코끝에 스미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부가 모두 음악을 전공한 재원이란다.
이곳의 대표인 김재경 씨는 플룻을 전공한 서울 생으로 대학시절 바이올린을 전공한 지금의 남편 이장선 씨와 선후배 사이였다. 대학 졸업 후 국내에서 잠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던 장선 씨는 음악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 주립대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이후 현지에서 직장생활 중 휴가차 한국에 들어왔다가 당시 대학원을 마치고 플룻 강사를 하고 있던 후배 재경 씨를 만나게 된다.
사실 재경 씨와는 단순한 선후배 관계로 강동구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음에도 그런 내용까지는 모르고 지내던 사이였으나 재경 씨 동생이 바이올린 공부를 하고 있어 장선 씨에게 레슨 부탁을 하면서 교류가 있게 되었다. 휴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장선 씨는 재경 씨를 설득, 동행하게 되는데 그때가 2010년도다.
졸지에 미국 생활을 하게 된 재경 씨는 장선 씨가 출근하고 나면 무료한 시간을 제과 제빵 취미로 달랬다. 갖가지 빵을 만들어보는 재미에 빠지게 되면서 전공인 음악보다 빵에 더 소질이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전문가 못지않은 베이커리 실력을 터득하게 되는데 그와 달리 장선 씨는 미국 생활 적응을 힘들어 하고 고국에의 향수에 젖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기질적, 환경적으로도 더는 미국 생활을 견딜 수 없었던 장선 씨는 2013년도 재경 씨와 귀국을 결행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미뤘던 결혼식을 올렸다. 서울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결혼 생활을 즐기던 그들이 군산을 만나게 된 것은 6년 전인 2015년도다. 사실 군산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곳이었지만 장선 씨의 군대 후배를 만나게 되면서 삶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그 후배는 장선 씨에게 은파의 명소 중 하나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파라디소’를 소개해줬는데 파라디소 역시 유럽에서 음악을 전공한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장선 씨는 음악적 동질감 외에도 파라디소의 제반 환경이며 운영 콘텐츠가 마음에 들었다. 이를 계기로 파라디소에 취업, 커피 류와 제빵 등을 배우며 내심 언젠가 자신도 멋진 카페를 열고 있을 미래를 상상하며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오토바이 사고로 허리를 다치는 부상을 입게 되는데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파라디소를 퇴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군산에서 새 삶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재경 씨로서는 지리도 전혀 모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이곳에 정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현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지금의 업소 건물에 임대라는 광고가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건물은 수 년 전 신축되어 레스토랑으로 운영됐던 곳이었으나 불과 2년도 안 돼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이후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들은 건물주와 만나 임대차 문제를 협의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월세가 다소 높기는 했지만 예전 업주가 쓰던 모든 집기가 거의 그대로 있어 개업에 어려움이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정하고 계약을 체결, 올해 4월1일 정식 오픈했다. 이제 비로소 자신들만의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예전 업소 때 설치됐던 홀 칸막이들은 모두 제거하고 음악가들답게 매장 중앙에는 그랜드피아노를 배치했다. 그리고 판매되는 모든 제품이 유기농임을 강조하는 ‘NⵁN’표지로 벽을 장식했다.
장선 씨는 정읍의 모 농업회사에 총무과장으로 재직 중이어서 매일 출퇴근을 하며 주말에만 부부가 같이 일한다. 그러다보니 평일에는 재경 씨 혼자서 카페 업무를 총괄하느라 한 시도 쉴 틈이 없어 보인다. 가뜩이나 아이 셋을 키우느라 힘들고 지칠 법도 한데 매일같이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밀가루 반죽하랴, 커피 내리랴 종류도 가지가지인 빵 빚으랴 음료 챙기랴 손님 안내하랴 그러면서도 언제나 표정이 활달하고 친절한 게 신기하다.
‘논’에서 판매되는 빵들은 초코칩 스콘, 크렌베리 스콘, 에그 스콘, 옥수수치스 스콘, 앙 스콘을 비롯하여 플레인 치아바타, 치즈 치아바타, 올리브 치아바타, 무화과 치아바타, 앙 치아바타, 잠봉뵈르 외에도 베이글, 벨지안 와플, 와플+아이스크림, 아몬드쿠키, 브라우니, 크림치즈 등 15종이 넘는데 하나같이 친환경 유기농 제품인데다가 식감이 뛰어나거니와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인기가 많다.
또한 아메리카노를 비롯한 커피류 6종과 주스류 및 레몬에이드, 패선후르츠에이드 등 에이드류 4종과 다양한 스무디류, 따뜻한 차까지 약 30여 가지가 준비되어 있는데 유기농 황설탕으로 직접 만든 수제청을 사용하는 것도 이 집만의 특색이랄 수 있다.
그러다보니 평소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려주는 재경 씨는 학부모 모임에서도 인기가 그만인 지금의 제빵 실력을 갖추기까지 유명한 빵집을 두루 섭렵하며 비교, 분석, 보완으로 내공을 다졌다는데 자신의 전공인 음악보다 빵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말에서도 빵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재경 씨는 어려운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심성도 남달라 관내 모 영아원의 운영상 어려움을 듣고 기꺼이 물품을 후원한 미담의 주인공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재경 씨는 작년부터 회현중학교의 방과후 수업 플룻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카페 개업 이후에는 주1회 업소 휴무일인 화요일에만 강의를 나간다. 수강 학생은 10여명 내외로 재경 씨로 인해 플룻 반이 개설된 셈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카페 내에서 연주를 할 기회는 거의 없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연2회 정도 하우스 콘서트 형식의 음악회를 구상하고 있다는데 개업 초기인 지난 6월 동네 주민들과 실내 음악회를 한 차례 가진 적도 있다고 들려준다.
최근 지인과 함께 ‘논’을 방문했던 날, 마침 공휴일이어서 장선 씨도 아내 일을 돕고 있었는데 필자의 부탁에 따라 잠시 일손을 놓고 흔쾌히 바이올린을 잡더니 멋진 클래식 연주를 들려주었다. 재경 씨도 손님 석 의자에 앉아 남편의 연주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다만 장선 씨는 카페에서의 연주곡은 장중하고 어려운 클래식보다는 좀 더 사람들에게 친숙한 곡, 예컨대 엔니오 모리꼬네나 아스트로 피아졸라 같은 세계적 음악가들의 영화 OST 연주를 선호한다고 들려주는데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필자도 꼭 한 번 들어볼 기회를 갖고 싶다.
군산에 수많은 카페가 있지만 이토록 맛있는 베이커리와 커피, 음료에다 덤으로 부부의 수준 높은 즉석 연주까지 들을 수 있는 곳은 ‘논’카페가 유일하지 않나 한다. 이들 부부는 군산 생활은 몇 년 안 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절하고 여유로운 지역 인심에다 멋진 자연환경까지 이제는 주변 분들과의 정도 많이 들어 정착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있단다.
고객 중 전문 연주 실력을 갖춘 분이라면 누구라도 피아노 연주도 가능하다는 ‘논카페’, 이토록 또 하나의 격조 있는 인문적 문화공간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업소가 우리 지역에 개업됐다는 것은 군산의 문화예술적 수준과 역량이 한층 성숙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반갑고 흐뭇한 일이다.
유기농 베이커리카페 ‘논(NⵁN)’
군산시 회현면 회현초교1길47
T.063)471-3879